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설파한 가르침경전만 읽고 전부인양주장은 앵무새에 불과경전 근거한 수행 필수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웬만한 정보는 바로 검색이 되는 편리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남의 글을 자기 것인 양 포장한 글들을 쉽게 찾아내기도 한다. 요즘 공직자들을 보면 논문 표절 문제로 낙마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있다는 말로 굳이 임명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도덕성 따윈 문제 삼지 않겠다는 임명권자의 굳은 의지(?)를 엿보게 된다. ‘담마빠다’에 “마치 소치는 사람이 남의 소들을 헤아리는 것처럼”이란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의 배경은 이러하다.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한 두 스님이 있었다. 이 분들은 속가시절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 분은 통찰수행(vipassan&
물이 새기 시작하면안 새던 곳도 새게 돼모르는 사이 물드니늘 점검하고 수행해야 옛 속담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라는 말이 있다. ‘본바탕이 좋지 아니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그 본색을 드러내고야 만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의미의 경문이 ‘담마빠다’에 나온다. “(지붕의) 이엉이 허술하게 이어진 집에 비가 새듯이”, “(지붕의) 이엉이 잘 이어진 집에 비가 새지 않듯이”라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평소 마음이 잘 닦여지지 않은(abhāvita) 마음에는 탐욕(rāga, 貪欲)이 새어들고, 그렇지 않고 마음이 평소에 잘 닦여져 있으면 탐욕이 새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는 ‘평소에 늘 준비하라’는 것이다. 늙음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상황은
안·이·비·설·신·의여섯 감각에 휘둘려쾌락에만 젖어 살면삶의 목적 잃고 방황 비유 가운데, ‘높은 나무에는 바람이 세다’란 표현이 있다. 이는 자신의 위치가 높아지면 질수록, 위태로운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이다. 그냥 ‘바람이 세다’라고 할 때는, 내가 처한 외부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럴 경우, 맞서는 것 보다는 한발 물러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자신을 낮추어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담마빠다’에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쓰러뜨리듯’, ‘바람이 바위산을 무너뜨리지 못하듯’이란 표현이 나온다. 바람이 세찬데, 내가 그것을 견딜 만큼 굳세지 못하면, 바람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능히 감내하며 견딜 수 있다면 다소의 저항은 있을지언정, 바람이 나를 쓰러뜨리는 일은
나쁜 마음이 짓는 언행빛으로 반드시 생기는그림자처럼 고통 전해행복, 선한 언행서 비롯 우리에게 ‘법구경’으로 잘 알려진 ‘담마빠다’는 그 어떤 경전보다도 풍부한 비유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경전이다. 그 비유들 중에는 너무나도 유명하여 누구나 한 번쯤을 들어보았을 법한 내용들이 많다. 또한 ‘담마빠다’는 ‘숫따니빠따’와 더불어 초기경전 가운데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경전이자, 고층(古層)의 문헌으로 유명하다. 부처님의 원음을 가까이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경전으로 늘 언급되는 것이기도 하다. ‘담마빠다’를 펼치자마자 나오는 비유가 있다. 바로 ‘수레바퀴가 (황소의) 발자국을 따르듯, 그림자가 (자신을) 떠나지 않듯’이란 비유다. 상상해 보자. 한가한 시골 벌판에 한 농부가 황소가 끄는 달구지에 타고
사람이 귀하고 천함은 말·행위에 따른 결과지위나 신분 기준으로판단하는 것 어리석어 ‘숫따니빠따’의 많은 비유 가운데, 마지막으로 ‘천한 사람’이란 비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비유는 ‘천한 사람의 경(Vasalasutta)’에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비유라기보다는 은유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천하다’라고 할 때, 우리는 사전적 정의로 ‘지위나 지체가 낮다’ 혹은 ‘말이나 행동이 상스럽다’란 의미로 받아들인다. 대개는 첫 번째 ‘지위나 지체’가 낮은 사람을 ‘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처님은 천한 것은 지위나 지체 때문이 아님을 이 경에서 밝히고 계신다. 이 경의 배경은 이러하다. 부처님께서 사왓띠(사위성)로 탁발을 나가셨을 때, 바라드와자(Bhāradvāja)라고
감각적 쾌락인 성욕충족되지 못하면 고통타는 불구덩이 보듯이위험성 깨닫고 피해야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구덩이를 피하듯이’란 표현은 ‘숫따니빠다’ 제2품(Cūla vagga), ‘담미까의 경’에 나온다.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적 행위의 위험에 대한 것이다. 빨리어로 욕망을 나타내는 말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 성적 욕망을 나타낼 때는 까마(kāma)라는 말을 쓴다. 경전에서는 특히 성적 욕망에 대한 강렬한 추구를 나타낼 때 까마땅하(kāmataṇhā)라는 표현도 쓴다. 이 말은 (성적) 욕망의 대상에 대한 갈증(갈망)을 의미한다.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적 욕망의 위험을 말씀하신 내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수행자에게 있어
