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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작

기자명 이미령
지금부터 나는 당신과 함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읽어가려 합니다. 아, 그런데 만일 당신이 다음 생에 극락 갈 밑천 두둑하게 마련하셨다면 굳이 아까운 시간을 내어 이 글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 얼굴 속에서 부처님을 발견하고, 하는 일마다 큰 이익을 내며, 일가친척이 약속이나 한 듯 부자되고 승진하고 대학에 붙고 장수한다면 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크게 아파본 적도 없고, 혹시 수술을 해도 금방 회복되었으며, 자식들은 어쩌면 그리도 속 한번 안 썩히고 잘 살아주는지 절로 감탄이 나오시는 분, 혹시 지금 미군의 폭탄이 비처럼 퍼부어도 당신은 아무런 찰과상 하나 없이 그 속에서 살아남으리라고 자신하시는 분.... 이런 분들은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살아온 삶의 갈피를 넘겨 보십시오.

아무리 뒤적거려보아도 무병장수하다 잠자듯 세상 떠난 어르신 안 계시고, 신통방통한 소식이라고는 가뭄에 콩 나는 일보다 더 드물고, 게다가 복권에 당첨된 적도, 의외의 보너스 받은 적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나 역시도 당신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인과법칙에 가급적 맞추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뭔가 좀 이렇게 되었으면...”할 때 그 일이 척척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제발 저런 불행에는 걸려들지 말았으면...”할 때는 용케도 피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부처님법 만난 뒤에는, 앞 못 보는 거북이 바다 속에서 백년 만에 고개 내밀어 나뭇구멍에 머리 들이미는 행운을 잡은 거라며 위안주던 경전의 말씀에 잠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였습니다[불설니리경]. 지옥에서 천상까지의 그 정신없이 뺑뺑이 도는 운명 속에서 인간의 몸을 만난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이냐는 부처님 말씀에는 어깨를 으쓱거려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환호성보다는 한숨이 더 자주 쉬어집니다. 분명히 저에게는 좋은 일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기억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제 가슴 속에는 슬펐던 일, 억울했던 일, 아팠던 일이 더 또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신문을 펼쳐보아도 숨막히는 일들뿐입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슬픈 일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의 내면에서 빚어지는 슬픔과 괴로움, 현실에서 부닥치는 위험과 병마, 가족간의 불화, 이 사회의 범죄, 그리고 또 하나의 불행으로 역사에 기록될 국가간의 전쟁들....

“세상이란 게 전쟁도 있고 평화도 있는 법이지...”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뭘...”

당신도 저도 그저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볼 뿐입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 lmrcitta@hanmail.net )



이미령 님은 1982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 1993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좬원효, 법장의 기신론관 비교연구좭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이며, 광명 금강정사 교육원에서 기본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번역서로는 <경전의 성립과 전개>, <붓다 그 삶과 사상>, <아함경>,<본생경>, <밀린다왕문경> <대당서역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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