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종단이 주관하고 단일계단에 스님들이 구족계와 식차마나니계를 설한다. 또 사미와 식차마나니와 사미니들은 열심히 받아야 할 계를 받는다. 그러나 이 사미와 식차마나니와 사미니들이 계를 범하면 어떤 자격을 상실하고 어떤 참회를 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비구가 지니는 계율에는 벌이 없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생겨난 것이다. 바라이 죄를 범하면 비구, 비구니, 식차마나니로서 함께 살지 못하고, 다시는 비구로서 살지 못한다. 35가지 자격도 상실하는데, 다음과 같다. ‘1.남에게 계를 설하지 못한다. 2.남의 의지를 받지 못한다. 3.사미를 거느리지 못한다. 4.비구니 교수로 추천받지 못한다. 5.설령 대중이 추천하더라도 교수하러 가지 말아야 한다. 6.포살하지 못한다. 7.대중들의 계
멀리 젊은 스님이 여인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보는 생각이 다르다. 좋은 말보다는 구구한 억척이 섞인 비난을 하기도 하고, ‘출가한 스님이’라는 소리와 함께 질타도 나오고, 더한 소리도 나올 것이다. 율장에서는 무슨 일에서든지 비난을 듣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때 비사리국에 사는 여인이 사위국 사람에게 시집을 갔는데, 뒷날 시어머니와 다투고 친정으로 돌아가다가 우연히 아나율 비구를 만나 비사리로 가는 길을 동행 하게 되었다. 그 여인은 아나율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나는 비사리로 가려 합니다.”“저도 가려는데 동행 해주시겠습니까?”“좋습니다.”
재가 불자가 처음 뵌 스님으로부터 듣는 좋은 말씀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 고마운 마음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재가자는 보답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럴 때에 스님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발난타 비구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때 어떤 장자가 아침 일찍 동산을 구경하고 급고독원 문 밖에 수레를 세워두고 걷다가 발난타 비구를 만나 설법을 들었다. 발난타 비구는 언변과 지혜가 있었으므로 깨우쳐 주고 권장하여 기쁘게 했다. 장자는 설법을 듣고 말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 말씀이 공양일 뿐입니다.”“어려워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오.”“그만 두십시오. 설사 내가 필요한 것이 있더라도 모두 주지 못
과거에 30명이 살았던 큰방이 지금에 와서 보면 조그만 방이다. 어떻게 저 작은 방에서 잠자코 좌선 염불을 하면서 살았을까? ‘그 때는 모두 그랬으니까’라고 하기보다는 ‘요즘 우리가 너무 넉넉한 나머지 사치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은 모두 단월의 시주에 의해 지어지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시의 주거 환경은 과연 어떠했을까’는 다음 율장에서 엿볼 수 있다. 대가섭이 마가다국으로부터 비구들과 함께 오다가 광야국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 밥 때가 되어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을 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단정하고 몸가짐이 바른지, 다른 비구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거사들이 멀리서 보고는 집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외면하면서 비구들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가섭은 이
율장에는 지나치게 얻으려고만 하는 비구들에 대해 부처님은 나무라시면서 다음과 같은 설화를 말씀하셨다. 마치 오늘에 나를 말씀하신 것 같아서 옮긴다. 옛날 항하 강변에 나계범지(螺梵志)가 있었다. 항상 얼굴이 초췌하고 몸이 야위었다. 그때 부처님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몸이 그토록 야위고 얼굴이 초췌하냐?” 범지는 대답하되‘이 물속에 마니건대(摩尼捷大)라는 용왕이 있습니다. 그가 용궁에서 나와 항상 저의 몸을 휘감고 머리를 덮습니다. 그럴 때마다 용의 성질은 포악하고 급하다고 하는데, 혹시 목숨을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몸이 야위고 얼굴이 초췌합니다’라고 했다. 그때 부처님은 범지에게 물으셨다. “너는 용이 항상 용궁에 있고 너에게는 오지 않기를 바라느냐?” 이에 범
율장을 보다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 있어 옮겨 본다. 귀신도 자꾸 주는 사람에게 온다던가, 생활환경이 좀 넉넉해지니까 조금씩 편해지기를 원하고 그 욕심은 점점 커진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지난 날 사위성 급고독원에 있을 때이니라. 한 비구가 나에게 와서 머리 숙여 발아래 절하고 한켠에 앉았느니라. 나는 그를 위로의 말로‘너희들은 안거 동안에 편안하였느냐? 걸식하기에 힘들지는 않았느냐?’고 하였더니, 그는 ‘저희들은 편안하였고 걸식하기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사는 숲속에 있는 새들이 걱정이옵니다. 한밤에 슬피 울고 부르짖어 저희들이 선정에 들지 못하게 합니다’고 하였느니라. 나는 그 비구에게 말하기를 ‘그 새들이 다시는 그 숲에 와서 자지 않기를 바라느냐?’고
