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벽 스님에게 백장 스님이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느가?” 이에 황벽 선사가 말했다. “대웅산(大雄山) 밑에 가서 버섯을 따 가지고 옵니다.” 백장 스님이 다시 말했다. “호랑이(大蟲)를 보았는가?” 황벽 선사가 문득 호항이 소리를 흉내 내니, 백장 스님이 도끼를 들어 찍는 시늉을 하거늘, 선사가 한 대 갈겼다. 이에 백장 스님이 깔깔 웃으면서 돌아가더니 상당하여 대중들에게 외쳤다. “대웅산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으니, 여러분은 조심하라. 나도 오늘 한 번 물렸노라.”
Q : 수행하는데 호흡이 중요한가요? A :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호흡이 편안하지 못하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호흡 또한 고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몸이 건강하고 자세가 바르면 호흡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고요하면 호흡도 덩달아 고요해집니다. 그렇기에 아픈 사람이 호흡이 고를 수가 없는 것이고 화가 나거나 울거나 놀랬을 때 호흡도 함께 가빠지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호흡이 강조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호흡은 몸과 마음을 잇는 가교이자, 몸과 마음의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바로미터이며,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호흡이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할 때든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단전복식호흡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단전복식이 되면 몸에
대자(大慈) 스님이 설법했다. “한 길(一丈)을 말하는 것이 한 자(一尺)를 행하는 것만 못하고, 한 자를 말하는 것이 한 치(一寸)를 행하는 것만 못하다.” 동산(洞山) 스님이 말했다. “행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행해야 한다.” 운거(雲居) 스님이 말했다. “행할 때 말할 길이 없고, 말할 때 행할 길이 없다. 행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을 때엔 어느 길로 행해야 하겠는가?” 낙포(洛浦) 스님이 말했다. “행과 말로 모두 이르지 못하면 본분의 일이 있는 것이요, 행과 말로 모두 이르면 본분의 일이 없는 것이다.”
Q : 수행 할 때 나타나는 빛, 기쁨, 편안함도 번뇌라 하나요? A : 순수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나타나는 번뇌는 10가지가 있습니다. ① 마음속에서 강한 빛을 경험한다. ② 예리한 이해력이 생겨 경전이나 교리의 깊은 의미를 꿰뚫어 이해가 된다. ③ 몸의 전율을 느끼는 희열이 생긴다. ④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 진다. ⑤ 마음에서 강렬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 ⑥ 강한 신심이 생긴다. ⑦ 더욱더 수행에 전념하여 정진을 한다. ⑧ 흔들림이 없는 알아차림이 항상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다. ⑨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들에 대해 마음이 평등한 상태가 된다. ⑩ 이러한 모든 현상들에 대해 미세한 집착과 욕망이 일어난다. 이상 10가지를 번뇌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것들 모두가 지혜가 성숙되어서 나타나는
대우(大于) 선사에게 청전(淸田)이 시자로 와서 겨울 문안을 올리니 선사가 물었다. “금강정정(金剛正定)은 모두가 다 그렇거니와 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일은 어떠한가?” 이에 청전이 말했다. “화상께서 물으셔도 무방합니다.” 그러자 화상이 다시 물었다. “지금은 되겠지만 떠난 뒤엔 어찌하겠는가?” “누가 감히 저에게 묻겠습니까?” 선사가 한 번 더 물었다. “나 대우라면 물어도 되겠는가?” “다시 딴 사람이 점검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이와 같이 종사(宗師)를 잘 보필하니, 광채가 시들지 않는다 하겠다.” 그러자 시자가 절을 했다.
Q : 몸을 대상으로 알아차릴 때 4대로 구별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A : 위빠사나 수행의 궁극적 목표는 깨달음입니다. 깨닫기 위해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수행을 해야 하는데 몸에서는 오직 4대로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각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이끕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항상 밖으로 나가서 탐진치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일단 안으로 오게 해서 먼저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알아차리게 합니다. 이것이 수행의 일차적 과정입니다. 이와 같이 알아차릴 대상을 몸의 호흡이나 움직임이나 느낌으로 하는 것은 외부로 나간 마음을 차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뒤에 이제는 몸의 요소인 지대, 수대, 풍대, 화대를 알아차리게 합니다. 이때 4대를 알아차리게 하는 것
위산 선사가 여름 안거 해제하던 날 앙산에게 물었다. “그대는 올 여름에 무엇을 했는가?” 이에 앙산이 말했다. “한 뙈기의 밭을 일구어 한 광주리의 조를 심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올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구나.” “화상께서는 올 여름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에 위산 선사가 답했다. “낮에는 밥 한 그릇 먹고 새벽에는 죽 한 그릇 먹었다.” “화상께서도 올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앙산은 물러서면서 혀를 토했다. 이에 위산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손수 칼날을 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그러자 앙산은 소매를 흔들고 나가 버렸다.
