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윈스턴 처칠의 신념
125. 윈스턴 처칠의 신념
  • 김정빈
  • 승인 2019.08.27 10:18
  • 호수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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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정은 내려졌다…함께 나아갑시다”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일에 대해
절대 물러섬이 없었던 처칠 수상
세계대전 전 압제 맞설 것 공표
처칠의 신념을 정신이라고 하면
히틀러의 신념은 사신에 불과해
정신과 사신의 차이는 아상 유무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1939년 5월10일, 독일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했는데 이는 프랑스 점령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통신사들이 급박한 유럽 정세를 시시각각으로 전하는 가운데, 도버 해협 건너편에서 유럽 대륙을 넘어다 보며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기는 영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날 오전 11시, 영국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은 수상인 체임벌린의 전화를 받고 급히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수상 관저로 달려갔다. 체임벌린의 얼굴은 침울했다. 그는 전임 수상인 볼드윈과 함께 지난 몇 해 동안 평화노선을 이끌어온 영국 정부의 지도자였지만 그들이 히틀러로부터 약속받은 평화 협정은 오늘날 휴지 조각으로 변해버린 셈이었다.

그에 비해 처칠은 여러 해 동안 히틀러의 야심이 유럽에 위기를 초래할 것임을 경고해 왔었다.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도 장악하고 있던 평화 노선 지지자들은 그런 처칠을 ‘싸움꾼’이라고, 보수당원으로서 당명에 따르지 않는 ‘이단자’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상황이 심각하게 나빠진 상태에서 더 이상 평화 노선으로서는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처칠은 독일 제국에 맞선 민주 진영에 있어서 유럽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수상이 되었다.

처칠은 곧 자신의 정적인 수상 체임벌린을 추기장관으로, 현직 외무장관인 핼리팩스를 유임하는 방향으로, 노동당의 애틀리를 국새상서로, 그린우드를 국무장관으로 하는 전시내각을 구성했다. 이들의 지도를 받는 군부의 세 장관 또한 보수당의 이든을 육군장관으로, 노동당의 알렉산더를 해군장관으로, 자유당의 싱클레어를 공군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전당파를 아우르는 조각이 완성되었다.

처칠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두려움을 몰랐다. 어렸을 때 그가 살던 아버지의 집은 큰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숲이 있었는데, 어느 날 윈스턴은 사촌형제들과 술래잡기를 했다. 그러다가 호수 한가운데 걸쳐져 있는 다리 한가운데에 있는 그를 사촌들이 양쪽에서 막아섰다.

사촌들이 윈스턴을 잡으러 다가오자 이 어린 소년은 잡히기 싫은 마음에 수십 미터나 되는 호수 아래로 뛰어들었다. 큰 충격을 받은 윈스턴은 의식을 잃은 채로 건져 올려졌고 사흘이 지나서야 깨어났다. 깨어난 윈스턴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사촌들을 향해 말했다. “어때? 못 잡았지?”

사관학교 출신인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전투에 참여했고, 종군기자로서 원고를 쓰기도 했다.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적도 있고,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험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의 참호 위에서 유유자적 적진을 관찰하곤 했다. 어차피 ‘적의 총탄에 내 이름이 쓰여 있지 않으면 나는 죽지 않는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수상이 된 뒤, 처칠은 긴급히 소집된 의회에서 조각에 대한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피, 땀,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유명한 연설을 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노력과 눈물과 땀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여러분은 물을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하겠습니다. ‘바다와 하늘과 땅에서 모든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 그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보지 못한 극악무도한 압제에 맞서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여러분은 물을 것입니다. 나는 대답합니다. 승리가 그것입니다. 온갖 희생을 무릅쓴 승리, 공포를 극복한 승리, 길고 험한 길을 거쳐서 얻는 승리가 그것입니다.

나는 밝은 정신과 희망으로써 수상의 직분을 맡겠습니다. 우리가 높이 치켜드는 이상은 뜻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방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이 신념에 따라 나는 여러분에게 모든 원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선언합니다. ‘이제 결정은 내려졌다. 단합된 힘으로써 함께 나아갑시다’라고.”

1930년대에 영국, 프랑스, 미국을 중심으로 정착되어 있던 민주주의는 독일에서 히틀러 주도의 국가주의가 발흥하면서 큰 도전에 직면했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제국주의로 치닫는 일본과 연합하여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위협하였다. 그 결과 세계 제2차 대전이라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참혹한 전쟁의 종결을,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중차대한 인류사적 위기 상황에서 민주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은 영국의 수상 처칠과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그리고 중국의 장제스였다.

윈스턴 처칠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면 신념(信念)이란 무엇일까. 신념이라는 말을 분석해보면 ‘신’은 믿는다는 뜻이고, ‘념’은 한 주제에 생각이 집중되어 있는 심리상태이다. 문제는 믿음 가운데 정신(正信)과 사신(邪信)이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처칠의 상대편에 있던 히틀러 또한 절대적인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다. 처칠이 민주 진영을 구제할 인물이라는 사명의식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히틀러는 자신이 독일을 구제할 사명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믿었다. 처칠의 신념을 정신, 히틀러의 신념을 사신이라고 한다면 정신과 사신은 어떤 점에서 구별되는 것일까.

정신과 사신은 그 신념에 ‘금강경’이 적극적으로 타파할 대상으로 설하는 아상(我想)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갈린다. 그렇다면 다시 아상은 무엇인가? ‘금강경’이 설하는 아상을 이 경우에 비추어 적극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되돌아봄’이 아닐까.

자신의 신념에 대한 되돌아봄은 남들의 비판에 대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굳건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열려 있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해야만 바른 신념이며, 민주주의는 그런 신념에 기초해 있다. 그 점에서 비판이 가능한 의회에 의해 총리가 되고 평생에 걸쳐 자신을 ‘의회주의자’로 규정한 처칠은 히틀러와는 달리 열려 있는 인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불교의 입장에서, 처칠 유의 신념은 초기 경전이 설하고 있는 보살의 십바라밀 중에 결정(決定) 바라밀, 또는 팔정도의 정정진과 성격이 매우 비슷하다.  어떤 신념에 대한 강인한 의지는 한편으로는 반드시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집착성 내지 독단성을 경계하기도 해야 한다. 불교인은 바른 길에 대한 신념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또한 내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인지를 되돌아보아 성찰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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