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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조코 벡의 일상 선(禪)-중

기자명 장은화

"명상수행은 단순하며 우리 삶 일깨워 주는 것”

조코벡이 출간한 선수행 서적들
미국 선불교 3대 저술지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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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활동서 명상정신 고취 강조
서양서 마음챙김 자연스레 수용 

조코 벡이 출간한 법문집은 미국선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선불교 3대 저술로 간주되기도 하는 고전에 속한다.

미국선의 주요한 개발자라고 간주되는 샬롯 조코 벡은 선찰보다는 현대문화를 배경으로 세속적, 심리적 자기(self)에 관한 선을 주창하였다. 조코는 ‘일상선(日常禪), 사랑과 일’(Everyday Zen: Love and Work,  한글 번역본 ‘가만히 앉다’)과 ‘별일 없습니다’(Nothing Special)라는, 미국선의 교과서와 같은 두 권의 법문집을 남겼다. 특히 ‘일상선’은 서양에서 출간된 많은 선수행 서적 가운데서 필립 카플로(Philip Kapleau)의 ‘선의 세 기둥’(The Three Pillars of Zen)과 스즈키 순류(Shunryu Suzuki)의 ‘선심초심’(Zen Mind, Beginner’s Mind)과 더불어 미국 선불교의 3대 저술로 간주되기도 하는 고전에 속한다. 

서양불교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일상생활 중의 명상을 강조하는 사회참여불교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 조코 벡을 비롯하여 로버트 아이트켄, 조코 벡, 존 카밧진, 틱낫한 등에 의해 출간된 불교서적들에는 운전, 회의, 목욕, 난로청소, 전화 받기, 기저귀 갈기 같은 일상 활동에서 명상의 정신을 고취시킨다. 이처럼 서양에서 확산되고 있는 일상선이란 일상생활 중에 마음챙김(mindfulness)을 유지하는 수행을 말한다. 원래 이러한 수행방식은 틱낫한 선사가 참여불교를 주창하면서 미국의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제 서양에서 마음챙김은 선수행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있다. 

조코 벡이 일상선을 주창한 배경은 아마도 지금여기의 삶 속에서 마음의 공성(空性)을 체득하여 대 자유를 얻는다는 선불교 자체의 지향성도 있지만, 미국사회에서 1980년대 서양불교계에 큰 위기를 몰고 왔던 불교지도자들의 성추문 등으로 “깨달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환멸이 확산되고, 깨달음에 대한 환상에서 벗겨지면서 윤리와 계율, 그리고 실용성과 실천적인 측면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일상선’에서 조코는 명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명상은 무엇이 아닌지를 기술하고 있다. 그녀에 의하면 명상이란 심리적 변화를 초래하거나, 어떤 지복의 상태를 달성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연마하거나, 행복한 느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명상수행은 단순하며, 그것은 우리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선 수행의 목적은 실제 삶을 완전히 일깨워주는 것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수행은 고상한 영역으로 데려가는 특별한 깨달음의 경험들을 추구하기보다는 미국적 삶의 일상성을 포용해야 한다고 그녀는 지적한다. 

그는 수행은 특별한 깨달음의 경험을 추구하기보다는 미국적 삶의 일상성을 포용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심리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경험에 근거를 둔 명상을 가르치면서, 좌선 중에 의식에 떠오르는 실제적인 신체의 긴장, 정서, 사유패턴들을 직접 바라보라고 요구한다. 선의 전통에서 이러한 신체의 긴장과 개인적 감정들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에 장애가 되는 요소로서 무시되었던 것들이기 때문에 이 점에서 그녀의 수행법은 전통선과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더욱이 조코는 깨달음과 같은 그 어떤 특별한 것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자기 그리고 자기가 갈망하는 어떤 것 사이에 이분법적 상황을 설정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이 이분법의 극복이야말로 정확히 조코의 선이 지향하는 목표다. 조코는 일상적 순간들에 완전히 현존하는 수련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완전한 현존의 능력을 심화할 장으로서 우리 자신의 존재 실재성을 이용한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외적 자극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럼으로써 무아(즉, 붓다)로서의 본성을 깨닫는 것이 좌선의 결실이자 수행의 길이 되고, 본성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타인들과 혹은 그 어떤 것과도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자타간의 아무런 경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따라서 수행이란 깨어있는 상태(enlightened state)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러한 상태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실재와의 합일 혹은 온전함을 깨닫게 되며 “깨달은 상태에서는 ‘나’가 없으며, 단지 삶 그 자체…즉 끝없는 에너지의 고동만 있을 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한 인터뷰에서 조코는 깨달음 체험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온갖 체험을 다 해본 온갖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그다지 잘 살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체험만으로는 충분치 않죠. 내 제자들은 이른바 (깨달음을) 체험했다는 말을 내게 하지만, 내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 괜찮습니다(That’s OK). 그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그런데 당신 어머니와는 사이가 좋습니까?’ 그렇지 않을 경우(즉, 집착을 버리지 않을 경우), 그들은 거기에 사로잡히고 말죠. 이런 체험이란 수행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이기주의적 자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일이죠. 아주, 아주 어렵습니다”라고 답했다. 조코 벡의 자기에 대한 천착은 다음과 같이 그녀만의 독특한 자아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자기중심적 화(火)는 나 자신에 대해 형성된 심상(心象)이 위협받을 때 일어난다.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어떤 심상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친절한 사람이다” “나는 선한 부모다” “나는 가치 있는 것들을 성취한다” “나는 (과학, 식물, 요리, 다이어트, 개 등등의) 전문가다” 혹은 이와 정반대로 “나는 성질이 나쁜 사람이다” “나는 평범한 부모다” “나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는다” 등의 심상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심상은 그 뿌리가 깊다. 우리는 그것들을 아주 좋아한다.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제어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바로 우리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심리치료에서는 부정적 심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시도한다. 효과적이지만 한계가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심상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우상을 방어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노예상태가 되고 만다. 그 우상이 존재를 지배하면서, 결국 우리는 그 지배 아래서 무력하게 된다.

모든 방어적 심상은 효과적 행동의 원천인 열린 의식을 예외 없이 차단한다. 그리고 “나는 명백하게 보고, 깨달음을 얻었고, 깨친 사람이다”라는 심상은 그 자체가 올바르게 보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깨달음’이란 심상이 없고, 비방어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삶에 열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들의 필사적 방어 심상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자비다.

조코 벡의 이러한 선사상은 특별한 의식 상태를 얻는 데 초점을 맞추는, 일반적인 명상의 관점과 다르다. 그녀는 평범한 일상의 체험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의식하고 있으라고 힘주어 말하는데, 이것은 “명상의 목적은 마음을 단련하고 번뇌의 정서를 줄이는 것이다”라는 달라이 라마의 견해와도 다르지 않다.

장은화 선학박사·전문번역가 ehj001@naver.com

 

[1484 / 2019년 4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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