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꾸미지 않아도 절로 빛을 발하니 굳이 남의 시선을 끌려 할 필요가 없다. 덧바르고 자랑하려할 때 진정한 아름다움은 떠난다. 꾸밈이 많아지면 가식이 되고 화려함이 지나치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미라고 여겨져 온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사찰은 이런 아름다움의 정의(定義)에 가장 어울리는 곳이다. 경내를 거닐면 고상하고 편안한 기운이 온몸에 그득 퍼져온다.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고 또 이래야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사찰의 문화
미술과 음악은 예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서로 가장 잘 어울리는 분야인 것 같다. 미술작품을 아름답게 느끼는 요소 중 하나가 색(色)인데, ‘색은 눈으로 보는 음악’이라는 말도 이를 뒷받침하는 듯 하다. 예술을 감상할 때 ‘보고 들으면’ 이 둘의 상승효과가 커지는 것은 여러 연구로 밝혀져 있다. 음악연주회를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 안에서 갖거나, 미술교육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 음악을 함께 들려주어 작품의 이해를 높이려는 시도도 그래서 종종 이뤄진다. 그런데 이렇게 미술과 음악이 서로 어우러지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둘이 곧 하나가 된
오늘날 드넓은 터에 기와조각 뒹굴고 주춧돌만 남았어도 옛날에는 굴지의 사찰이었던 곳이 한둘이 아니다. 백제와 신라의 최대 사찰이었던 미륵사지와 황룡사지는 말할 것도 없고, 통일신라시대 선종 사찰의 대표 격이었던 양양 선림원지와 진전사지, 고려시대 최고의 왕사들이 머물렀던 양주 회암사지 등이 그런 곳들이다. 비록 그 옛날 화려했던 전각은 다 사라지고 역사기록 마저 변변히 전하지 않아도, 절터에 남은 불상이나 탑을 보면 옛날의 성관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청 석남암도 그런 고찰 중 하나다.766년 조성된 통일신라 불상명확
우리 미술의 여러 분야 중에는 전 국민이 모두 전문가 못잖은 지식을 갖고 있는 주제들이 있다. 그 만큼 모든 사람들이 평소 관심을 많이 갖고 잘 아는 미술품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여기에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면 언제든 옆에서 한두 마디쯤은 거들 줄 아는, 또 기꺼이 그러고 싶어 하는 토픽이다. 예를 들면 석굴암과 불국사,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등이다. 이렇게 ‘국민 미술’로 꼽히는 주제 중 하나가 고려 불화일 것이다.고려시대 수월관음도 중에서도가장 수준 높은 작품으로 꼽혀 필법·채색·표현기법 ‘
강진 무위사(無爲寺)는 우리나라 불교벽화의 보고(寶庫)이자 향연이다. 불화 없는 사찰이야 없지만, 이곳처럼 벽화 형태로 500년을 훌쩍 넘기는 작품이 많이 남아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림의 주제도 다양해 삼존불화를 비롯한 아미타내영도, 오불도 2점, 관음보살도 및 보살도 5점, 주악비천도 6점, 연화당초향로도 7점, 보상모란문도 5점, 당초문도·입불도 각 1점 등 총 29점이 전한다. 작품성 또한 뛰어나 삼존불화와 아미타내영도, 관음보살도, 당초문도 등은 고려불화를 계승한 조선 초기 불화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로 손꼽힌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인류의 미(美)를 향한 추구를 기차여행으로 표현해 본다면 한 시대의 양식(樣式, Style)은 중간 역으로 비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선사시대부터 떠나온 머나먼 여정 동안 우리는 삼국, 고려, 조선이라는 이름의 역을 차례로 지나와 지금은 현재라는 역을 지나치고 있다. 한참을 가다가 역에 내려 잠시 숨을 고르면서 지나온 여행을 되돌아보면 그 때까지의 경험은 가슴과 머리에 담겨 추억으로 간직된다. 그리고 또 다시 다른 역을 향해 떠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안목도 기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여행(미의 추구)
사찰의 영역을 뜻하는 사역(寺域)을 나타내기 위해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는 당간지주를 세워 그 입구를 표시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그 역할을 일주문이나 불이문 등이 대신했다. 사역은 넓은 의미의 사찰 전체 구역을 뜻하는 말이고, 경내(境內)라고 할 때는 특히 금당과 법당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한정해서 가리키는 게 보통이다. 평지 가람의 경우 사천왕문 등을 들어서면 경내에 들어서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지 가람은 산에 자리한 입지적 특성상 문 대신에 대개 누(樓)를 통해 경내로 들어서게 되
