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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꽃의 시간

기자명 임연숙

세상 속 작은 생명의 순환을 보다

꽃 화두로 작업한 안진의 작가
한지로 두껍게 만든 전통지에
석채 물감 긁어내 덧발라 작업
전통 기법에 현대 표현법 접목

안진의 作 ‘꽃의 시간’, 259.1×193.9cm, 캔버스에 석채 혼합재료, 2019년. 
안진의 作 ‘꽃의 시간’, 259.1×193.9cm, 캔버스에 석채 혼합재료, 2019년. 

여름날의 무성함이 지나가고 위대한 자연 앞에 자신을 추스르게 되는 때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만은,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자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꽃’이라는 주제는 많은 작가들이 다루어 왔고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다. 안진의 작가는 작품 생활 초기부터 ‘꽃’을 다루어 왔고, 꽃을 통해 다양한 조형적 실험과 시도를 해왔다. 

전통회화에서 꽃은 사군자로 부르는 매난국죽 중 매화, 국화, 거기에 난초의 꽃이 있다. 또 많이 등장하는 꽃으로는 부귀와 번영을 상징하는 모란과 진흙 속에 피어 군자의 꽃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불교의 연꽃도 있다. 화조화의 일부로 여겨졌던 매, 난, 국, 죽은 각각의 식물 특성을 군자의 덕목에 비유해 중국의 북송시대부터 문인들이 즐겨 그렸다고 한다. 때로는 지조와 저항을, 때로는 강인함과 고결함을 의미하는 사군자는 오랜 기간 선비들이 추구하는 이념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는 소재였다. 어떠한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그 속에 작가는 많은 상징적 의미와 자신의 인생관을 담게 된다. 단순한 감상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작가가 추구하는 철학적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동양회화를 감상할 때 드는 생각이다. 

안진의 작가에게서 꽃은 온전한 자연의 세계이고, 그 꽃을 바라보는 시간은 정지된 화면처럼 작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작가는 빠른 세상과 자신의 느린 시간을 이야기한다. 느린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작가 자신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의미하는 거란 생각이다. 내면으로 들어가게 하는 매개가 작가에게는 ‘꽃’이라는 화두이다. 오랜 시간 ‘꽃’을 다뤄온 안진의 작가는 그동안 주제를 탐색해 그 자체를 섬세하고 화려하게 표현한 반면, 최근엔 그 표현에 있어 무언가를 넘어선 느낌이다. 화면은 좀 더 과감해지고 생명력 가득한 정원의 무성함을 묘사하기도 한다. 생략해 큰 여백으로 남기기도 하고, 때로는 큰 붓으로 지워내기도 하면서 그 주제에 대한 집착을 넘어선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사용하는 장지는 한지를 두껍게 만들어 채색 물감을 여러 번 칠할 수 있도록 만든 전통종이이다. 여기에 석채라고 하는 광물성 물감을 사용한다. 광물성이다보니 입자가 크고 종이에 스며든다기 보다는 아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화면에 얹히는 것이다. 수성의 느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화의 끈끈한 유성의 느낌과는 다른 질감이다. 그 입자들이 빛을 받으면 다각도로 반사하여 화면이 반짝반짝한 느낌이 든다. 그냥 채색물감으로 그려진 그림보다 실제 작품을 보면 두께감이나 바탕화면의 질감 효과가 있다. 작가는 오랫동안 석채라는 재료를 통해 긁어내기도 하고 덧바르기도 하면서 전통기법에 현대미술의 과감함과 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꺾여 정물화된 꽃이 아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의 모습은 정원의 한 귀퉁이 모습 같다. 여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존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듣고 보고, 안다고 하는 것들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씨가 떨어지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고, 무성하고, 다시 씨를 만들고, 시들고 하는 경이로운 일들이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작은 생명들의 순환을 바라보는 것은 결국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고, 작가가 표현한 꽃의 시간은 결국 자신의 시간인 것처럼 느껴진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507호 / 2019년 10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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