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미술의 장엄함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책이 나왔다. 성보문화유산연구원이 펴낸 ‘우리가 사랑한 괘불탱, 마음챙김 컬러링 북’은 불교미술의 정수인 괘불탱을 직접 색칠하며 명상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전통미술 컬러링 북이다.
괘불탱은 사찰의 큰 법회나 의식 때만 공개되는 대형 불화다. 화면 가득한 부처와 보살의 위엄, 섬세한 선묘와 화려한 색채는 보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이 책은 그 장엄한 괘불 세계를 집 안에서도 감상하고 손으로 직접 채색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책에는 국보 4점, 보물 14점을 포함한 총 18점의 괘불탱 이미지가 수록됐다. 보경사, 통도사, 무량사, 봉선사 등 전국 주요 사찰의 대표 작품들이 원형에 충실한 고해상도 이미지로 담겼으며, 각 작품의 해설과 색칠 가이드가 함께 제공된다. 사찰이나 전시실에서만 볼 수 있던 대형 불화를 가까이에서 접하고, 색을 덧입히는 과정에서 불화의 상징과 의미를 자연스레 체험할 수 있다.

성보문화유산연구원은 2015년부터 국가유산청과 대한불교조계종,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대형불화 정밀조사 사업’을 수행해 왔다. 이번 책은 그 10년 성과를 바탕으로 대중이 문화유산을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도록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연구원은 “보고서 속 자료가 아닌, 일상에서 괘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며 “컬러링이라는 행위가 옛 화승의 숨결과 독자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책은 ‘화려하게 물드는 부처’ ‘빛을 나투신 부처’ ‘향으로 전하는 부처’ ‘자비로 돌보는 부처’ ‘머물러 바라보는 부처’ 등 다섯 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은 불보살의 상징적 세계를 주제로 하며, 마지막에는 ‘불화 도상 해설’과 ‘국보·보물 괘불 현황 지도’ 부록이 실려 있다. 독자는 괘불탱의 조형미를 감상함과 동시에, 색을 칠하며 마음의 번뇌를 내려놓는 수행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종교를 넘어 예술과 명상의 경계를 잇는 치유의 책”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채색과 정교한 구도 속에서 느껴지는 균형과 조화의 미학은 단순한 미술 체험을 넘어, 멈춤과 집중의 순간을 선사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연필을 쥔 채 색을 채워나가면, 괘불탱의 고요한 기운이 자연스레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불자뿐 아니라 전통미술 애호가, 템플스테이 참가자, 명상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길 문화체험서로도 적합하다. 사찰의 법당에서나 볼 수 있던 부처님의 장엄한 모습을 가정에서도 만나며, 손끝을 따라 번지는 색 속에서 불교미술의 치유력과 평온을 느낄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성보문화유산연구원은 “작은 색칠이 곧 옛사람들의 기도와 지금 우리의 삶을 잇는 수행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겠다”고 전했다. 하여 이 책은 보고, 칠하고, 명상하는 세 가지 경험을 아우른다. 예술과 수행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괘불탱은 더 이상 먼 전시품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801호 / 2025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