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레 호수는 미얀마에서 두번째로 큰 담수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만큼은 비견할 곳이 없다. 양곤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미얀마 중서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인레(Inle) 호수. 미얀마 내륙으로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인레 호수는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다. 햇빛에 부서지는 비취빛 물결의 풍경과 물 위의 사원, 호수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수상족 등 다양한 볼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병풍처럼 펼쳐진 푸른 산과 거울처럼 투명한 에메랄드빛 호수가 빚어내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은 태고의 흔적인 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런 명성 때문일까? 인레 호수는 이방인에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미얀마에서도 손꼽히는 산악지대인 샨주의 험악한 산길을 끼고 위치해 있기
대한불교화엄종 종회의장을 역임한 정희수 대법사(화엄승가장학재단 이사장)가 2월 20일 노환으로 입적, 22일 발인했다. 세수 85세. 02)730-0798
화계사에는 외국인 스님들의 도량인 국제선원(사진 오른쪽)과 재가선원이 있다. 행원 스님과 고봉 스님이 마주 앉았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적멸의 한 가운데서 숭산 스님의 일구가 터져 나왔다. 순간 고봉 스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고봉 스님은 환희에 찬 미소를 머금으며 숭산 스님을 안았다. “네가 꽃을 피웠는데, 내가 왜 네 나비 노릇을 하지 못하겠느냐!” 1949년 1월 25일 고봉 스님은 행원 스님에게 법을 전하며 숭산이라는 당호를 내렸고 이 때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앞으로 3년간 묵언하라. 너는 이제 무애자유인이다. 500년 후에 다시 만나자. 너의 법이 세계에 두루 퍼질 것이다.” 한국의 선풍을 세계에 펼쳐보였던 숭산행원 스님. 스님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은 크게 낙담하게 된다. 이 때 어떤 격려나 위안도 소용이 없다. 죽는다는 것은 최대의 슬픔을 당하는 것이므로, 슬퍼하지 말라고 위안할 수도 없다. 그처럼 우울한 시기에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슬픔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병으로 죽게 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 슬퍼지게 되는데, 이는 ‘반응으로서의 우울’이다. 또 가까운 시일 안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우울해지게 된다. 이는 ‘죽음 예감을 통해 느껴지는 예비적 우울’이다. ‘반응으로서의 우울’은 이미 걸린 병에 말미암아 야기되는 현상이다. ‘죽음 예감을 통해 느껴지는 예비적 우울’은 앞으로 일어날 자신의 죽음, 즉 미래의 상실에 의해 초래되는 현상이다. 다가오는 죽음을 예측하면서 미리 슬퍼하는 상태인 것이다.
로카찬다 사원의 건립은 근세 이후 미얀마 최대의 불사였다. 사진은 황금 사자상의 버티고 있는 사원의 입구. 견디기 힘든 고통도 세월이 지나면 추억이 되는 법이다. 쓰리고 아픈 기억일수록 더욱 그렇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나, 과거의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을 보며 아련한 회상에 잠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세월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는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와 민족이 이룬 역사와 문화에도 이런 현상은 예외없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불가사의로 일컬어지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중국의 만리장성, 아름다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인도 타지마할 등 힘없는 민초들의 고혈로 이루어진 흔적들이 오늘날 위대한 인류의 유산으로 칭송받고 있으니 세월의 조화는 참으로 얄궂은 것이다.
