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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시마다 보쿠센의 ‘선재동자도’

기자명 김영욱

선지식 만나 불법 완성한 선재동자

헤이안시대 회화 전통 부활
가늘고 여리여리한 필선 특징
절제된 채식·모던 감각 돋보여

시마다 보쿠센 作 ‘선재동자도’, 종이에 먹과 엷은 채색, 74.2×78.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마다 보쿠센 作 ‘선재동자도’, 종이에 먹과 엷은 채색, 74.2×78.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塵刹都盧在一庵(진찰도노재일암)
不離方丈遍詢南(불리방장편순남)
善財何用勤劬甚(선재하용근구심)
百十城中枉歷參(백십성중왕력참)


‘티끌처럼 많은 정토는 모두 한 암자에 있으니 방장을 떠나지 않아도 남방을 두루 순방한다네. 선재동자는 무엇 때문에 고생을 자처하며 많은 성 안을 두루 돌아다녔던가.’ 원감충지(圓鑑冲止, 1226~1292)의 ‘천지일향(天地一香)’.

선재동자(善財童子). 그는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구도자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 경전 속에서만 존재한 인물이다. 인도 복성(福城) 장자의 아들로, 태어날 때 온갖 보물이 솟아났기에 ‘선재(善財)’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선재는 타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품고 남쪽으로 향하던 문수보살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말에 보리심을 발하는 선재를 보고, 문수보살은 그에게 남쪽으로 향하는 구도행(求道行)을 조언하였다. 그렇게 불법을 찾기 위한 선재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선재동자는 53인의 선지식(善知識)을 차례로 만났다. 선지식에 대해 ‘화엄경’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일체의 앎으로 가게 하는 문이며 수레이며 배이며 횃불이며 길이며 다리이다”고 하였다. 또 부처님은 다음처럼 말하였다. “선지식은 착한 벗이며 착한 도반이니, 범행의 전체다.” 즉 선지식이란 불법의 길에 들어가도록 바르게 이끌어주는 훌륭한 도반이자 지도자이다.

선재동자는 53인의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며 보살행을 어떻게 배우고 실천하는가에 관해 묻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질문은 항상 같았으나, 53인 선지식의 대답은 모두 달랐다. 그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신분으로 살아간 것처럼, 그들이 실천하며 깨우친 보살행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선재동자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고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일본의 근대화가 시마다 보쿠센(島田墨仙, 1867~1943)은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만나는 ‘입법계품’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그는 종교와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하여 고담(枯淡)한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선재동자도’는 헤이안시대 회화의 전통을 부활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활달하고 경쾌한 헤이안 시대의 선묘와 달리 화가의 가늘고 여리여리한 필선이 주목된다. 선재동자의 허리에 두른 띠에 칠한 엷은 주색을 비롯한 절제된 채색은 복고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짙은 먹으로 그린 풀의 표현에서는 화가의 모던한 근대적 감각이 돋보인다.

수행은 곧 인생이다. 기나긴 고생의 발걸음이 삶의 주름과 인생의 결을 이룬다. 선재동자의 인생은 지혜를 쌓아 불법을 완성해나가는 수행인 것이다. 쉼 없이 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53인의 선지식을 찾아간 이유가 그러하다.

마침내 선재동자는 마지막 선지식인 보현보살의 10대원(十大願)을 듣고, 그 공덕으로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여 입법계의 뜻을 이루었다. 그렇게 선재동자의 일생이 담긴 ‘화엄경’의 ‘입법계품’이 끝을 맺는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508호 / 2019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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