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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공맹과 양명 그리고 공감의 문명

기자명 고용석

군인들 극한 전쟁 중에도 살생 꺼린다 

공맹사상엔 생명존중 스며있어
나폴레옹시대와 남북전쟁 결과 
피격자 많아야 하나 실상 달라
동서양 막론 생명 존중에 공감 

공자는 노자의 도(道)처럼 인(仁)을 특별히 정의하지 않는다. 단지 애인(愛人)이나 극기복례, 서(恕)로 말할 뿐이다. 공자는 인을 하고자 하면 이 인이 이른다고 했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돌이켜서 구한다면 이미 나아가 있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불인(不仁)은 마비나 무감각을 지칭하니 심미적 감수성이나 공감으로 이해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성 싶다. 논어에 관련 에피소드가 있는데 논란이 많은 대목이기도 하다.

공자가 들에 노니는 꿩들을 보면서 “제철이지! 그럼, 제철이지!”하고 감응하고 기뻐하는데 자로가 스승님이 꿩고기를 드시고 싶은가 오해하고 꿩 요리를 상에 올린다. 공자는 꿩 요리를 먹지 않고 세 번 그 향기를 맡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음식 향기를 세 번 맡는 행위는 제사에 올린 음식에 대한 당시 예법에 따른 행위라는 견해가 많다. 공자는 자로가 오해로 올린 불편한 식사를 단번에 거룩한 제사로 바꾼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맹자는 모든 사람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즉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있고 훌륭한 정치란 이 마음의 발현에 있다고 보았다. 왕이 제사에 쓰기 위해 죄 없이 죽으러 가면서 몸을 벌벌 떠는 소를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풀어주자 맹자는 천하에 사람 죽이기를 꺼려하는 임금이 있다면 백성들이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반문한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는 정치를 행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명나라의 왕양명은 사람의 본성으로 양지(良知)를 말한다. 맹자의 인의예지 사단의 통합체인 이 양지를 통해 천지만물과 감응한다는 것이다. 즉 다른 존재물의 생명의 온 정성에 대한 시비를 자각적으로 판단하고(시비지심) 생명을 손상하는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며(수오지심) 생명손상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면서(측은지심) 그 생명손상을 치유하고 보살피는 실천행위(공경지심)를 통해 천지만물의 운용에 참여하는 것이다.

나폴레옹 시대와 남북전쟁 전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모든 상황과 조건을 감안할 때 1분에 수백 명이 사살되는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실제 피격자는 분당 한두 명에 불과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전투 중 발사율이 15~20%에 불과했다고 한다. 즉 총격전 참가 병사 100명 중 15~20명만이 실제로 무기를 사용했다는 얘기다. 베트남전에서도 사망한 적병과 발사된 총탄의 수를 비교하면 한 명당 5만발 이상이었다. 이 연구들은 절박한 위험 상황에 처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생을 꺼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역사를 통해 대다수의 군인들은 적을 죽일 수 있고 의당 죽여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 자신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공자, 맹자는 어지러운 춘추전국시대를 살았고 왕양명은 숱한 전쟁을 경험한 장수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통해 표면적으로 선악이 뒤섞여 복잡해 보여도 그 내면 깊숙한 공감과 연결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임을 몸소 보여줬다. 

인류문명은 7000년 동안 공감과 연결이라는 인류의 본성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해왔다. 내면의 연결을 확인하기 위해 소통의 과학기술을 창조하고 무역과 시장을 넓혀왔으며 그것이 공감의식을 확장하는 계기도 됐다. 그리고 확장된 공감의식은 새로운 에너지와 소통수단 등 훨씬 복잡한 사회를 창조하는 한편 그 무의식적 한계로 인해 숱한 전쟁과 오늘날 지속가능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이제 방향을 내적으로 전환함으로써 문명과 의식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때다. 이는 인류 본성의 집단적 자각이자 공감의 차원적 확장이며 문명 자체를 문명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속가능성 위기는 새로운 기회이고 자각적 음식선택은 전환의 마중물이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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