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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서양불교단체의 성추문-하

기자명 장은화

공에 대한 깨달음은 도덕을 밑바탕으로 하는 삶

추문 연루된 선원 개혁 착수가
선의 미국화 촉발하는 계기 돼

공식적 윤리 규범 속 5계 적용
수행 민주화, 남녀 평등 영향도

80년대 스캔들로 미국 수행자들은 선사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났으며 위대한 스승이라도 잘못돼 보일때는 점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80년대 스캔들로 미국 수행자들은 선사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났으며 위대한 스승이라도 잘못돼 보일때는 점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최근 티베트불교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네덜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티베트불교 교단 내 성학대 피해자들을 만난 바 있다. 미투구루(Metooguru)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는 이 피해자 모임 대표 4명은 온라인서명 1300건을 받은 후, 피해자 12명의 진술서를 달라이라마에게 제출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25년 전 누군가 나에게 교단 성직자들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서 달라이라마는 1993년 3월 10개국 출신의 서양불교 지도자 22명과 다람살라에서 회담했던 때를 말하고 있다. 당시 지도자들은 티베트불교, 선, 테라와다 불교의 대표들로서 서양전법의 제반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회담의 목적은 불교의 서양전파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것이었는데, 서양불교 지도자의 윤리 문제가 논의의 초점으로 부상하면서 남성 지도자의 여성 제자에 대한 성학대가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 당시 달라이라마의 입장은 지도자의 비윤리적 행위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고, 또한 공이라는 궁극적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때 더 이상 도덕규범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생각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공을 체득하게 되면 오히려 모든 존재를 윤리적으로 연결해주는 관계의 망을 드러내기 때문에, 공에 대한 깨달음은 도덕을 신비적으로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을 밑바탕으로 삶의 경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993년의 이 모임을 마친 후 참가자들은 지도자들의 “제자들과의 성적 비행, 술과 약물 남용, 기금도용과 권력남용”을 개탄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참가자 전원이 동의했던 이 서한은 스승에게 개심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제자들은 주저 없이 비윤리적 행위를 알려야 하며 스승이 어떤 수준의 영적 단계에 있다고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윤리규범을 초월할 수는 없다는 선언적 합의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이 모임은 장소를 미국으로 옮겨서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제도화된 불교가 서양에서 새로운 현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80년대의 위기는 오히려 미국 최초의 제도불교 발전에 전환점이 되었다. 우선 선 수행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변화를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우선 80년대의 스캔들을 겪으면서 미국의 선 수행은 환각제, 섹스 등을 통해서 초월을 추구하고자 했던 비트세대의 잘못된 유물을 청산하였다. 즉, 미국의 선 수행자들은 건전한 정신과 책임감 같은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아울러 아시아 종교에 대해 자신들이 낭만적 환상과 근거 없는 이상에 빠져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가장 의미 있는 결과는 미국 불교계에서 새로운 정직성과 사실성이 강화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수행자들은 선사에 대한 환상과 이상화에서 깨어나게 되었으며, 완전한 깨달음이란 사실 드물고 가장 위대한 스승들의 행위라도 잘못되어 보일 때는 반드시 점검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련생과 지도자들의 윤리와 도덕성이 강화되었는데, 이것은 곧 선 수행에서 윤리를 강조하고, 아울러 일상생활에 선의 통찰을 적용하는 새로운 선문화가 출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추문에 연루되었던 선원들은 개혁에 착수하였고, 이것은 선의 미국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샌프란시스코 선원은 사업체를 분리하고 조직의 대 변혁을 꾀하면서, 이사들을 임명제에서 선출제로 바꾸고 주지는 4년 임기의 임명제로 개혁했고, 복수 주지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살아남았다. 로스앤젤레스 선원도 외부 자문을 영입하고 구조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1990년대 말에는 마에즈미 노사의 후임 선원장이 성추문에 연루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구조개혁 덕분에 선원장을 신속하게 교체하여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다. 이사를 선출하고 민주적인 개혁을 거친 선원들은 이제 무능하고 비윤리적인 스승을 교체하기가 더 쉬워졌다. 또한 대다수의 선원들이 다수의 존경받는 스승을 확보함으로써 스승의 권력남용을 저지하기도 쉬워졌다. 대형 선원들은 공식적인 윤리규범과 소원수리 절차도 만들었는데, 대개 이런 규범은 전통불교의 5계를 현대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위기를 극복해가면서 “많은 단체에서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철저하게 실행하였다. 그리하여 리더십은 서로 분산시키고, 권력의 남용은 미연에 방지하고, 선원의 운영도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러한 철저한 민주주의적 개혁의 결과 미국의 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첫째, 다양한 불교 단체에서 권위의 패턴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수행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또한 승려와 재가자의 관계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의 페미니즘의 물결과 함께 미국사회에서 선을 포함한 불교계 전반에서 남녀평등에 대한 자각과 요구가 이어지면서 스승의 권력과 권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사실상 교체할만한 인물이 없었던 1세대 아시아의 선사들은 거의 무제한의 권한을 향유했지만 현재 그런 스승은 거의 없다. 지도자의 권력은 견제와 균형을 갖추고 합리화되었으며 더 널리 배분되었다. 물론 불교의 특성상 스승의 역할을 제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불교에서 사제관계는 원래부터 스승이 더 지혜롭고, 더 큰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가정 아래서 제자들은 그런 스승의 가르침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적인 개혁을 통해서 무능하고 비윤리적인 스승을 교체하기가 더 쉬워지긴 했지만, 존경받는 스승의 경우 그 단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큰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스승의 권위를 제한하는 제도는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민주적 개혁의 결과 미국불교에서는 성 역할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특히 선 수행에서 양성평등의 추세가 본격화되었다. 미국의 선원에서 수련생의 성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정해진 규정이 없었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의 엄격한 승가공동체 수행이 아니고 미국사회에서는 재가자 위주의 수행이 주류이며 남녀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성적인 역할에 대한 규정이 필요할 수 있다. 미국에 선원이 생겨나던 초창기에 선원은 서양의 성적인 관행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하여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진보적이고 개방적 사고를 가진 젊은 세대가 참여했던 수행 단체들은 성적인 면에서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수행 단체의 성추문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60~70년대의 “성 혁명”에 대한 보수반동이 일어났으며 불교단체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도 보수적인 경향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차례로 불교단체에서의 사제관계에도 영향을 주면서 80년대의 위기상황에 대한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개혁이 진행된 후 서양의 선 단체가 완전한 평등을 이루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서양불교에서는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은 많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은화 선학박사·전문번역가 ehj001@naver.com

 

[1468호 / 2018년 1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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