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불면증에는 30분이 지나도 잠들기 힘든 입면 장애, 자던 중 총 30분 이상 각성 상태가 되는 수면 유지 장애, 예상보다 훨씬 일찍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는 조기 각성이 있다. 이런 증상이 일주일에 최소 3일 이상 발생하고 3개월 이상 지속될 때를 말한다. 낮 동안 심한 피로감과 권태감을 느끼며, 집중력·기억력·인지 기능이 저하돼 업무나 학업 효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로 인해 우울감이나 짜증 같은 정서도 호소한다.
‘동의보감’에서는 불면증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큰 병을 앓아 기력이 약해지거나, 나이가 들어 양기가 쇠약해진 경우다. 중풍이나 항암 요법, 수술 등으로 오랜 병을 앓아 기력이 쇠한 불면증은 체질에 따라 양기를 보하는 치료법으로 수면 장애를 극복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둘째 원인으로, 현대 불면증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바로 사려과다(思慮過多), 즉 ‘생각이 많아서’이다. 낮에는 대상을 대하고 몸이 움직이느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과 알아차리지 못한 감정들이 밤이 되면 가만히 누운 사이 스며 올라온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겨우 잠들어도 피로에 눌린 몸이 갑자기 깨어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지금 이렇게 한가롭게 자도 되는가”라며 스스로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는 상태다.
40대 여성 A씨는 “회사와 결혼했다”는 말을 들을 만큼 일에 몰입했다. 그러나 1년 전부터 수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러 보조제·수면제를 썼지만, 낮의 멍한 상태와 무기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면의 첫 화살은 비교심이었다. 외부 미팅에서 한 여성 리더를 만난 뒤부터다. 상대는 결혼해 자녀를 키우며 같은 직책에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회사에 걸었는데, 무엇을 가지고 있나” 하는 부러움이 밤마다 짙어졌다. 고요하고 평온히 잠들어야 할 밤이 곤욕스럽고, 감정이 격해지면서 잠이 달아났다. 고개를 돌리기 힘들 정도로 등이 굳었고, 자다 쥐가 났으며, 피부 두드러기까지 일어나면서 결국 소개를 받고 병원을 찾아왔다.
A씨의 맥은 불기운이 거세게 뛰는 홍맥(洪脈)이었다. 생각과 감정은 불, 화기(火氣)에 속한다. 적절하면 온화한 난로지만, 격하면 불을 낸다. 감정과 생각을 알맞게 드러내야 하는데, 꾹 참고 삼켜버리니 속에서 불이 일었다. 감정을 삼킨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내재화되니, 이것이 곧 ‘무명’에 잠긴 상태다. 불난 집에 누가 편히 쉬겠는가. 불안해 잠들기 어렵고, 자다가도 화들짝 깬다.
근육 경직과 화기를 풀어주는 체질 처방과 함께, 한 계절 동안 치료를 이어가며 인지치료를 병행했다. 108배와 좌선을 통해 스스로 불이 피어오르는 찰나를 알아차리는 훈련을 시작한 지 4개월째 되던 날, A씨는 “제가 그 생각을 끄집어 올리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이제 잠은 잘 자요?”라고 묻자 “아, 맞다. 제가 불면증 때문에 왔었죠?”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무명이 병을 만들고, 병이 다시 무명을 강화한다. 그러나 수행하듯 치료를 이어간다면 만성병에서 벗어날 수 있고, 더 나아가 공부가 깊어지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권혜진 삼대청효대동한의원 대표원장 chdd1922@naver.com
[1802호 / 2025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