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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건달(乾達)

기자명 현진 스님

제석천 음악 관장하는 팔부신중 가운데 한 분

범어서 유래된 건달바 준말
인도에서는 유랑예인을 지칭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이지만
저잣거리 넘어오며 의미 왜곡

10여년 전에 나온 블랙코메디 영화에서 동네 폭력배로 등장하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사소한 일로 경찰에 구금되며 잡범 취급을 당하려하자 앞서 저질렀던 일까지 실토하며 자신들을 잡범이 아닌 중범죄자 건달로 취급해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다. 깡패나 건달이나 그게 그거지 다를 게 뭐 있냐는 경찰의 말에 “멋있잖아요! 향기를 쫓아다니며 풍류를 즐기는 무리라는 게…”라고 답한다. 그들은 최소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행패와 난동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사전적인 내용보다는 ‘건달’에 대해 들은 바가 많은 것 같다.

건달(乾達)은 산스끄리뜨어 간다르바(gandharva)의 소리옮김인 건달바(乾達婆)의 준말이다. 브라만교 최고 경전인 베다에는 모두 6333명의 간다르바가 있다고 하였으니 그들이 일군의 패거리인 것만은 사실인 듯하며, 모든 인도 신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태양이나 달 또는 구름과 무지개 등 자연을 신격화한 것이다.

인도풍속에서 간다르바라면 유랑예인(流浪藝人)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왕을 섬기지도 않고 생업에 종사하지도 않은 채 오직 좋은 냄새가 나는 잔칫집만을 찾아다니며 온갖 기악을 펼쳐 구걸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하층계급으로 분류된다. 이름의 앞부분인 간다(gandha)가 색성향미촉법 중의 향[香, gandha]과 같으니, 좋은 음식냄새나 향기를 쫓아다닌다는 의미가 이름에 들어있는 셈이다.

우리가 욕계에서 살다 죽음을 맞이하면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금생에 행한 행위의 결과인 식(識)만으로 된 식신(識身)의 상태로 일정기간 머물다 다시 어머니의 태로 들어가며 생명을 받는다고 한다. 그 기간을 중유(中有)라 하는데, 중유에선 식으로만 이뤄진 몸을 가지고 오로지 향기를 맡는 것으로 그 상태를 유지하므로 ‘향기만으로 유지되는 상태’란 의미에서 ‘건달바’라고 한다. 우리 풍속에 조상신 등 신귀들은 음식의 냄새를 맡는 것으로만 살아간다는 말이 이와 일맥상통한다.

건달바가 풍류의 신으로도 알려진 것은, 인도신화에서 간다르바는 천상의 선녀이자 물의 정령이기도 한 압사라(apsaras)와 결합하여 결혼과 다산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것을 배경으로 한다. 향기를 쫓아다니며 음악을 잘 알고 아리따운 배우자까지 있다 하였으니 풍류의 신으로서 자격은 충분한 듯하다.

브라만교의 모든 신들이 신중으로 들어와 있는 불교에서 건달바는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의 한 분으로서 제석천의 음악을 관장하고, 동방지국천을 따라 동방을 수호하며, 부처님께서 설법하는 곳에 항상 나타나 정법을 찬탄함으로써 불교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귀신인 야차도 악신인 아수라도 건달인 간다르바도 불법수호란 기치 아래에선 신중(神衆)이 되어있는 것이다.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달바는 불교에선 지금까지 음악을 관장하던 신으로 인식되지만 그 용어가 저잣거리로 넘어오며 의미가 다소 왜곡되어 무위도식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굳어져버렸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건달’이라 불리던 무리들은 20세기 초까지는 그래도 폭력적이거나 흉기를 쓰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일본 야쿠자의 영향으로 폭력집단의 물이 들게 되었고, 그 후 호칭마저 영어의 갱(gang)이 들어가 갱의 패거리란 의미로 ‘깡패’라 바꿔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인도에선 여전히 건달바로서 풍류나 즐기는 무리로 남아있을지라도 여전한 계급제도의 틀 속에서 옴짝달싹 어쩌지를 못한다면, 비록 건달바에서 변질된 깡패로서 흉측한 무리로 전락해 있을지언정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그 신분이 건달바 이상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이 땅에선 존재한다. 어찌하지 못하고 어찌할 수 있음의 차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일어났으나 이젠 사라진 땅과 아직까진 그래도 부처님 가르침의 향기가 남아있는 땅이란 점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00호 / 2019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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