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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공성의 용례와 그 함의 ③

공이란 유무의 관점을 지양하고 있는 중도적 개념

공이나 공성의 이해를 둘러싼
사상적인 차이 간단하지 않아
승의 차원 공의 본질 인정하며
경험되는 유 또한 긍정이 중도

공성(空性, śūnyatā)은 세속과 승의의 두 차원으로 볼 때, 이는 승의의 차원에서 전개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와 세계를 공(空, śūnya)으로 설명하는 경우, 현상과 본질의 긴밀한 불가분의 관계를 고려하면 일상적인 영역에서 현상적으로 경험되는 나와 세계는 세속의 차원에서 그 존재성이 전면적으로 부정되지는 않는다. 

반면 나와 세계의 본질은 승의의 차원에서 자성적으로 그 존재성이 부정되는데, 이를 공성이라 부른다. 나와 세계가 공이라고 표현되는 경우, 나와 세계는 세속의 차원에서 현상적으로는 유(有)이지만, 승의의 차원에서 본질적 혹은 자성적으로는 무(無)라는 의미이다. 공(空)이란 유무의 관점을 지양하고 있는 중도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이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 악취공(惡取空)이나 허무주의로 떨어질 소지가 있다.

이러한 공이나 공성의 이해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초기경전 중 ‘소공경’의 상대적인 공의 이해방식을 ‘반야경’의 공관(空觀)에 따라 비판적으로 계승한 유가행파의 입장이다. 유가행파의 입장은 ‘유가사지론’의 구성요소 중 ‘본지분’에 속하는 ‘보살지 진실의품’의 공성에 관한 기술이나 ‘중변분별론’의 허망분별과 공성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하는 기술에서 확인된다. 둘째는 ‘반야경’의 소품계에 제시된 공무소득(空無所得)의 입장과 대품계의 자성공(svabhāvena śūnya)의 입장을 절충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중관학파의 입장이다. 중관학파의 입장은 바비베카나(청변)나 찬드라키르티(월칭)의 공성에 관한 이해와 방식 등에서 확인된다.  

사실 대승불교에서 공성에 관한 이해방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용수의 ‘중론’ 제24장 18송에 제시된 공(空)․가(假)․중(中)의 3제게에서 확인된다. 즉 용수는 ‘연기(緣起)라는 사상은 공성이라는 사상과 다르지 않다고 우리들은 설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원인에 의존하여 구상(構想)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붓다가 설한 중도이다.  24-18)’라고 설한다. 여기서 용수는 ‘연기=공성=중도’라는 입장을 명확히 표방한다. 이때 연기와 공성은 이제의 차원에서는 승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연기는 연기의 이법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연기의 이치가 적용된 개개의 현상들, 즉 연생법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반야경’에서 ‘모든 존재는 자성을 가지지 않으므로 공(一切法無自性空)’이라고 설한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원인에 의존하여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야경’의 공에 관한 설명방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실 공에 관한 설명방식은 ‘반야경’의 소품계와 대품계의 기술방식의 그 차이에서 확인되듯이, 개념상의 변천이나 이해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 가운데 하나인 공이나 공성의 이해방식은 텍스트의 성립사적인 층위와 그 개념적인 차이를 고려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반야경’의 공사상을 공통적으로 계승하면서도 공성의 그 이해방식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유가행파(=유식학파)와 중관학파의 사상적 차이는 공성의 이해와 그 실천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결국 대승불교에서 제시하는 공이나 공성의 이해방식은 이제적인 차원에서 중도적 실상을 표현하는 하나의 교설이나 패러다임으로 이해된다. 즉 공이나 공성은 협의로는 승의적인 차원에서 모든 존재의 본질이나 자성을 무(無)로서 부정하는 동시에, 광의로는 세속적인 차원에 현상적으로 경험되는 나와 세계는 유(有)로서 긍정하는 중도를 표방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승의적인 차원에서 자성의 본질이 무자성(無自性)으로서 절대적으로 부정되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그 사상적 입장 차이는 티벳불교에서는 자공(自空, rang stong)과 타공(他空, gzhan stong)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10호 / 2019년 10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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