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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고기봉의 ‘목어가승(木魚伽僧)’

기자명 김영욱

수행자의 잠 쫓고 혼미를 경책하다

中 영남화파 대가 고기봉 작품
옅은 색 균일하게 물들여 채색
색과 먹을 섞어 칠하는 당수법
입체적인 조형미·실체성 특징

고기봉 作 ‘목어가승’, 종이에 채색, 177.0×80.0㎝, 1924년, 挹翠山堂 소장.
고기봉 作 ‘목어가승’, 종이에 채색, 177.0×80.0㎝, 1924년, 挹翠山堂 소장.

木魚纔動起經僧(목어재동기경승)
雲巘蒼蒼曉氣澄(운헌창창효기징)
日照石林生異色(일조석림생이색)
煙橫山阪有餘層(연횡산판유여층)

‘목어 소리에 독경하는 승려 일어났는데 산봉우리 구름 창창하니 아직 이른 새벽이라네. 돌무더기에 해 비추니 이상한 빛이 나고 산언덕에 연기 둘러 층계가 또 생겼구나.’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일찍 일어나다(早起)’ 중.

고즈넉한 옛 절집. 부드럽게 부는 바람결에 투박한 목어(木魚)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 아름 안 되는 기둥 뒤로 한 선승이 서서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회색빛 가사를 걸치고 드러난 배를 내보이는 선승의 얼굴은 부처의 법상(法相)처럼 자애롭고 편안하기만 하다. 주변에 떨어진 퇴색된 빛깔의 낙엽만이 깊어지는 가을의 시간을 알려준다. 중국 근대 영남화파(嶺南畵派)의 대가 고기봉(高奇峰, 1889~1933)이 그린 ‘목어가승(木魚伽僧)’의 한 장면이다.

고기봉은 목어 소리가 울리는 어느 절집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선승의 얼굴은 공을 들여 섬세하게 표현했지만, 몸을 덮은 회색 가사는 발묵(潑墨)의 붓질로 순식간에 그려냈다. 옅은 색으로 균일하게 물들이며 채색하는 방식이 마치 일본 회화에 보이는 ‘몽롱체(朦朧體)’와 비슷하다. 색과 먹을 함께 섞어 칠하는 기법인 ‘당수법(撞水法)’에 탁월했던 고기봉은 한 번의 붓질로 형상을 완성한 이후 여러 번 색을 올려서 입체적인 조형과 실체성을 드러내 보였다.

절집마다 ‘사찰 소리’가 있다. 범음(梵音)이 은은히 울려 퍼지는 범종(梵鐘) 소리, 장중한 일음(一音)으로 불법을 일으키는 법고(法鼓) 소리, 청아한 울림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운판(雲版) 소리, 투박하지만 마음의 진공(塵空)을 씻겨내는 목어(木魚) 소리가 그것이다. 혼란한 생각을 떨쳐내려는 속세의 사람들과 불법을 깨우치려는 선객과 승려들, 누구나 상관없이 산이 품은 여느 절집에 가면 듣게 되는 청정한 부처의 소리다.

물고기 모양인 목어는 머리가 용과 잉어의 형상을 하고 있다. 목어를 한 번 길게 치면 대중에게 모일 시간을, 두 번 길게 치면 선객에게 공양 시간을 알렸다. 옛 문인들이 산사(山寺)를 방문하여 읊은 시를 살펴보면, 이처럼 목어 소리에 따른 절집 안 선객의 모습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중국 당나라의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선사가 지은 선원(禪院)의 생활 규범서인 ‘백장청규(百丈淸規)’에는 “물고기는 언제나 눈을 뜨고 깨어 있으므로 그 형체를 취하여 나무에 조각하고 매사 침으로써 수행자의 잠을 쫓고 혼미를 경책했다”라고 전한다. 수행하는 선객들이 졸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도록 돕는 목어의 쓰임을 말한 것이다.

목어는 잠을 자지 않는다. 그러기에 어느 때나 사람과 하늘을 오고 갈 수 있다. 법심(法心)이 일어날 때마다 한 번씩 치면, 굵고 거칠며 깊은 그 소리가 마음에 쌓인 진공(塵空)을 소멸시킨다. 이래서, 선승은 목어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506호 / 2019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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