Q : 좌선을 할 때 계속해서 몸이 흔들립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A : 좌선을 할 때 몸을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면 집중이 되지 않고 산만해져서 고요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진동합니다. 그래서 몸은 원래 움직이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좌선 중에 움직이는 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좋아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것을 흔들어 주면 순환이 되므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좋아해서 움직이려는 의도가 개입이 된 것입니다. 좋아서 흔들게 되면 계속해서 흔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갈애가 계속되고 집착이 생깁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이런 의도가 개입되면 안 됩니다. 그냥 일어나는
위산영우 선사가 어느 날 백장 선사를 모시고 있었다. 이 때 백장 선사가 물었다. “누군인가?” “여우입니다.” “화로를 헤쳐 보아라. 불이 있는가?” 영우 선사가 불을 헤치면서 대답했다. “불이 없습니다.” 백장 선사가 벌떡 일어나서 직접 불을 헤쳐 작은 불씨를 찾아 들고 말했다. “이게 불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러자 영우 선사가 절을 올렸다. 이에 백장 선사가 다시 말했다. “이는 잠시의 갈림길일 뿐이다. 경에 이르기를 ‘불성의 이치를 알고자 하면 시절과 인연을 관하라’하였으니, 시절이 이르면 그 이치가 저절로 드러나리라.”
Q : 좌선을 할 때 몸이 뜨거워져서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경행을 할 때는 바닥이 차가워서 몸이 오싹하는 느낌 때문에 경행하기가 싫어집니다. A : 좌선 중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집중이 되면 몸에 열이 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병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데 마음이 고요해지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히말라야의 요기들은 집중하는 힘으로 몸에서 열을 내게 하여 추위를 극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은 감기로 인해 날 수도 있고 어떤 격정적인 생각을 해서 가슴에 불이 붙은 것처럼 날 수도 있습니다. 설령 감기로 인한 것이거나 생각으로 인한 것이나 열이 날 때는 열이 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으면 그 마음을 알아차리
약산(藥山)이 도오(道吾)와 운암(雲巖)과 함께 산 구경을 하다가 무성한 나무와 마른 나무를 보고 물었다. “마른 것이 옳은가, 무성한 것이 옳은가?” 운암이 이에 대답했다. “무성한 것이 옳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분명히 일체 처소에서 광명이 찬란하겠구나.” 그러자 도오가 말했다. “마른 것이 옳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분명히 일체 처소에서 모두 말라지게 해야 하겠구나.” 때 마침 사미가 와서 선사에게 물었다. “마른 것은 마르게 두고 무성한 것은 무성하게 두어야 합니다.” 이에 선사가 운암과 도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옳지 않다.”
Q : 좌선을 할 때 몸에서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합니다. 땀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A : 몸에서 땀이 많이 나는 것은 체질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허약한 상태이거나 덥기 때문에 날 수도 있습니다. 수행 중에 생기는 땀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땀이 날 때는 땀이 날만한 조건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나는 것이므로 단순하게 생각해야지 이것을 문제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땀이 나면 으레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먼저 싫어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땀이 나는 현상을 가만히 주시해야 합니다. 땀이 송알송알 맺힌다거나 흐르는 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수행 중에 땀뿐만 아니라 콧물,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 이때도 그냥 알아차리면 됩니다
동산 스님이 용산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여러 해 동안 문밖을 나서지 않았느니라.” 동산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 손입니까?” “청산이 백운을 덮었느니라.” 동산이 물었다. “손과 주인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큰 강물 위의 파도니라.” 동산이 또 물었다. “손과 주인이 만날 때엔 어떤 말을 합니까?” “맑은 바람이 밝은 달을 쓸어버리느니라.”
