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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나만의 코끼리 내려놓을 때

인간 인식의 한계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다. 불교 경전 ‘대반열반경’의 ‘사자후보살품’에 나오는 군맹무상(群盲撫象)의 비유는 작금에 가장 긴요한 가르침이다. 앞 못 보는 이들이 코끼리의 서로 다른 부분을 더듬으며 “이것이 코끼리다”라고 제각기 주장하지만, 실제 ‘코끼리 전체’를 다 알지 못한다. 오늘 우리 사회와 한국불교가 겪는 갈등과 분열의 원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 시대의 정보 홍수 속에서 우리는 더욱 더 진영 논리와 단편적 인식에 빠져든다. SNS와 미디어는 우리의 성향과 기호를 살펴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지식과 지능이 무한확장되는 이 시대에 이런 군맹무상의 폐해 현상이 오히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부분적 사실’을 맹신하여 패악을 일삼는 이들은 비유 속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여의도에서의 목숨을 건 전쟁 같은 정치 진영의 싸움은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대화와 타협은 없고 오로지 자신의 진영만 옳다고 믿으며 상대를 없애야 할 적으로만 여긴다. 언론도 편 가르기에 가담하고, 국민은 정치적 담론과 소통에 굳게 마음을 닫는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의 생명력과 미래를 앗아갔다. 이토록 뿌리 깊은 갈등의 사회 분위기는 불교계 내에서도 엿보이는 듯싶다.

불교계에는 오랜 전통과 권위에 기대어 ‘자기만의 진리’를 고집하는 이들과,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전체 화합과 공동체 발전보다는 자기주장에 급급해 보인다. 진정한 화합의 길 대신, 상대를 비난하고 파괴하려는 행태야말로 군맹무상의 어리석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선 ‘분별심을 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상대의 합당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경전 한 귀퉁이에 적힌 빛바랜 글자에 기대어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의 시대를 거부하려는 몸짓은 한낱 자기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모두가 ‘공(空)’의 진리를 깨닫고 서로를 연결된 존재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세상 전체를 오롯이 볼 수 있다.

최근 불거져 나오는 불교계의 갈등 사례는 군맹무상의 현실을 보여준다. 출가자 급감과 고령화 문제에 대해 ‘청년 포교’를 강조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행사성 축제의 손님으로 소비된다. 탈종교화, 승가 교육 구조의 비효율성, 승가 정체성 약화 같은 구조적 문제를 전체적 시각에서 풀어가려는 통찰이 필요하다. 간화선 수행 전통의 논쟁도 각 집단이 자신만의 주장에 갇혀 전통과 현대의 조화나 진정한 혁신으로의 진일보를 외면하고 있다. 비구니와 재가불자의 역할과 참여 확대 역시 구호에 그치고, 실질적 변화는 더디다. 이 모든 부조리가 군맹무상의 전형이다.

우리에게 간절한 것은, 서로가 ‘나만의 코끼리’만 볼 게 아니라, 함께 전체를 조망하는 일이다. 대중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참회하며, 서로를 적이 아닌 연민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승가의 화합과 사부대중의 평등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맹목적 승부욕을 버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상대를 품는 길만이 온전한 화해와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

이제는 서로가 조금씩 내려놓고, 멀찍이 떨어져서 전체 코끼리를 바라볼 용기와 구체적 행동을 이어 갈 때다. 서로를 내려놓고 큰 그림을 보라. 그제야 한국불교가 갈등을 화합으로 전환하고, 사회 속에서 본연의 소임을 되찾는 한국불교의 중흥을 말하며 사부대중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훈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 대전대 교수 shlee0044@naver.com

[1802호 / 2025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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