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초심자(初心者)
39. 초심자(初心者)
  • 현진 스님
  • 승인 2019.10.23 11:03
  • 호수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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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깨달음을 구하고자 처음 일으킨 마음

첫 배움에 있는 초학과 달리
초심은 기초가 다져진 상태
초심의 상태 되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갖출 과정이 존재

초심(初心)은 초발심(初發心)의 준말이다. 이는 깨닫고자 하는 최초의 마음이나 깨달음을 구하고자 처음으로 일으킨 마음을 가리키는데, 특히 불교에서 공부를 위해 처음으로 일으킨 마음이나 혹은 아직까지 그리 깊은 공부가 되지 못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초학(初學)이란 말이 단지 배움의 첫머리에 있다는 의미인 것에 반해 초심(初心)은 그 자체에 일체의 공덕이 다 갖추어져있어 내가 이미 부처라는 절대 확신을 갖는 단초가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초학자(初學者)라는 말에 비해 초심자(初心者)라는 말에는 동일하게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상태일지라도 이미 온전하고도 튼실한 기초가 다져져있다는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단지 처음 내기만 한다고 초발심이 아니라 요긴한 기반이 갖춰진 상태에서 온전히 내는 바른 마음이 초발심인 셈이다.

베다(Veda)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여섯 가지 기초학문을 ‘여섯 갈래의 가지들’이란 의미의 사당가니(ṣaḍaṅgāni)라 일컫는다. 예로부터 브라만교(지금의 힌두교)에선 브라만인 사제계급이 학생기에 접어들었다고 무턱대고 베다부터 익히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사당가니를 익혀야만 비로소 초학자를 지나서 온전한 초심자로서 베다를 접할 자격이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당가니의 여섯 가지 학문은 첫 번째가 음성학(śikṣā)으로서 특히 산스끄리뜨어의 정확한 발음과 연성법 등을 익히는 것이요, 두 번째가 제례학(kalpa)으로서 신성시되는 제례의 가르침과 그에 수반된 일정한 의식들을 익히는 것이며, 세 번째가 문법학(vyākaraṇa)으로서 산스끄리뜨어의 체계화된 문법을 익히는 것이요, 네 번째가 어원학(nirukta)으로서 산스끄리뜨 언어의 어원에 대해 익히는 것이며, 다섯 번째가 음률학(chandas)으로서 산스끄리뜨어의 운율에 대해 익히는 것이요, 마지막이 천문학(jyotiṣa)으로서 천문학에 대해 익히는 것이다. 여섯 가지 가운데 제례학과 천문학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모두 베다의 언어인 산스끄리뜨어에 대한 기초학문에 속한다.

인도의 문헌에서 무엇을 나열하여 서술할 때는 대부분 그 순서에 영향을 받는다. 예불의 오분향례에서도 계향과 정향 등으로 나열되었다는 것은 계행[戒]을 지켜야 선정[定]에 들 수 있고 선정에 들어야 지혜[慧]를 낼 수 있는 등으로, 선행된 것을 이루어야만 그 다음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당가니 또한 그러한 법례에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니, 배움의 길에 들어선 자라면 그 첫 번째인 음성학을 맨 먼저 배워야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산스끄리뜨어에서 ‘śikṣā(음성학을 배우는 이)’란 말은 무언가를 처음 익히는 초학자(初學者)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처음 배우려는 이는 그저 열정 가득한 마음만 준비하면 충분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초학의 상태일 뿐, 초심의 상태가 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될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 과정을 사당가니에 견주어 점검해보는 것도 의미가 없진 않을 것이다.

심지어 초학과 초심을 넘어 신행 혹은 수행에 들어선 이들 또한 사당가니의 과정이 거듭 공부 길을 점검하고 다독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데, 승가에서 이미 유사한 유형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승가에서 경전 원전어인 한문이나 산스끄리뜨어 등을 배우는 것은 음성학에 속하고, 일정기간 기도를 올리는 것은 제례학일테요, 문법과 어원과 운율 등의 기초가 다져져있지 않으면 어차피 경전공부가 피상적인 것이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만 천문학, 특히 점성술 같은 부분은 불교에선 상구식(上求食, 하늘을 쳐다보고 먹거리를 구함)을 하지 않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09호 / 2019년 10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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