조계사(주지 원담 스님)는 오는 2월 24일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 동안거 회향 야생동물 방생법회를 봉행한다. 조계사 불자와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회원 등 사부대중 1500여명은 방생법회 의식에 이어 수리부엉이, 독수리, 말똥가리, 큰소쩍새 등 우리 생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조류 30마리를 방생하면서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방생 법회단은 24일 당일 오전 6시 30분 조계사 앞에서 출발한다. 02)720-2115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되는 이 단계는 환자가 주위사람과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시기이다. 임종환자가 주위사람에 대해 매우 협조적이고 개방적이기 때문에, 환자가 품고 있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정리하는 ‘삶의 마무리’에 적합한 시기이다. 예를 들어 유언을 쓰도록 권유한다든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감정적 갈등이라든가 엇갈림이 있다면 화해하도록 이끈다든가 주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기에 적합한 시점이다. 이 시기에 인생을 충분히 되돌아보고 인간관계를 차분히 정리하지 않으면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기 어렵게 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시점은 이 세상에서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과 끝을 맺는 시점이다. 이 세상 삶의 마무리, 죽음이 임박한 말기환자 대부분의 경우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치 자기 문
쉬라바스티는 부처님 당시대로 소박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들의 마을이다. 미국의 서해안 즉 태평양 연안에서 제일 북쪽에 위치한 위싱턴 주 뉴포트 시 근처의 아늑한 산속에 자리잡은 쉬라바스티 승원은 티베트불교 겔룩파의 비구니 툽텐 쵸드론 스님(Thubten Chodron, 1950 - )이 세운 수행센터이다. 쉬라바스티는 원래 붓다가 25번의 우안거를 그곳에서 나면서 수많은 설법을 남긴 인도의 유서깊은 도시 이름이다. 인도를 성지순례하던 중 쵸드론 스님은 붓다 시대의 쉬라바스티에 비구니사원과 비구사원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소중히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자신이 짓는 승원 이름 목록에 넣었는데 달라이라마도 스님과 마음이 통했던지 그 중 쉬라바스티가 좋겠다고 추천하였던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면 또 하나의 문을 만나게 된다. 이 문을 통과하면 기초과정을 끝내고 숲 속 수행에 들어간 사람들의 처소가 나온다. “미얀마 불교는 참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니 왜요?” “스님들이 왜 분홍빛 승복을 입고 다니는 건가요?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무슨 수행을 한단 말인지, 원.” 차창 밖을 유심히 보던 일행의 입에서 문득 나온 말이다. 얼굴이나 형색은 분명 비구니 스님 같은데 붉은 가사 장삼 대신 분홍색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들을 보며 나 또한 적잖이 의문을 품고 있던 차였다. “아! 저 사람들은 스님이 아니에요. 미얀마 말로 ‘틸라신’이라고 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사미니 정도 되겠네요. 미얀마에는 비구니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정식 스님이라 볼 수 없지
임종 직전 외도남편과 화해 “최고 행복” 죽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네 번째 반응은 삶의 마무리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언가에 쫓기듯이 황망하게 죽기 보다, 인간관계상 갈등이 있다면 원만하게 화해를 하고, 매듭짓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잘 마무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유방암 말기환자 김순애씨는 처음 만났을 때 세상을 비관하고 있는,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독신여성이었다. 병실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나 화를 잘 내는, 다루기 어려운 환자였다. 무언가 물어 보아도 대답도 잘 안하고 시니컬하게 굴기 때문에 간호사들도 기피하는 까다로운 환자였다. 그녀는 아직 41세에 불과했으나 50세도 더 되어 보이는 얼굴로 하루 종일 찡그리고만 있었다. 병수발을 하는 늙은 친정어머니한테도 짜증을 부리곤 했다. 유방암 진단을
"절은 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부처님과 자신에게 온 마음을 돌리는 수행. 절은 내 모든 걸 낮춰서 부처님에 대한 존경을 몸으로 나타내는 공부. 나 자신 완전히 굴복시키면 어느 순간 참자아 발견." “절은 내 모든 걸 낮춰서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을 몸으로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또 절은 부처님 앞에서 나 자신을 굴복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완전히 굴복시키면 어느 순간 참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108배, 1000배, 1080배, 3000배, 1만배를 하는 것입니다.” 1월 25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법왕정사 군자법당에서는 청견 스님의 절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스님은 실기에 앞서 절 수행의 의미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절을 무수히 하다보면
당장이라도 금물이 떨어질 듯 웅장하고 화려함을 내뿜는 인류가 쌓은 가장 오래된 불탑 “구름과 안개 속에 흐릿했던 아침, 내가 쉐다곤을 처음 대면했을 때 쉐다곤은 불로 된 혀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맑게 갠 날 정오(正午)의 모습은 평화롭고 장엄하였으며, 달빛 고요한 밤에 드러내는 자태는 신비로웠다. 나는 사는 동안 황혼과 폭풍우, 빙하, 공원, 꽃 그리고 사람의 얼굴 등 나를 감동시켰던 많은 것들을 보아왔지만 인간의 손으로 창조한 모든 것들 중에서 내가 아는 한 쉐다곤이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쉐다곤을 처음 보았을 때 뛰었던 가슴과 기억 속의 그 아름다움은 언제나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국의 대법관 윌리엄 더글라스(William O. Douglas) 감동에도 차이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