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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서양 선불교와 여성-상

기자명 장은화

서양에서 선은 종교적 신앙보단 사회 변혁운동

1960년대 미국 베이비붐 세대에
폭발적 관심 끌며 불교수행 인기

페미니즘 물결 속 대안종교로서
성 중립·구속 없는 자유로움 어필

소박·품격있는 분위기 자아내며
다도 등 예술 활동 즐기며 확산

영어 예불문 속 남성중심 대명사
성 중립적 언어로 바꿔나가기도

60년대 초 미국에서 좌선수행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서예 등 고상한 예술을 함께 즐길수 있는 점은 여성들에게 호소력있게 다가갔다.
60년대 초 미국에서 좌선수행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서예 등 고상한 예술을 함께 즐길수 있는 점은 여성들에게 호소력있게 다가갔다.

현재 서양에서 전개되고 있는 선은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종교적인 깨달음 추구보다는 일상생활에 선의 통찰을 적용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불교에서는 문화적인 제약 때문에 출현하기 어려웠던 여성 주도의 선은 그 수행영역이 확장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될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여성이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사실은 선 수행 패턴의 획기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교적 신앙보다는 사회변혁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는 서양선이 여성 주도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양상을 적어본다.

1960년대 미국에는 선의 붐이 일어나면서 여러 가지 발전상이 전개되었다. 우선 일본 조동선, 삼보교단, 그리고 티베트불교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선불교는 베이비붐 세대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들이면서 그 양상이 철학적, 지적 탐구로부터 수행적인 측면으로 전환되었고, 그에 따라서 선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거기에다 중국선을 비롯한 한국선, 베트남선도 미국 땅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또한 이민법이 완화되면서 아시아로부터 이민이 급증했고, 이 이민자들은 아시아불교를 미국 땅에 확산시키면서 절의 건립, 후속세대의 교육 같은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62년 일본 조동종 선사 스즈키 슌류는 샌프란시스코 선원을 열어 미국인을 대상으로 최초로 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남녀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 수련생들은 비트운동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1960년대의 반전, 반문화운동이 시작되기 직전 세대의 젊은이들로서, 대부분 보헤미안, 좌익성향의 인텔리, 전문직 등이었다. 당시 미국의 여성들은 업과 윤회를 믿고 공덕을 쌓아 더 나은 내세를 위해 신앙생활을 해나가던 아시아의 여성들과 그 성향이 크게 달랐지만, 일본인 선사들은 대부분 아시아불교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남녀가 한 자리에서 수련하는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면서 선의 이식에 집중했다.

수행의 불교가 개막된 60~70년대의 미국은 페미니즘의 물결이 한창이었다. 이때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의 자격을 아내와 어머니로 격하시켰던 1950년대의 엄격한 성역할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성차별을 넘어선 대안종교에 다가가게 되는데, 이때 미국에 막 출현하게 된 선은 여성들에게 크게 호소력이 있었다. 7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여성들은 가사와 남성의 뒷바라지를 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안주하지 않고, 해방을 부르짖으며 사회의 모든 면에서 남성과 대등하게 다양한 역할을 해나갔고 선 수행에도 적극 동참했다. 여성들이 보기에 선은 기성종교와 다르게 성의 제약이 없고, 성 중립적이며, 종교적인 구속도 없었고, 매우 자유로웠기 때문에 당시 많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불교와 페미니즘을 동지처럼 여기고 수행에 동참했다.

일본선이 사무라이 전통을 연상시키고 또 그 때문에 남성에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60년대 초 미국에서 좌선수행은 처음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여성들이 호감을 가졌던 것은 선과 서예, 도자기, 다도, 꽃꽂이 같은 고상한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선 수련의 양식도 여성들이 싫어할 요소가 없었다. 선방의 분위기도 깔끔했고, 소박한 불단 위에는 불상도 거의 없었고, 향은 냄새가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꽃은 우아하게 불단을 장식하고 있었으니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는 분위기가 여성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불교수행에 입문한 미국의 여성들은 처음에 두 가지 문제에 직면했는데, 그것은 아시아의 전통불교에서는 대체로 여성이 교리공부 및 수행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은 첫째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야 했고, 둘째로 페미니즘과 불교를 통합해야 했다. 60~70년대에 명상수행과 교리공부를 시작한 미국인 여성 불교도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의미나 전통불교의 여성관을 곧바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 까닭은 서양의 젠더 관습이 아시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미국에 온 아시아 선승들이 남녀의 차이를 두지 않고 가르쳤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시아의 선사들이 대체로 차별 없이 여성 제자들을 가르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왜 젠더에 관해 아시아불교의 규범을 적용하지 않았는지 질문을 받으면, 그들은 여성이 남성과 함께 참가하는 것을 보고 미국의 성 규범이 아시아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답변을 했다. 페미니즘이 일어나던 때와 선승들이 미국에 도래한 시기가 운 좋게 일치했다. 만일 이 선승들이 10년 혹은 20년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상황은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선 수행에 참여한 미국 여성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선 수행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남성지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사들과 선원의 지도자들도 역시 모두 남성들이었다. 비록 선의 가르침이 젠더의 제약이 없고 중립적이긴 해도 불교문헌을 깊이 탐구해보면 여성차별과 남성선호의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초기경전에서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는 여성 성불불가설, 북방불교 경전에서 ‘여성은 다섯 가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여성 오장애설, 그리고 보다 후대에 발전한 대승불교에서도 ‘여성은 남성의 몸으로 재생한 이후에 성불할 수 있다’는 여성 변성성불론 등이 있다. 또한 불교역사를 통틀어서 여성과 여성의 업적은 문헌에서 지워졌으며, 여성들은 혐오스럽게 묘사되었고, 비구니 팔경계법(八敬戒法)을 보더라도 여성 불교도들은 남성 불교도들보다도 열등한 지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이러한 가르침 때문에 괴로워했으나, 충분한 수행의 단계에 이를 때까지는 이의를 제기한다거나 대안을 제시할 입장이 아니었다. 이런 사실을 지적하게 되면 비난을 듣고 단체에서 추방되기도 했으며, 불교의 가르침은 성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여성혐오나 남성지배 등에 집착하는 것은 지나치게 민감하고 분열적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불교로 개종한 미국인에게 명상이 비록 주요한 종교적 수행이긴 하지만, 예불 시 행하는 염송 역시 많은 명상전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티베트 명상 수행과 선에서도 그렇다. 많은 불교명상 수행단체는 아시아의 언어로 예불문을 염송하는데 이럴 경우 성(性)을 지칭하는 표현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영어로 번역된 예불문을 사용하는 단체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초창기의 예불문에는 he, son, man 등의 남성중심의 대명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번역문이 오히려 아시아어로 된 원문보다도 더 남성성을 띠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들은 이러한 남성위주의 표현들을 성 중립적인 언어로 점차 바꾸어나갔다.

장은화 선학박사·전문번역가 ehj001@naver.com

 

[1460호 / 2018년 10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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