예술의 양식(Style)은 늘 그 시대의 기억을 담고 있다. 특히 한창 전성기에 만들어진 작품은 당대의 정신과 문화를 어떠한 기록보다도 더 잘 대변해준다. 그래서 예술은 곧 사료(史料)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갈 때 만들어진 작품은 어떨까? 이른바 전환기 또는 과도기에 만들어진 미술에는 늘 둘 사이의 접점과 경계에 섰던 고뇌의 흔적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지금까지는 이런 과도기 작품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완성된 아름다움을 위주로 미술사를 보려는 경향 때문이다.신라·고려 미술 전통양식인팔각원당형
미술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대입해야 할 특별한 공식은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 기준으로 바라보면 감상하기가 훨씬 좋다. 예를 들어서 비율(portion), 대칭(symmetry), 집중(focusing) 등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고려시대 불교공예 대표작품비율·대칭·집중 모두 압권얇게 새긴 무늬 은실로 채워당대 꽃피운 전통무늬 집합체당초문·연꽃 등 ‘패턴의 향연’ 새겨진 글은 조선시대작 추정작품성 비해 낮은 관심 아쉬워작품을 보자마자 단박에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정도 내공은 수십 년 공부한 사람도 어려
사찰 문화재는 우리 문화의 정수이니 이를 보려 사찰을 찾는 일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문화순례다. 문화재를 보러 사찰로 가는 걸음은 그래서 고단한 여정이 아니라 즐거운 여행길이다. 어떤 사찰에는 한둘이 아니라 여러 점의 훌륭한 문화재들이 자리한다. 이럴 때면 많은 시간 들이지 않고서도 한 곳에서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이렇게 눈이 즐거운 안복(眼福)을 한껏 누리면서도, 별 힘 들이지 않고 이런 작품들을 대한다는 게 어쩐지 우리 문화에 대한 불손 같기도 해 슬며시 걱정이 될 정도다. 우리
미술은 화학작용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대 특유의 사상 위에다 당시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감수성이 더해지면서 전혀 새로운 미술이 탄생하곤 해서다. 사상과 감수성은 서로 성질이 다르지만, 부처님을 흠모하는 마음을 촉매로 하여 하나로 섞일 때 그 시대가 염원하는 미술로 나타났다. 나라와 사회마다 추구했던 사상이 다를 수 있고, 감수성 역시 한결같지 않았으므로 시대마다 다른 성격의 미술들이 역사에 이름을 올렸으니, 미술을 보면 곧 그 시대를 알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더욱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인 것 같다.644년 이전 조성된 삼국시대
미술 표현에 여러 형식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애불(磨崖佛)처럼 독특한 분야도 찾아보기 어렵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은 다음 불상을 새긴 것이 마애불이다. 쪼고 새기는 기법은 조각이면서 장식 면에서는 벽화나 한가지고, 게다가 많은 대중이 야외에 모여 한꺼번에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괘불의 기능과도 견줄 만 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6세기 후반 혹은 7세기까지 올라가니 꽤 고고(高古)한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이 작품들은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수 백 점을 헤아릴 정도라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벨기에 출신의 화가 루벤스(1577~1640)는 바로크시대 최고의 거장으로 꼽힌다. 그의 걸작 중 하나가 영국 햄프턴 왕궁 천정에 그린 ‘왕의 계단’이다. 이 그림은 가까이 보면 흐릿하고 잘못 그린 것 같은데 10여 미터 아래서 보면 오히려 또렷해지고 아름답게 보인다. 루벤스가 궁내 한가운데까지 못가고 그저 맨바닥에서나 멀찌감치 올려다봐야 할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기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누구나 볼 수 있게 그려진 괘불멀리서도 선명한 아름다움 특징서민 배려서 비롯된 대중적 면모1652년 조성된 안심사 괘불은석가불 설법 담은 영산회상
