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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이제설의 전개양상 ①

용수의 세속제는 가설과 가설의 기체 모두 부정

설일체유부의 이제설에서
색수상행식 제법은 승의유
용수의 이제설과 공성에서
5위75법도 세속제에 불과

이제설은 붓다의 교법과 진리의 형식에 관한 학설로서 다루어져 왔다. 원형은 초기 불교경전의 ‘중아함’ 등에서 산견되고, ‘구사론’에도 등장한다. 한편 용수는 ‘중론’에서 반야경의 공사상을 이해하는 토대로서 대승적인 입장에서 이제설을 독특한 진리관으로 확립시켰다. 이제설은 용수에 의해 대승적으로 새롭게 제시된 이래 공성론의 이해나 전개와 관련하여 중관학파의 중심적인 교설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용수의 이제설은 유가행파의 이제설과는 차이를 보인다. ‘진실의품’에서 ‘일체법무자성’이라는 입장에서 가설의 의지처나 기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허무론자’나 ‘악취공자’에 관한 기술 등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기술들은 ‘해심밀경 무자성상품’의 말미에 설해진 ‘삼전법륜설’의 해석학적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이제설이란 세속제(=俗諦)와 승의제(=眞諦)라는 두 가지 진리를 인정하는 교설로서 진리의 차원을 세속적인 차원과 승의적인 차원의 둘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먼저 ‘구사론’에 제시된 설일체유부의 이제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두 가지 진리란 세속제와 승의제이다. 그 두 가지 진리의 특징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병과 같이 깨지면, 혹은 물과 같이 사유에 의해 타자를 배제하면, 그 관념이 없어지는 것은 세속유이고, 그렇지 않으면 승의유이다.(AKBhⅥ.4)”

유부의 이제설은 존재의 특성으로 설명되는데, 즉 존재의 영역에 따라 세속제와 승의제로 구분된다. 물리적으로 병이나 항아리와 같이 깨지거나 물과 같이 사유에 의해 타자를 배제하면 그 관념이 없어지는 것은 세속적 존재로, 그렇지 않으면 승의적 존재로 분류된다. 예컨대 유부의 견해에 따르면 색․수․상․행․식으로 구분되는 오온에 대한 자아(pudgala) 등의 관념이나 언어표현은 세속적 존재(世俗有, saṃvṛtisat)이고, 색․수․상․행․식 등의 제법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존재로서 승의유(勝義有, paramārthasat)로 설명된다. 이 때 세속유는 가설적 존재(假有, prajñaptisat)와 동일시되고, 승의유는 실체적 존재(實有, dravyasat)와 동일시된다.

한편 ‘중론’에 제시된 용수의 이제설은 다음과 같다. “2종의 진리에 의지하여 붓다들은 가르침을 설했다. 즉 세간의 일반적인 진리와 승의적인 진리이다(8). 이 2종의 진리 사이의 구별을 모르는 사람들은 붓다의 교설이 지닌 깊은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9). 언어습관에 의지하지 않고서 승의는 설해지지 않는다. 승의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열반이 획득되지 않는다(10).(MMK24.8-10)”

여기서 용수의 이제설은 다소 모호한 측면도 있지만, ‘중론’의 관련기술 등을 고려하면 언어습관에 의한 표현은 세속제로, 언어관습을 떠난 것은 승의제로 이해된다. 이 둘의 구조적 관계는 ①승의(空性, 涅槃)가 언어습관(세속제)에 의해 설시되는 측면과, ②승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열반이 획득된다는 두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공성(空性)에 대한 이해는 세속과 승의를 매개하는 것으로, 바로 공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공성의 획득(열반)이 성취되는 구조로 분석된다. 

용수의 단계에서는 ‘희론적멸’을 통한 공성의 획득이 제시되고 있다. 이런 구조에는 용수에 의해 지적되고 있듯이 ‘악취공(惡取空)’에 떨어질 위험도 내포되어 있다. 결국 용수의 이제설과 공성에 대한 이해방식에 의하면, 유부의 이제설에서 제시된 존재의 구성요소로서 5위 75법 등의 유위와 무위의 실체적 존재는 반야경의 ‘일체법무자성’이라는 입장에서 세속제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용수의 세속제는 가설과 가설의 기체를 동시에 부정하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김재권 능인대학원대교수 marineco43@hanmail.net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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