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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명상(冥想・瞑想)

기자명 현진 스님

일상 의식과 다른 특별한 세계 체험해 밝히는 것

남방불교에서는 ‘위빠사나’
북방은 ‘선나’ 형태로 발전
인도서 모든 정신활동 동력
몸‧마음 수련하는 행위자체

현대의 불교에선 명상(冥想 혹은 瞑想)은 별도의 개념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에 남방불교의 위빠사나(vipaśyanā)와 북방불교의 선나(禪那, dhyāna)로 분류되어 발전해왔음은 물론, 특히 북방의 선나는 다양한 사상과 결합되어 다채로운 명상법으로 전승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남방은 사제(四諦)와 십이인연(十二因緣)을 관하는 것, 무상‧고‧무아를 관하는 삼수관(三隨觀), 신‧수‧심‧법을 관하는 사념처관(四念處觀) 등의 초기불교 수행법이 상좌부전통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북방은 교종에선 천태의 일심삼관(一心三觀)과 법상의 삼계유심관(三界唯心觀)과 삼론의 팔불중도관(八不中道觀)과 밀교의 삼밀수행법(三密修行法) 등으로 꽃을 피웠으며, 선종에선 묵조(黙照)와 간화(看話)의 커다란 두 줄기를 이루어 전승되어 오고 있다.

그럼에도 그 큰 흐름의 핵심은, 명상이란 일상의 의식과는 다른 특별한 세계를 체험하여 밝히는 것이며, 또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행위 자체를 가리킨다.

어느 한 두 종파나 교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도의 모든 정신적인 활동의 중심동력은 분명 명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대 인도에서 실행되었던 명상(범어 dhyāna)과 현대의 서양화된 명상(영어 meditation)은 분명 그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차이를 보인다.

고대의 명상은 브라만계급 학생기(學生期)의 교육과정을 통해 그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브라만은 8세를 전후로 시작하여 통상 12년간 학생기를 지내게 된다. 학생기에는 집을 나와서 스승의 곁이나 별도의 교육기관에 머물며 기본적인 인성교육부터 받는데, 스승의 판단으로 시기가 되었다고 여겨질 때 비로소 ‘베다’의 공부에 들어간다. 초기엔 방대한 베다 문헌의 암기를 통해 집중력을 기르다가 일정 단계에 이른 후에야 스승으로부터 내용학습을 받게 된다.

그런데 스승으로부터 습득한 지식을 온전한 자신의 지혜로 계발시키는 것은 끊임없는 자습(自習)을 통해 이뤄지는데, 배운 것을 스스로 복습하는 이 부분을 명상(冥想, dhyāna)이라고 한다. 명상의 범어인 ‘드야너’의 동사어근이 공부하다는 의미의 드야이(√dhyai)라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고대 인도의 명상은 최소한 나무그늘 밑에 한가로이 앉아 마음 맑히는 것만이 아님은 분명하다. 빠니니가 문법서 ‘팔장론’을 정리하거나 ‘우빠니샤드’의 주옥같은 철학내용이 정리되는 데는 이러한 유형의 명상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요가학파 근본경전인 ‘요가수뜨라’ 제2장 29절에는 수행의 8단계가 명시되어 있다. 4~5세기에 저술된 책으로 간주되는 이 책은 이미 정착된 초기불교의 수행체계를 상당히 참고한 흔적이 보이는데, 8단계 가운데 6번째가 응념(凝念, dhāraṇā; 혹은 集中)이요 다음이 정려(靜慮, dhyāna, 혹은 冥想)며 마지막이 삼매(三昧, samādhi)이다. 요가수뜨라에서 명상인 정려는 ‘마음속에 오직 하나의 관념이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태’로 정의된다. 이는 벌써 고대 인도의 명상보다 오히려 불교에서 말하는 그것에 가깝다. 현대의 집중명상이나 초월명상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랜 전통의 기독교 명상인 묵상(默想)은 성서의 구절들을 속으로 음미하는 것이어서 현대보다 오히려 고대의 인도 명상에 가깝다.

청나라 황실에서 사나흘에 걸쳐 즐겼다는 수천 가지 요리의 만한전석(滿漢全席)이 펼쳐져도 어느 누가 먹어서 영양가 있고 맛있다 느끼는 것은 그 가운데 몇 가지 음식일 것이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설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불교수행에서 실행항목 가운데 하나인 명상 또한 그 내용 모두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가운데 하나라도 내가 실제로 잘 운용하는 데 요점이 있을 것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04 / 2019년 9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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