충청북도 괴산군에 유서 깊은 명찰 각연사(覺淵寺)가 있다. 각연사 둘레에 높다랗게 서서 병풍마냥 둘러싼 보개산(寶蓋山)도 이 지역의 명산이다. ‘보개’란 부처님 머리 위에 놓인 일산(日傘)인데, 1세기 무렵 인도에서 불상이 처음 나타날 때부터 표현된 오래된 장엄이다. 다시 말하면 우뚝 솟은 산들이 부처님이 있는 절 주위를 일산마냥 두르고 있다는 의미다. 이 보개는 조선시대에 와서 법당 안으로 들어와 불상 위에 장엄되는 ‘닫집’으로 형상화 되었다. 어떤 이는 각연사 주위 산들의 이름을 보면 칠보산·보배산·덕가산 등이지 ‘보개산은 없다
세상에 나타난 숱한 종교와 사상들은 어느 특정한 민족이나 지역에서만 꽃피운 한계를 갖는 게 대부분이다. 세계를 아우르는 국제성과 영속성이 부족한 것이다. 아시아만 예를 들어봐도 중국의 도교와 노장사상, 일본의 신교와 신사(神社)문화가 그러했다. 반면에 불교를 비롯해 기독교와 가톨릭교 그리고 이슬람교 등은 어느 한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전파되며 세계종교로서 더욱 발전되어 나갔고 지금도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다. 특히 불교는 인도에서 출발하여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다양
불교공예 중에서 가장 손길이 많이 가고 정성스럽게 만들게 되는 것이 사리장엄(舍利莊嚴)이다. 사리장엄이란 탑에 봉안된 불사리를 담은 용기들을 말하는데 병·호·합·상자 등 여러 형태로 만들어진다. 불교공예 대부분 공양이나 예불을 올릴 때 사용되는 공양구(供養具)로서 그 자체가 불상이나 불화 같은 경배의 대상은 아니다.2007년 발굴된 온전한 사리장엄백제의 수준높은 미술문화 증명“무령왕릉 이후 최고 발굴” 평가유리 아닌 금제 사리병 주목받아 청동제 사리함에 새겨진 명문은해석 차로 연대논쟁 불러 오기도백제 자체 기술로 제작된 유물가장 오
불교미술 가운데 본질적으로 가장 화려하게 만들어지고 꾸며지는 것이 사천왕상(四天王像)이다. 대체로 불보살상이나 다른 불교조각 등은 모두 외형이 검박하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일관되게 마련이다. 불상에 내재해 있는 자비와 위엄 그리고 섬세함도 이런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 있다. 그래야 불보살 본래의 면목에도 부합하고 이를 본 사람들도 감복해 귀의하는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이다.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사천왕상소조 아닌 목조상으로 희소가치1515년 조성기록 명확히 전해져신라·고려 양식 전통 갖추면서조선 후기 양식 선도하고 있어불교조각사 비중 매우
오래된 작품에는 전설이 뒤따르곤 한다. 작품이 뛰어날수록 그것을 만든 배경에 얽힌 전설은 꼭 있기 마련이다. 이 같은 전설은 작품의 감상에 묘미와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된다. 그런데 어떤 작품에는 전설이 곧 역사요 사실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역사책에 차마 그대로 다 싣지 못할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져 전설로 남은 경우가 왜 없겠는가. 이런 전설은 다른 형태로 ‘기록’되니, 책이 아니라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설의 내용과 작품의 분위기와 양식이 일치하는 사례가 곧잘 있으니, 그 중 하나가 바로 충주 미륵리에 있는
절이 하나의 열린 박물관이라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경내 안팎이 신앙과 예술이 어우러지고 조화된 독특한 문화재로 장엄되어 있고, 산자락에 고즈넉이 자리한 절 주변에는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니 이 속에 있으면 저절로 기운이 샘솟는다. 자연과 점점 멀어져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만한 치유의 공간도 없을 것 같다. 절을 들어설 땐 잔뜩 지치고 허허롭던 마음이 절을 둘러보고 되돌아설 땐 넉넉하게 채워진 마음과 가뿐한 걸음으로 산문을 나서게 된다. 볼 게 많고 느끼는 게 많은 공간이 바로 절이다.사찰은 하나의 열린 박물
화려와 절제는 미술 표현의 두 축이다. 화려함은 미술의 원초적 목적인 장식과 꾸밈을 위한 필수적인 외연(外延)이고, 절제는 고양된 미의식의 고상한 침묵이다. 화려하기만 해서는 산만해지기 쉽다. 반대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절제만 한다면 그건 철학이지 미술은 아니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한다. 불교미술에도 기본적으로 화려와 절제의 조화가 필수다. 우리 불교미술은 선종의 영향으로 적어도 고려시대 이후로는 절제라는 측면이 조금이라도 더 강조된 편이다. 그중에도 탑은 늘 절제의 미가 최고덕목으로 간주되었던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