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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명상

기자명 임연숙

고정관념 가득한 마음을 비워내라

명상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서
사람들의 멘탈 지켜주는 방편
관조와 몰아 합일을 추구하는
고뇌하는 현대인는 바로 자신

조순호 作 ‘명상’, 146×187cm, 한지에 수묵, 2019년.
조순호 作 ‘명상’, 146×187cm, 한지에 수묵, 2019년.

수묵화를 이야기할 때 선종과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종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시공의 한계를 초월한 초연성을 갖고 있다. 깨달음이 일종의 경계로 본다면 사물을 보다 초월하는 것으로 그림으로 보면 어떤 형태나 표현, 구체적인 묘사를 통한 것이 아닌 그 경계를 넘어서는 표현과 행위 그자체가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스며들다. 스며듦은 따듯함이다. 먹과 물과 종이처럼 나와 대상의 이어짐이다. 계절이 오고 또 가고 꽃이 피고 지듯 스며듦은 자연의 속도이다.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2019년 5월 조순호 작가 작업노트 중). 

매일 매일이 쌓여서 개인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회사와 직장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10년 20년 쌓여 한 사람의 일생이 된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가 하는 것이 가볍지만은 않다. 작가가 말하는 작가의 삶의 방식이 작품이 주는 느낌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붓 가는 대로 물 흐르는 대로 그린 듯한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운 한지에 푹 스며든 먹의 느낌이 오랜 시간 농익은 깊이 감을 준다.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은 수묵에서 작가의 에너지와 심지가 느껴진다. 똑같은 한지와 먹물과 붓을 사용해도 수묵화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감성과 성정을 예민하게 드러내 끝없는 매력을 느끼게 한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 되면서 너무나 많은 정보의 노출과 홍수 속에서 오히려 명상이 사람들의 멘탈을 지켜주는 방편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 기계로 어찌할 수 없는 인간만의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명상이 동양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그림에서 사물과 대상을 분석하고 묘사와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태도에 호감이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동양인이고 알게 모르게 나의 DNA 속에 담긴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서를 떠나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에 몰입하는 것만이 자신을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서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시와 화의 결합을 이론화시킨 중국 송대 문호 소식은 시, 서, 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특히 예술가가 머리에 가득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텅 빈 상태에 집중하여 한 순간에 대상과 작가정신이 동시에 하나로 통일되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안에서 껍질을 깨고 어미 닭이 밖에서 껍질을 쪼는 줄탁동시를 이룰 것을 강조했다. 시어를 오묘하게 만들려면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하기를 주저하기 말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한다는 것이 바로 참선과 같은 것이다. 고정관념을 비우는 것, 그것을 깨고 나오는 순간에 바로 돈오가 일어나는 것이다. ‘명상’이라는 작품은 자신도 모르게 쌓여 있는 자신의 고정관념과 사념으로 가득한 머리와 마음을 비워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다.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물상의 관조와 몰아의 합일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이 작품은 얼마 전 ‘취석재 일기’라는 제목의 작가 개인전에 소개되었다. 취석재는 작가의 작업실 이름이다. 전시를 통해 매일 일기를 쓰듯 주변의 사물과 꽃, 풀, 나무 등을 기록하였다. 최근에 작가는 인물을 그림에 등장시키고 있는데, 전시에 소개된 인물화 중 한 작품이 ‘명상’이다. 해탈을 추구하는 고뇌하는 현대인은 다름 아닌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91 / 2019년 6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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