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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한양성 대관

기자명 임연숙

멈춘 전통 아닌 진화한 수묵화 보다

공간의 의미 그림을 통해 확인
도성 안 풍경, 상상·사료 기반
크리스털구슬 통해 난반사 효과
시각적 잔상, 관객 집중도 높여

정진용 作 ‘한양성 대관’, Acrylic_crystal beads on canvas, 190×130cm, 2018년.
정진용 作 ‘한양성 대관’, Acrylic_crystal beads on canvas, 190×130cm, 2018년.

정진용 작가의 풍경그림에는 옛 궁궐이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건물들이 등장한다. 장엄한 느낌을 주는 옛 건물인 궁궐을 통해 권위와 욕망의 상징적 공간을 역사적 의미를 더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어떤 공간에 들어설 때 사람들은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행동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처럼 작가는 공간의 의미를 그림을 통해 확인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한 광화문사거리의 풍경 속에 등장하는 집들은 현대의 건축물들이 아니다. 옛집들이 빼곡한 도성 안의 풍경은 사실과 현재의 풍경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작가의 상상과 사료를 기반으로 한다. 붉은 노을에 물든 산과 하늘은 따듯하게 옛 서울 한양을 감싸고 있다. 

매일 광화문으로 출근하고 또, 저녁이면 집으로 퇴근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에게 광화문은 개인 삶의 역사를 담고 있는 특별한 곳이다. 지도를 보면 자신이 있는 곳, 혹은 사는 곳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체크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처럼 광화문과 주변이 그려진 그림을 통해 개인의 좌표를 생각해 본다. 광화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별한 의미와 상징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 속에서 장소적 의미를 갖고 있는 곳,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많은,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정진용 작가의 한양그림은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평화로운 저녁노을이 따듯하게 산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풍경이면서도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보통 산수화에는 산과 자연이 주제일텐데 이 그림에서는 빼곡이 집들로 채워져 있다. 집들은 하나의 기호처럼 도식화되고 도형화되어 있다. 여백이 없이 꽉 채워진 산수화처럼 느껴지는 그림은 의외의 재료들이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과 혼합재료를 쓰고 있는데, 미세한 크리스털 구슬을 붙여 빛의 난반사가 이루어진다. 

작가는 이 크리스털 구슬을 화면 전체에 붙여 밑 작업을 한 후 그림을 그린다. 순도 높은 유리 비즈를 한겹 바른 후 난반사를 유도한 것에는 작가 나름의 의도성이 있다. 단순히 장식을 위해 시각적 효과를 끌어냈다기보다는 난반사가 주는 시각적 잔상을 통해 관객이 한 번 더 작품의 명료성을 위해 집중하는 잠깐의 정지된 시간을 유도하고 있다. 옛 궁궐과 한양의 역사성과 크리스털 비즈라는 재료적 특성이 주는 공간감 간의 유기적 관계를 끌어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그림에 담겨있다.

수묵화는 끊임없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고 있다. 작가들은 천년전 수묵화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어떤 방식으로 그림에 담아낼지 고민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빛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에서 크리스털의 빛은 자극과 충격을 주는 장치가 아닌 작가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산수화, 수묵화라는 멈춰버린 전통이 아닌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는 살아있는 수묵화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수묵이 주는 담백함이 아닌 어둠 속의 은은한 빛의 느낌을 택하고 있다. “어둠으로부터 나온 우리는 희미하고 아련한 빛으로부터 희망과 아름다움을 본다. 그것은 어둠을 제거하는 빛이 아니라 어둠과 동화되는 빛이다”는 작가의 말 속에는 밤거리의 네온이나 밤에도 낯처럼 훤한 빛이 아닌 어둠 속의 아련한 달빛의 정서를 이야기한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86 / 2019년 4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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