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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작가 미상 ‘산중나한도(山中羅漢圖)’

기자명 김영욱

행복은 평범한 일상 속에 존재한다

오가는 이 없는 깊은 산중에서
냇가 발 담그고 좋아하는 나한
일상 행복이 곧 나한의 깨달음

작가 미상 ‘산중나한도’, 27.8×33.4㎝, 종이에 먹, 중국 18세기, Freer Gallery of Art.
작가 미상 ‘산중나한도’, 27.8×33.4㎝, 종이에 먹, 중국 18세기, Freer Gallery of Art.

本是山中人(본시산중인)
愛說山中話(애설산중화)
五月賣松風(오월매송풍)
人間恐無價(인간공무가)

‘본래 산속 사람이라서 산속 이야기 말하길 좋아하네. 오월의 솔바람 팔고 싶으나 사람들 그 값 모를까 걱정이구나.’ ‘선종송고연주통집(禪宗頌古聯珠通集)’ 중 ‘게송 네 번째(偈頌其四)’.

옛날 깊은 산속의 고승을 찾아간 선객이 깨달음에 관해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고승의 하루 일상이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텃밭을 가꾸고, 세끼 밥을 먹고,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잠을 청했다. 매번 같은 대답에 싫증이 난 선객이 말했다. “깨달음에 대한 물음에 늘 반복되는 하루 일상만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승이 답했다. “산중 사람이 세속의 일을 이야기하겠는가? 나는 산중에 있으니 산중의 일을 하고, 그 일에서 행복을 얻는다네. 이 행복처럼 깨달음도 단순한데 있다네.”

과거를 돌아보면 산중의 삶을 통해 자연과 동화되어 행복을 느끼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이룬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중 불가의 인물로 손꼽자면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은 홀로 못가에 앉아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고, 보우(普愚, 1301~1382) 선사는 평생의 모자란 잠을 청산의 물과 바위를 잠자리 삼아 행복을 얻었다.
앞선 중국의 짧은 일화는 우리가 추구하는 깨달음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처럼 단순하다는 가르침을 전해준다.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화두와 수행으로 정진하면 내면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한 존재인 것처럼, 깨달음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행복을 얻고, 행복함으로써 자신이 구하는 무언가를 깨닫는다.

작은 그림 속에 두 나한이 있다. 오가는 사람 없는 산중 깊은 곳에 그윽이 앉아 냇가에 발을 담그고 있다. 한 나한이 발끝에 전해오는 시원함에 마냥 좋은 듯 한쪽 발목에 발을 비빈다. 이를 보던 다른 나한이 한쪽 발을 담근 뒤 바지를 걷어 올려 다른 발을 담그려 한다. 그들은 산중의 행복을 만끽한다. 식후에 따사한 햇볕 쬐며 한숨 잘 자고,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차 한 잔 마시고, 선뜻한 냇가에 발 담그는 행복이다. 순간 두 나한은 자신들을 둘러싼 산 빛이 부처의 몸이고, 앞에 흐르는 개울 소리가 부처의 법문이라는 것을 안다. 산중의 일상 속 행복이 바로 나한의 깨달음인 것이다.

깨달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깨달음은 특별한 화두와 수행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네 평범한 일상 속 흔히 보고 느끼고 접할 수 있는 행복에서 온다. 깨달음은 행복처럼 단순한 데서 오는 것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90호 / 2019년 5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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