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라오스 파 탓 루앙 사원
8. 라오스 파 탓 루앙 사원
  • 알랭 베르디에
  • 승인 2019.04.22 17:30
  • 호수 1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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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불상 모시려 건축 후 불사리탑도 조성

치앙마이 정복 후에 불상 이운
훗날 다시 빼앗기고 탑도 훼손
2차 대전  종전 후 현 모습 복원
라오스인들에겐 애국심의 상징
라오스 파 탓 루앙 사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 라오스인들이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기며 참배하는 사원이다.
라오스 파 탓 루앙 사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 라오스인들이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기며 참배하는 사원이다.

라오스 설화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아쇼카 황제는 라오스 비엔티안 지역에 부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스님들을 보낸다. 이후 그곳에 부처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한 스투파 하나가 세워졌는데 오늘날 파 탓 루앙(Pha That Luang) 사원이 그것이다. 고고학자들은 당시 스투파와 함께 세워진 건물에 대한 기록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떤 정보도 찾아낼 수 없었다. 파 탓 루앙 사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2~13세기 사이 크메르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오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셋타티랏(Setthathirat, 1534~1571)왕은 ‘백만 마리의 코끼리 왕국’이라고 불리던 란샹 왕국을 정복하며 라오왕국의 왕으로 등극했고 라오스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루앙프라방까지 거느리며 왕국을 통일했다. 강력한 왕권을 자랑하며 라오스를 번영시키던 셋타티랏왕은 1560년 당시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을 떠나 현재 비엔티안이라고 불리는 그 당시 비앙챤(Viangchan)을 수도로 정했다. 

셋타티랏왕은 후에 강한 왕권과 군사력을 키워가며 오늘날 태국의 치앙마이까지 정복하기도 했다. 이렇게 당시 강력한 왕권을 지녔던 그는 불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고 치앙마이를 정복하면서 그곳에서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에메랄드로 만들어진 불상을 새로운 수도 비앙챤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 소중한 불상을 잘 모시기 위해 그는 거대한 사원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또 그 사원을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그는 부처님 사리를 모셔놓을 스투파도 세웠다. 안타깝게도 후에 태국에서 온 챠오프라야 챠크리(Chao Praya Chakri) 장군이 1779년 비앙챤을 공격하고 정복한 후 사원에서 에메랄드 불상을 다시 그의 나라인 시암(현재 태국으로 시암은 ‘언제나 푸르른 녹음’의 땅을 의미한다) 왕국으로 가져가 버렸다.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에서 보낸 사절단 중 한 명이었던 고빗 반 우이소프(Govit Van Wuysoff)는 1641년 라오스 비엔티안을 방문하고 파 탓 루앙 사원의 모습에 감탄하며 ‘마치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쌓여져 있고 그 꼭대기에는 몇천 킬로그램도 넘을 듯한 거대한 금이 입혀져 있다’고 설명했다. 1828년 라오스는 시암 왕국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이때 시암 왕국에서 온 병사들은 스투파에 입혀진 금들을 모두 떼어내 도망갔고 스투파는 완전히 훼손돼 버리고 말았다. 이 이후 파 탓 루앙 사원은 1900년까지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훼손된 채 잊히고 만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서 온 정부 관리들과 고고학자들은 이 위대했던 스투파를 본래 상태로 복구하기로 한다. 프랑스 출신 건축가들과 고고학자들은 힘을 모아 파 탓 루앙 보수 작업에 돌입했다. 그들 중 특히 탐험가이자 건축가였던 루이 델라뽀르뜨(Luis Delaporte)는 이 프로젝트를 앞장서서 지휘했다. 1867년 최초로 만들어진 보수 계획서에 따라 파 탓 루앙의 공사는 1930년대 와서 완성됐다. 1940년 전쟁으로 인해 파 탓 루앙은 다시 심하게 손상됐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공사가 끝나게 된다.

파 탓 루앙 사원은 라오스 사람들에게는 애국심의 상징과도 같았다. 45m 높이의 스투파는 양쪽으로 85m 높이로 세워진 작은 창문들을 지닌 첨탑으로 둘러싸여 있다. 첨탑 작은 창문들 안에는 수많은 불상과 부처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소장돼 있다. 고대 라오스와 크메르 시대 만들어진 조각상들 또한 이곳에 잘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스투파는 독특하게 피라미드 모습처럼 구성돼 있는데 이 스투파는 다시 30여 개의 작은 가시 모양 스투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스투파의 윗부분은 우아한 연꽃 봉우리를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스투파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확히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각의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같은 비율로 작아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부처님 교리 중 하나를 상징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첫 번째 층은 나가(Naga) 뱀에 의해 장식돼 있고 두 번째 층은 수백 개의 바이 세마(Bai Sema)라는 경계석들로 구성돼 있다. 바이 세마는 라오스와 태국 불교 사원에서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곳에 놓인다. 열린 구조로 만들어진 이중으로 된 지붕 아래로는 30개의 작은 스투파들과 부처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치 모양으로 난 문을 지나면 3층에 도착하게 되며 이는 뾰족한 첨탑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건축물 가장 아래층은 지하 세상 혹은 속세를 표현하고 있으며 그 바로 위층은 30가지의 부처님 가르침을 상징하고 있다. 가장 위 첨탑 부분은 극락 혹은 깨달음의 경지에 달함을 암시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라오스 사람들은 파 탓 루앙 전체 사원의 구조는 부처님 철학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건축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점점 가파르고 면적이 좁아지듯이 우리 인간들도 더 오랫동안 다양하게 공부하고 더 깊게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 어렵고 좁은 길이지만,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 좁은 길을 용기와 인내심을 지니고 헤쳐나가야만 하고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바라신 인간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파 탓 루앙 사원 건물의 주위로는 커다란 규모의 정원과 대지가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정면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왓 네라 탓 루앙(Wat Nera That Luang) 궁전이 자리 잡고 있다. 

한편 16세기에 파 탓 루앙 사원 주변으로 네 개의 불교 사원들이 지어졌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그 중 두 개의 사원만이 남아있다. 그 중 하나인 왓 탓 루앙 타이(Wat That Lunag Tai) 사원은 파 탓 루앙 사원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삼등분으로 나뉘어진 지붕이 인상적인 건물인데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좌불상 또한 유명하다. 또 북쪽에 자리 잡은 다른 사원인 왓 탓 루앙 네라(Wat That Luang Nera) 사원에는 라오스 불교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지도자이자 스님이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을 방문하는 라오스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사원 외부의 어느 곳이나 방문할 수 있다. 스님들은 파 탓 루앙 사원에서 멀지 않은 작은 사원에 머물며 수련한다. 

비엔티안에서 멀지 않은 반 농본(Ban Nongbone) 마을에 위치한 파 탓 루앙 사원은 라오스 전국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국민의 90% 이상이 불자인 라오스에는 수많은 사원이 세워져 있지만 라오스 불자들은 이곳 파 탓 루앙을 자주 찾으며 그들의 삶의 토대이자 원동력이 되는 불심을 더욱더 단단히 다져나가고 있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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