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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승가 평등마저 저버렸다

평등 요청 부정된 무거운 의미
깨진 약속과 분노의 집단퇴장
번번이 막힌 비구니 교권 참여
승가 민주주의 수준의 시험대

조계종 중앙종회 제236회 정기회에서 ‘비구니 호계위원 신설’을 위한 종헌 개정안이 재적 3분의 2 정족수에 단 1표가 모자란 53표 찬성으로 부결됐다. 이 한 표가 던진 충격은 컸다.

이번 중앙종회 개회 전, 다수의 비구 종회의원으로 구성된 종책모임들은 이 종헌 개정안 가결에 뜻을 모은 분위기였다. 앞서 9월 열렸던 중앙종회 235회 임시회에서도 비구니 종회의원을 포함 70명의 종회의원들이 같은 취지로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바 있다. 비록 절차상의 문제로 이월됐지만 ‘다음 종회에서는 반드시 가결될 것’이라는 비구스님들의 약속은 이번 종회에서도 종회의원 59인이 공동발의하며 구현되는 듯했다.

호계원법 개정에 대한 비구니스님들의 염원은 직능대표선출위원회 관련 선거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직능대표선출 과정에 비구니 종회의원을 제외하는 논의가 비구 종회의원들 중심으로 거론됐고, 일부 비구니 종회의원은 “공공연한 비구니 차별”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다수의 비구니 종회의원들은 “호계원법 개정에 힘을 싣기 위해 이를 수용하자”며 고육지책을 감래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무기명 비밀투표 결과는 기대와 정반대였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배신감과 함께 차별에 대한 좌절감이 뒤섞인 현장에서, 비구니 종회의원들은 집단퇴장으로 항의했다. 비구니스님들이 겪는 구조적 불평등과 제약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었다.

비구니 승가는 종단 출가자의 절반으로 전법과 복지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종단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권의 핵심 영역에서는 여전히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구태가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비구니스님들의 교권 참여를 위한 여정은 결코 짧지 않다. 비구니 호계위원 신설을 위한 종헌 개정 시도는 이미 2013년을 기점으로 여러 차례 중앙종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수년에 걸쳐 같은 안건이 반복적으로 상정되고 부결되는 흐름은, 종단 지도층 내에서 비구니 지위 향상에 대한 원론적 동의와 실질적 권한 부여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줬다.

집단퇴장으로 드러난 항의의 표면은 깨진 약속과 신뢰에 대한 저항이었다. 종책모임의 약속은 비록 공식 의결은 아니더라도, 핵심 주체들 간의 암묵적인 합의다. 이 합의의 파기는 향후 종단 내 주요 현안 논의와 합의 과정에서 비구니 종회의원의 행보가 결코 ‘일방적 동의’로 흐르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종회장을 퇴장하던 한 비구니 종회의원 스님의 “앞으로 어떤 안건에도 쉽게 동의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일성은 이 같은 분위기를 대변했다.

무엇보다 호계원은 종단의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기관이다. 비구니 관련 징계 사건 심판에 비구니 2인을 참여시키자는 개정안은, 비구 중심의 심판 구조가 낳는 공정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완이었다. 이번 부결로 종단은 양성평등과 승가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에 아직도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최소한의 평등을 요구하는 개정안의 부결과 집단퇴장이라는 현상은, 비구 중심의 교권에 갇혀 있는 종단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 결과다. 비구니 스님의 교권 참여를 위한 변화의 결단은 종단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필수조건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차대한 과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800호 / 2025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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