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타쿠앙 소호의 ‘나찬외우도(懶瓉煨芋圖)’
32. 타쿠앙 소호의 ‘나찬외우도(懶瓉煨芋圖)’
  • 김영욱
  • 승인 2019.04.30 11:07
  • 호수 14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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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는 만족함에서 이뤄진다

당 숙종 때 활동한 나찬 선사
쇠똥 불에 토란 구워 먹기 즐겨
지금 행복위해 황제초청 외면
타쿠앙 소호 作 ‘나찬외우도’, 종이에 먹, 139.7×32.3㎝,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타쿠앙 소호 作 ‘나찬외우도’, 종이에 먹, 139.7×32.3㎝,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富貴猶經五鼎飡(부귀유경오정손)
貧窮自足一簞食(빈궁자족일단사)
等是浮休百歲間(등시부휴백세간)
此何爲失彼何得(차하위실피하득)

‘부귀하나 오정 음식 되레 가볍고 빈궁하나 대그릇 밥 만족한다네. 백 년간 떠돎은 다를 바 없으니 이것이 어찌 잃음이 되고 저것이 어찌 얻음이 되리오.’ 충지(冲止, 1226~1292)의 ‘우연히 쓰다(偶書)’.

‘쇠똥 화로에서 향내 나다(牛糞火爐香)’. 중국 근대 화가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가 지은 자서전의 제목이다. 그가 추억하는 어렸을 적 집안은 늘 가난했다. 양식이 바닥난 빈 아궁이에는 빗물이 고이고, 그 빗물 위로 개구리가 뛰어다녔다. 배고픔을 참고 참다가 쇠똥 담긴 화로에 어머니가 구워준 토란은 정말 구수했고, 화로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들을 보며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비록 궁상맞고 가난하지만, 쇠똥 화로에 나는 토란 향내는 그의 마음을 행복으로 가득 채웠다. 삶의 진정한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승전(高僧傳)’을 보면 당 숙종 연간에 활동한 나찬(懶瓚)이라는 선사가 등장한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나잔(懶殘)이며, 법호는 명찬(明瓚)이다. 절집의 선객들이 땀 흘려 울력을 할 때마다 늘 느긋하고 나태하여 많은 질책을 받았다. 이처럼 괴팍하며 나태한 그는 ‘게으른 명찬’이라는 ‘나찬’으로 불렸다.

본의 선승 타쿠앙 소호(澤庵宗彭, 1573~1645)가 그린 그림처럼, 나찬 선사는 얼굴에 잿가루 덕지덕지 묻혀가며 쇠똥 불에 토란 구워 먹는 일을 즐겼다. 어느 날은 자신을 찾아온 이필(李泌)에게 쇠똥 불에 굽던 토란을 반 토막 나눠주며 장차 재상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기이한 행동으로 삽시간에 높아진 명성은  곧 황제에게 전해졌고, 황제는 그를 초빙하고자 사신을 보냈다. 사신이 황제의 조칙을 전달했음에도, 선사는 오직 쇠똥 불에 토란 굽는 일에 몰두했다. 쇠똥 불에 구운 토란이 참으로 맛있었던 듯, 얼굴에 묻은 검은 잿가루와 턱까지 흘러내린 콧물조차 개의치 않았다. 보다 못한 사신이 “얼굴에 묻은 잿가루와 콧물은 닦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웃으며 말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얼굴 닦는 수고로움을 해야 하오?” 말을 마친 나찬 선사는 계속 구운 토란을 먹었다.

나찬 선사에게 황제가 머무는 궁궐은 그저 성가신 작은 소굴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그는 사신이 가져온 황제의 조칙에도 개의치 않고 토란을 굽고 먹는 일에만 온 신경을 쏟아부은 것이다. 부귀하거나 빈곤하거나 결국 같은 세월을 보내고 추억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과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행복을 추구할 때 이루어진다. 이 쉽지만 어려운 실천이 삶의 묘미이며 진리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87 / 2019년 5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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