계를 지키고 지키지 않는 것이 개인의 이해관계처럼 보인다. 요모조모 따져봐서 작은 이익이라도 있으면 지키고, 없으면 싹 무시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러나 수행자는 나의 작은 바람결 하나라도 중생에게 해가 된다면 하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 그런데도 무시한다면 부처님이‘천불이 출세해도 제도하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이 맞는 말씀일 것이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성에 계셨다. 세상에는 흉년이 들어 걸식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때 여러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에 부처님이 앉으셔서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곡식이 귀해 걸식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한 곳에 모여 있지 말고 이 성의 좌우 마을에 마땅한 곳에 흩어져서 안거하라. 음식을 얻기가 어려워 힘들기 때문이니라.” 그때 어떤 비구들이 바구 강가에서
우리는 ‘훔치지 말라’는 계율을 훔친 그 자리에서 민형사상 법적으로 구속되지 않으면 수박이나 참외서리를 하는 것 쯤으로 여긴다. 마술처럼 속여 훔치거나, 강압적으로 빼앗거나, 비법을 합법으로 사칭하여 갖거나, 남의 이익을 가로채는 사기나, 노동력을 착취하고, 심지어 불전을 슬쩍하는 것 등은 모두 훔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물질이든 마음이든 남에 허락 없이 자기 것으로 만들면 모두 훔치는 죄이다. 훔치지 말라는 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 계실 때이다. 그때 라자하 성안에 단니가 비구는 조용한 곳에 초막을 짓고 살았는데, 걸식을 다녀온 동안 나무꾼이 초막을 뜯어가 버렸다. 단니가 비구는 생각하되 ‘나에게는 흙으로 벽돌을 굽는 기술이 있으니, 차라리 완전한 집을 지으리라’고 했다. 곧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에 계셨다. 그때 가란타 마을 출신 수제나는 가진 것이 많았지만 부처님께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 그 무렵 흉년이 들어 걸식하기가 힘들었다. 수제나는 ‘지금 흉년이 들어 걸식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비구들과 함께 고향에 가서 걸식하면 우리들이 범행을 닦기 쉬울 것이다. 그러면 고향사람들도 복덕을 짓게 되리라.’하고, 비구들과 함께 가란타 마을로 갔다. 수제나의 어머니는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맞이하러 가면서 말했다. “이제 수행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너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는 혼자 있으니,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이 몰락할까 두렵다.” 그러나 수제나는 “저는 세속의 옳지 못한 법을 익힐 수 없습니다. 저는 범행을 닦겠습니다.”고 했다.
오계는 불교가 생기기 전 이미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도 지켰다. 그러나 비구들의 계율은 제자들의 잘못이 생기면서 하나 씩 제정되었다. 잘못을 뉘우침에서 있어서도 지금은 곧 인정하고 참회하는 것이 부족하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곧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했다. 지금보다는 선근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다. 어느 때 부처님이 비구들과 함께 사위국을 지나 비란야 마을에 이르러서 만다라 나무 아래에서 쉬시었다. 이 때 마을의 바라문과 사람들은 듣고 말했다. “부처님과 비구들이 만다라 나무 아래에 계신다. 설법을 들으면 근기가 약하거나 중간이거나 뛰어난 사람 모두 맑은 행을 두루 갖추고 닦아 익히게 하신다. 그런 부처님이 오셨으니, 모두 가서 문안을 드리자.” 바라문과 사람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문안을 드리니,
그 순간 하늘 신이 돌을 받아 산 위에 놓았는데, 작은 돌 파편이 부처님의 발가락을 다치게 했다. 부처님께서는 손수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깔고 오른쪽으로 다리를 포개시고 누우시어 심한 통증을 참으셨다. 여러 비구들이 제바달다가 부처님을 해쳤다는 말을 듣고 각기 몽둥이와 돌을 들고 에워싸서 높은 소리로 외쳤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각기 있던 자리로 가서 수행에 전념하라. 모든 부처님의 법은 잘못을 덮어주고 보호하는 법이니라. 세상에는 옳지 못한 다섯 가지 일이 있나니, 어떤 것인가? 첫째는 계행이 높고 청정치 못하면서 ‘나는 계행이 청정하다’하면 제자들이 알고 생각하기를,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두어 보시를 받노라면 뒤에 저절로 알게 되리라’ 하는 것이다. 둘째
때에 제바달다는 부처님과 대중이 모이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사리불이나 목건련에게도 대중을 맡길 수 없거늘 하물며 너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맡기겠느냐.” 때에 제바달다는 아사세 태자에게 가서 말했다. “왕이 바른 법으로 다스리면 오래 사는데, 그대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 당신이 왕이 되려면 이미 늙어서 오욕락 속에 오래 머물며 즐기지 못할 것이요. 그대는 아버지를 죽이고 나는 부처님을 헤치면 마가다국에는 새 왕과 새 부처가 나라를 다스리고 교화하리니, 이 아니 즐겁겠소.” 아사세왕자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지금 무엇이 필요합니까?” 제바달다는 대답했다. “나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왕자가 곧 여러 사람을 보내었다. 때에 제바달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