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 꽃을 소환하다 ② - 동은 스님

기자명 동은 스님

“대지에 몸 맡긴 순간부터 꽃 아닌 순간 없다”

꽃은 한 번 피우려고 얼마나 많은 
비와 바람, 눈서리를 견뎠겠는가?
​​​​​​​
꽃은 생애 중에 가장 찬란한 순간
피어있기 때문에 그대로 아름다워
오직 이 순간 위해 애쓰고 빛 발해
싹 틔우고 떡잎 내 끊임없이 노력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모든 꽃은 아름답다. 저택 정원에서 우아하게 뽐내고 있는 백합이든, 깊은 산중 홀로피어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고고하게 피어있는 들꽃이든 아름답긴 마찬가지다. 왜 아름다운가? 피어있기 때문이다. 꽃의 생애 가운데서 가장 찬란한 순간,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애쓴 것이 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피어있는 꽃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러나 알고 보면 싹을 틔워 떡잎을 내밀고 대지에 몸을 맡긴 순간부터 꽃이 아닌 순간이 없다. 꽃을 피워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비바람 눈서리를 견뎌냈겠는가. 다만 그 모든 과정들의 결정체가 바로 꽃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꽃을 볼 때는 생애 전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처음 싹을 틔울 때부터 꽃이 피고 져 마침내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그 전 과정을 말이다. 그리하면 한 송이 꽃이 필 때 우주도 같이 피는 도리를 알게 될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사연이 있다. 결코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들의 도움이 있어야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가끔 추억이 소환될 때가 있다. 길 가다가 음악다방에서 틀어 놓은 흘러간 유행가에 잊고 지내던 친구가 그립기도 하고, 명상 삼매에 들었다가 문득 오래전 돈 떼먹고 도망간 동료가 생각나기도 한다. 꽃샘추위에 짙은 향기로 봄소식을 알려주는 프리지아를 보며 중학교 졸업식 때 받은 꽃다발을 떠올리고, 꽃집 앞 진열장에 놓인 꽃바구니 앞에서 프러포즈할 때 수줍던 아내의 미소를 소환할 수도 있다. 

꽃을 소환한다는 것은 곧 추억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나에게는 유년시절을 소환하는 꽃이 있다. 오월이면 법당 앞 화단에서 자주색으로 화사하게 피는 달개비가 그 꽃이다. 이 꽃은 고향집 장독간 한쪽을 떡하니 차지하고 마치 장독들과 친구마냥 어울렸다. 어쩌면 달개비 꽃들의 수다로 장이 더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더 있다. 초가집 동쪽 건너편에 있는 ‘의령 남씨’ 재실 울타리에 가득 핀 벚꽃이다. 지금도 벚꽃만 보면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듯하니 신기할 뿐이다. 

살다보면 꽃을 소환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름다운 소환일 때야 문제가 없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바쳤던 꽃을 돌려받고 싶다면 좀 곤란하다. 본전 생각이 나니 아예 물려달라는 것이다. 준 꽃은 돌려받기도 힘들거니와 한 번 흘러간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꽃을 줄때 마음은 아름답다. 사랑이 불타오를 때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들로 고백을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이란 것이 묘하다. 시시각각 변하다 어느 날 시들해진다. 마치 꽃이 시들어 버리듯이 말이다. 벌써 흘러간 순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랑이 식었다는 둥,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냐는 둥 하는 것은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금강경’에도 보면 ‘과거심도 불가득이요 미래심도 불가득’이라 했는데 어떻게 마음이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냐는 말이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전문. 

시인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꽃봉오리라고 했다. 행복한 순간이든, 가슴 아픈 순간이든 살아내기 위해서 애쓰는 그 과정들을 다 꽃으로 본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행복이란 열매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 꽃을 소환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피기 전의 꽃봉오리와 활짝 핀 꽃, 그리고 시들어가는 꽃과 져버린 꽃이 있을 뿐이다. 모두가 꽃이지만 돌아보면 다 소환대상이다. 

실체도 없는 마음이란 놈이 소환장을 내밀고 있을 뿐이다. ‘황금’이란 꽃이 지나간 시간이라면, ‘지금’이란 꽃은 내가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금이다. 살다가 문득 마음을 담아 주었던 꽃을 소환하고 싶을 때는 잘 생각해야 한다. 언젠가 ‘지금’의 꽃도 다시 소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생을 꽃피우기 위해 온 정성으로 살아온 아름다운 내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 돌아보니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지만 그 순간순간들이 모두 사실은 인생의 꽃봉오리였던 것이다. 

가을은 대지가 만물을 소환하는 계절이다. 봄에 내보냈던 생명들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다. 뜨락에는 떨어진 꽃잎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하다. 꽃이 져야 씨앗이 생긴다. 꽃이 아름다움만 자랑하느라 지기를 거부한다면 진정한 꽃이라고 할 수 없다. 위대한 포기, 대지의 소환에 온전히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 꽃을 소환한 그 자리에 비로소 열매가 맺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기쁜 일과 슬픈 일에는 항상 꽃이 존재한다. 꽃이란 곧 기쁨과 슬픔의 상징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산과 들에서 고고하게 피어 한 생을 멋지게 살다가는 꽃들이 대부분이긴 하다. 운명이 소환하고 부처님께서 거두신 내 인생의 꽃은 그 때는 우화(雨花)였고 지금은 금화(今花)이다. 그때는 쓰디썼는데 알고 보니 뒤끝이 달았다. 마치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말이다. 이제 나의 뜨락은 ‘우화’와 ‘금화’가 어우러진 온갖 꽃들로 늘 다채롭다. 그래서 내 삶의 소환지는 ‘지금 이곳, 중생’이란 아름다운 꽃밭이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