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많이 했다면 좋은 과보 얻게 됩니다”
“좋은 일 많이 했다면 좋은 과보 얻게 됩니다”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19.07.31 14:26
  • 호수 14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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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57)] 인간의 복보

대개 복 닦은 후 과보 욕심내
그럴 필요 전혀 없는 까닭은
재물 많이 나누면 부자 되고
법보시 실천하면 지혜 증득
실천한 것은 반드시 얻게 돼
정공 스님은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의 삶이 참된 삶”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인도 갠지스강의 화장터.
정공 스님은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의 삶이 참된 삶”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인도 갠지스강의 화장터.

미륵보살이 아뢰기를 “이러한 중생은 허망한 분별심을 내어 불찰토를 구하지 않으니 어떻게 하여야 윤회를 면할 수 있겠사옵니까(此等衆生 虛妄分別 不求佛刹 何免輪回)?”

미륵보살의 도솔천 내원에 왕생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내원에 이르지 못하면 육도윤회를 해야 하니 그 손실이 매우 큽니다. 미륵보살의 수행경지는 매우 높아서 유심식정(唯心識定)을 닦아야 합니다. 세간 사람들 중 복을 닦아서 도리천에 태어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상품의 십선업도를 닦아야 도리천에 태어납니다. 야마천과 도솔천도 삼매를 닦아야 합니다. 삼매를 닦아서 삼매의 공덕이 없으면 이러한 경계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도솔천의 내원은 매우 높은 선정공부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륵보살님은 허망분별로 불찰토를 구하지 못한다고 우리를 일깨워주십니다. 여기서 불찰토는 서방극락세계입니다.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구하지 않고서 어떻게 육도윤회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저들은 자신이 심은 선근에 대해 상을 여의지 못하고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으며 세간의 즐거움과 인간의 복보에만 깊이 집착하여서 비록 복을 닦는다 할지라도 인천의 과보만 구하여 과보를 받을 때 일체가 풍족하지만 결코 삼계의 감옥을 벗어날 수 없느니라(彼等所種善根 不能離相 不求佛慧 深著世樂 人間福報 雖複修福 求人天果 得報之時 一切豐足 而未能出三界獄中).”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단락에서 무척 현실감 있게 말씀하십니다. 현재 학불(學佛)하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학불을 통해 인천의 복보를 닦습니다. 그가 심은 선근은 상을 여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이 집착합니다. “나는 많은 공덕을 지었고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 마치 노트에 기록하듯이 혹시 잊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세상의 것들에 점점 더 깊이 집착하고 인간의 복보에 욕심냅니다. 비록 불문에서 복을 닦을지라도 인천의 과보를 구합니다. 과보를 얻을 때 일정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닦고 많은 것을 얻습니다. 재물을 많이 보시하면 이번 생에 재산을 많이 축적하여 그의 부는 한 국가에 필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생에 닦은 법보시가 많아서 이번 생에 총명지혜가 다른 사람을 넘어섭니다. 또한 전생에 무외보시(無畏布施)를 닦아 이번 생에 건강장수를 누립니다.

이러한 과보는 모두 인천의 것으로 일체가 당신의 소원을 만족시킵니다. 인을 닦고 과를 얻음은 불보살께서 행복을 주는 것도, 천신이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니라 자신이 닦고 자신이 얻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불문에서 미신은 없습니다. 비록 일체가 풍족할 지라도 삼계를 뛰어넘을 수 없고 윤회를 벗어날 수 없음을 확실히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복보를 다 누리면 어떻게 합니까? 이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큰 복보를 얻었을 때에도 기꺼이 계속 복을 닦습니다. 기꺼이 복을 닦지 않으면 미혹에 빠집니다. 설령 복을 닦았어도 지혜가 없고 복덕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복전을 심지 못합니다. 복을 닦았다고 여기지만 사람에게 속아서 빼앗기니 가짜복전입니다.

‘능엄경’에서 말씀하시길 “말법(末法) 시기에는 거짓된 스승의 설법이 항하사만큼이나 많다”고 하셨습니다. 가짜 복전은 항하사만큼이나 많지만 진실한 복전은 너무나 작습니다. 복을 심고 복을 심었지만 모두 돌밭에 심고 모래땅에 심어서 밑천을 다 까먹어 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말썽만 일으킴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진정한 복전을 만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 진정한 복전을 쉽게 만납니다. 가난한 사람이 심은 복은 복이 많은 사람이 심은 복보다 많습니다. 불문에서 심는 복은 돈과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비율에 따라 계산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달에 백만 원의 적은 수입에도 좋은 일을 하여 십만원을 쓸 수 있다면 그 비율은 매우 큽니다. 그는 장래에 과보를 얻고 그 과보는 훨씬 더 많습니다. 비록 가난하여 적은 돈을 벌어도 전부 꺼내어 모두 공양한다면 그가 내생에 얻는 복보는 원만하여 그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사 부모와 처자, 남녀 권속들이 서로 구해 주려고 할지라도 삿된 견해와 업력에 휘둘려서 버리고 떠날 수가 없으며 항상 윤회에 머물러 자재하지 못하느니라(假使父母妻子男女眷屬 欲相救免. 邪見業王 未能舍離, 常處輪回而不自在.).”

이 경문은 모두 윤회의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복을 닦는 것만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혜를 닦는 것이 실제로 복을 닦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진실한 지혜에 머무는 것”은 바로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복을 닦아서 인천의 복보를 얻을 수 있을지라도 삼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부모와 처자식이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진실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당연히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 같이 도움을 주는 것은 우리 주변의 일상 기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복을 빌어 가족을 위해 회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 돌아가신 후 독송·예참하여 그를 천도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가 육도·윤회하는 가운데 고통을 감소시키고 복보를 얻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생사를 깨닫고 삼계를 벗어나 성불하는 것에는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왜 돕지 못합니까? 삿된 견해와 업력 때문입니다. 사견 업력은 바로 악업입니다. 악업을 왜 왕으로 칭합니까? 왕은 비유로서 업력이 너무나 크다는 뜻입니다. ‘지장경’에서 업력은 “수미산에 닿을 수 있고 큰 바다처럼 깊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업력은 너무나 큽니다.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업은 소멸시킬 수 없고 복은 구할 수 없습니다. 지혜가 있어야 업을 소멸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삼매의 힘이 이 업을 깊이 눌러서 그것이 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면 잠시 동안 자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가 생겨난 후 업력이 전변(轉變)합니다. 번뇌가 전변하여 보리가 됩니다. 오직 지혜가 있어야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없고 삼매의 힘이 없는데 오직 복에 의지하는 것만으로 그를 구할 수 없고 그의 악업은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한 가지 원인입니다. 윤회 육도하는 가운데 생을 버리고 몸을 받는 것은 업력이 주관합니다. 스스로 어디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어느 세계에 다시 태어나고 싶어도 그 세계에 태어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결정할 수 없고 업력이 당신을 지배합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99호 / 2019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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