Q : 좌선을 할 때 몸이 딱딱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때는 호흡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호흡을 일으켜 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른 수행방법인가요? A : 위빠사나 수행은 어떤 대상이건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는 대상에 개입하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일어나는 대로 주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개입을 하지 말라는 것은 모른 체 하라는 말이 아니고 나타난 현상을 대상으로 지켜보라는 뜻입니다. 숨을 쉴 때 일부러 호흡의 길이와 강약을 조절하면 안 됩니다. 호흡은 생명입니다. 호흡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언제나 자연스러운 조건 하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
남전(南泉) 스님이 농막에 갔는데, 장주(莊主. 농막지기)가 미리 준비했다가 맞이했다. 이에 선사가 물었다. “내가 평상시 출입할 때, 남에게 알리는 일이 없었는데, 어찌 미리 이다지 성대히 준비하였는고?” 이에 장주가 말했다. “지난 밤에 토지신(土地神)이 일러주었습니다.” 남전 스님이 답했다. “내 수행 힘이 없어서 토지신에게 들켰구나.” 이에 시자(侍者)가 물었다. “스님은 큰 선지식이거늘 어찌하여 귀신에게 들켰습니까?” 이에 남전 스님이 일렀다. “토지신 앞에도 밥 한 몫을 더 놓아라.”
래리가 접한 위빠사나 수행은 좌선과 걷기 수행(행선)만 하면서 오직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이었다. 독경의례도 없었고, 마음챙김을 놓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식사하는 특별한 방법도 없었다. 수행의 핵심은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자신을 깊이 관찰해서 얻는 지혜였다. 래리는 숭산스님이 지도하는 방식의 독경과 절하는 의식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빠사나의 통찰에는 비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방식, 그 괴로움을 꿰뚫어 보는 방법,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는 방법에 대한 통찰이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깨어있는 삶 그 자체였다. 래리 로젠버그가 수행을 주도하고 있는 캠브릿지 위빠사나 수행센터 전경. 선불교에도 이처럼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라는 전통이 있다. 바로
칙천(則川) 화상이 어느 날 찻잎을 따는 데 방(龐) 거사가 물었다. “법계가 몸을 용납하지 않거늘, 스님은 내가 보이십니까?” 칙천 화상이 말했다. “만약 내가 아니었더라면 하마터면 그대에게 대꾸 할 뻔했네.”방 거사가 다시 물었다. “물으면 대답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입니다.” 화상이 이에 아는 체 하지 않자 거사가 다시 말했다. “아까 경솔히 물은 일을 고깝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화상이 역시 아는 체하지 않으니, 방 거사가 할을 하고는 말했다. “이 무례한 사람아, 내가 낱낱이 기억했다가 눈 밝은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 하리라.” 그러자 화상은 차 바구니를 들고 돌아가 버렸다.
Q : 좌선을 할 때 다리가 아파서 자꾸 자세를 바꾸게 됩니다. 어떤 자세가 가장 좋은가요? A : 좌선을 할 때의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즉시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른 자세가 되어야 원만한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자세는 가장 편안한 것이 좋으며 부자연스러우면 계속해서 긴장하게 됩니다. 다리는 양쪽 다리를 포개는 결가부좌를 하거나 하나만 포개는 반가부좌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좌로 두 다리를 포개지 않고 가지런히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부좌가 되지않는 수행자는 처음부터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때는 무난한 방법으로 평좌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자 수행자의 경우는 무릅을 한쪽으로 모아서 앉는 자세도 있습니다. 좌선 중에
남전 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밤새도록 바람이 좋았지?” 그 스님이 대답했다. “밤새도록 바람이 좋았습니다.” “문 앞의 외가지 소나무가 부러졌지?” “문 앞의 외가지 소나무가 부러졌습니다.” 남전 스님이 또 다른 선사에게 물었다. “밤새도록 바람이 좋았지?” 그 스님이 대답했다. “무슨 바람입니까?” “문 앞의 외가지 소나무가 부러졌지?” “무슨 소나무요?” 이에 남전 스님이 말했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구나.”
Q : 다섯 가지 장애가 과연 극복될 수 있는 것이며 언제 극복할 수 있습니까? A :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직 번뇌를 불사르고 열반을 성취하는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수행입니다. 요약해 말하자면 불교의 가르침이란 수행을 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시작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들이 바로 다섯 가지 장애입니다. 바로 이 장애가 수행의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수행을 하는데 동력이 되는 필수 조건은 믿음, 알아차림, 집중, 노력, 지혜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이것을 오근(五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애가 나타나 이 다섯 가지 근기를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