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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우란분절

기자명 현진 스님

부모 구원 돕는 인도 ‘뿌드라’ 관습이 불교서 정착

우란분, 항상 거꾸로 매달린
지옥의 고통을 상징하는 말
불교 고유행사로 인식되지만
불교 이전 인도 풍습서 유래

옛날 왕사성에 부상 장자와 청제 부인은 외아들 나복과 유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장자가 죽고 가세가 기울려고 하자 나복은 재산을 삼분하여 승가에 부친의 복덕을 빌 것과 집안에 쓸 것은 모친에게 맡기고, 나머지를 가지고 먼 지방으로 장사를 떠났다.

청제 부인은 본심이 사특하여 아들이 떠난 후 승가에 공양도 않은 채 온갖 삿된 제사와 본인의 쾌락에 재물을 허비하였다. 이윽고 나복이 큰 재산을 모아 돌아오자 청제 부인은 미리 준비하여 아들을 속이려 하였으나 거의 탕진한 재산에 나쁜 물이 든 생활태도로 이내 들통이 나고 말았다.

“네 에비를 위해 오백종재를 지내다 무리해서 그랬느니라. 거짓이라면 내가 일주일 후에 죽어서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일주일 후에 청제 부인도 죽고 말았다. 슬픔에 쌓인 나복은 부처님의 소식을 가지고 온 친구 사리불과 함께 출가하였으니, 나복이 곧 목련존자이다.

목련존자는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신통제일의 제자가 된 후 부친이 도리천에 왕생한 것을 알게 되었으나, 모친은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음을 부처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애절한 그의 마음을 안 부처님께서 7월 보름 해제일에 승단에 널리 공양을 올리면 된다고 알려주셨는데, 과연 공양과 기도의 결과로 청제 부인은 무간지옥을 벗어나 흑암지옥으로 옮겼다가 다시 아귀도에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아귀도에서 굶주림의 고통을 받으며 자신의 죄업을 깊이 뉘우친 부인은 아귀도마저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우란분은 산스끄리뜨어 울람바나(ullambana)의 소리옮김인데, ullambana는 거꾸로 걸려있다는 의미인 avalambana에서 앞부분의 음변화를 거친 것이다. 죄업을 짓고 가닿는 지옥에서 받게 되는 고통은 마치 잠시도 바로 서있지 못하고 항상 거꾸로 매달려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생긴 말이다.

우란분의 풍습은 인도에서 불교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니, 자식의 노력을 통해 부모나 조상이 구원을 받는 등의 유사한 내용이 대서사시 ‘마하바라따’ 제1장 및 ‘마누법전’ 제9장 등에 보인다. 여기서 자식은 아들을 가리키는데, 아들의 산스끄리뜨어 뿌뜨라(putra)는 지옥을 뜻하는 뿟(put)과 구하다는 의미인 뜨라야떼(trayate)의 합성어이다. 나를 지옥에서 구해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아들이란 이야기인데, 그래서 자식 그것도 아들이 없으면 죽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악처에 떨어져 고통을 받을 뿐이라 믿는다. 물론 살아생전에 브라만 계급으로 열심히 수행한다면 스스로 구원의 문턱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브라만교 그리고 지금의 힌두교에서 브라만이라면 20세쯤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신을 섬김은 물론 조상을 위한 제례를 올림으로써 미처 해탈의 신도(神道)에 들어서지 못하고 조도(祖道)에 머물고 있는 조상의 천도를 큰 의무로 여긴다.

우란분절은 아마도 ‘뿌뜨라’에 얽힌 전래의 관습이 불교에 들어와서 목련존자의 실례로 정착하며 온전히 불교의 고유 행사처럼 인식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불교 이전의 전통관습이 불교에 녹아들어올 때 부처님의 기본 가르침과 배치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약간의 수정이 가해져야 하는데, 무아론(無我論)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윤회론(輪廻論)이 그렇듯이, 자식이 제례를 통해 조상을 천도하는 일 또한 분명 어느 정도 조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선지 목련존자의 모친 청제 부인은 신통제일의 아들을 두었어도 바로 천상에 왕생하지 못하고 무간지옥에서 흑암지옥과 아귀도를 거친 다음에 스스로의 참회를 통해서야 아귀도를 벗어나 다시 목련존자의 집에 개로 태어났다고 한다. 진짜 그랬느냐를 궁금해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맞춰놓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으면 좋겠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02 / 2019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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