어머니가 목숨 걸고자식 지키고 싶듯이늘 깨어있는 맘으로자신의 삶 잘 살펴야 ‘숫따니빠따’ 뱀의 품, ‘자애경’에는 “마치 어머니가 목숨으로 자신의 외아들을 지키려고 하듯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자애경’에 나오는 이 표현은 어머니가 외아들을 목숨 걸고 지키듯이 그렇게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을 닦으라고 하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사무량심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는 표현인 것이다. 이 표현은 그대로 후대의 ‘대승범망경’에서도 나온다. 사무량심은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 가운데 하나이다. 이 수행을 잘 닦아 익히면 해탈에 이르고,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범천(梵天)이란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된다. 옛 선사들은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머리에 붙은 불을
인도 코뿔소 외뿔처럼세속 가치 등진 수행자자신 돌이켜보는 거울혼자인 삶에 당당해야 ‘코뿔소의 뿔’ 비유는 ‘숫따니빠따’ 뱀의 품, ‘코뿔소의 뿔의 경’에 나온다. 이 표현은 법정 스님의 번역어인 ‘무소의 뿔’로 더욱 유명하다. ‘코뿔소의 뿔의 경’은 41개의 시로 이루어졌으며, 각 시의 후렴구에 이 표현이 붙어 있다.코뿔소의 뿔은 ‘홀로 묵묵히 걸어가는 수행자’의 모습을 빗댄 표현이다. 이유는, 인도 코뿔소가 외뿔이기 때문이다. 마치 갑옷을 입은 듯한 모습과 외뿔은 어떤 외부적 유혹이나 두려움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수행자의 굳센 마음가짐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이 인도 코뿔소는 새끼를 돌보는 어미를 제외하고는 단독생활을 하는 온순한 초식동물이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법선언을 하시면서 ‘둘이
무화과나무 꽃 찾듯이‘영원한 영혼’ 집착은자신만 괴롭히는 행동순간의 삶 잘 살아야 이 비유는 ‘숫따니빠따’ 제1품 ‘뱀의 품’에 나오는 표현이다. 한 때 부처님께서 사왓띠에 머물고 계실 때, 한 바라문이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어떠한 천민도 이제껏 사용한 적이 없는 꽃으로 딸을 장식하여 시집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못된 성품을 지닌 바라문 청년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저들 중 누군가는 알겠지”라고 생각하고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속으로 비웃으며 “바라문이여, 무화과 꽃은 세상에서 그 누구도 이전에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따님을 장식하여 시집보내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찌라와띠 강변에 있는 무화과 숲에 가서 나무를 샅샅이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
이 비유는 ‘숫따니빠따’ 제1장 ‘뱀의 품’에 나오는 비유이다. 부처님께서 알라위(Āḷavi)국에 있는 악갈라와(Aggāḷava) 탑묘에 계실 때였다. 그때 알라위의 비구 수행자들은 자신들이 머물 처소를 지으려 나무를 베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살고 있는 천신들(devatā)이 ‘존자들이시여, 자신의 처소를 지으면서 우리의 처소를 자르지 마소서’라고 말했음에도, 한 비구가 나무를 자르다가 천신의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이에 천신들이 크게 분노하여 그 비구를 죽이려 하다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이일을 고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천신들이여, 참으로 잘하였다. 그 비구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라고 하시며 천신들을 달래었다. 그리곤 천신들에게
어린아이가 묻는다. ‘죽음이 뭐예요?’ 이러한 질문에 부딪히면 설명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훌륭히 설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적잖이 망설이게 된다. 이럴 때, 어린아이에게 죽음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적절한 비유는 그 어떤 사실적 묘사보다도 더 훌륭하게 어떤 사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이야기는 권력자들이나 사회지도층이 부패하면 일반 국민들도 법을 가벼이 여겨 부정에 익숙해지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다. 이렇듯 긴 의미를 한 줄로 간명하게 표현하면, 백 마디 말보다 훨씬 피부에 와 닿게 된다.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심오하여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