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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우상하의 ‘노승간월도(老僧看月圖)’

기자명 김영욱

하루 풍진 쓸어간 달빛서 나를 찾다

인물화 뛰어난 우상하 작품
변함없는 맑은 바람·밝은 달
바라보는 노승 서정적 표현
섬세한 필치로 사실적 묘사

우상하 作 ‘노승간월도’, 106.0×63.0㎝, 조선미술박물관.
우상하 作 ‘노승간월도’, 106.0×63.0㎝, 조선미술박물관.

境了人空鳥亦稀(경료인공조역희)
落花寂寂委靑苔(낙화적적위청태)
老僧無事對松月(노승무사대송월)
卻笑白雲時往來(각소백운시왕래)

‘경계 끝나니 사람 없고 새조차도 드문데 지는 꽃 쓸쓸히 푸른 이끼 위로 내리는구나. 노승은 일없이 소나무 달 마주하며 이따금 오고 가는 흰 구름에 문득 웃고 만다.’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의 ‘요암(了庵)’.

어느 날의 밤이다. 꽉 찬 흰 달은 둥글고, 하이얀 밝은 달빛이 구름 따라 흐른다. 사람 사는 마을에선 삽살개가 달빛에 드러난 물상을 보며 짖어대고 어느 노인은 달 보며 탁주 한 잔 걸치겠건만, 이곳은 고요한 정적이 깃든 어느 산속이다. 그저 맑은 바람과 흐르는 물소리만 있을 뿐이다. 그 소리 들려오는 언덕 위로 오른 한 노승이 하루 일을 마치고 소나무와 밝은 달을 올려다본다.
‘노승간월도’는 조선 말기부터 근대 전환기 무렵에 활동한 겸현(謙玄) 우상하(禹相夏)의 작품이다. 함경도 단천(端川)에서 살았다는 행적만 알려진 그는 인물화에 뛰어났다고 전한다. 이러한 전언처럼 그림 속 노승의 표현은 뛰어나다. 노승의 얼굴은 마치 그가 본 노승을 옮겨놓은 듯 매우 꼼꼼하고 섬세한 필치로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달을 바라보는 노승이 있는 산속 공간은 대부분의 완월도(玩月圖)나 대월도(對月圖)처럼 퍽 서정적이다.

예부터 산중 스님들은 달을 아끼고 사랑했다. 어느 산중 스님은 달빛을 너무 좋아하여 물병 속에 함께 길어 담아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가하면 달을 통해 가르침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중 하나의 이야기를 들자면, 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 스님이 마조도일 선사를 모시고 달구경을 나간 적이 있었다. 밝게 빛나는 둥근 달을 보고 마조 선사가 문득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서당은 “공양하기에 좋은 시기입니다”라고 하고, 백장은 “수행하기에 좋습니다”라고 하고, 남전은 소매를 떨치고 발걸음을 돌렸다.

마조 선사는 “경(經)은 장(藏)으로 들어가고, 선(禪)은 해(海)로 돌아가고, 오직 보원만 사물 밖으로 벗어났다”는 말을 남겼다. 선사의 질문은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어본 것으로, 이에 세 스님은 각기 나름의 답을 통해 자신의 수행을 이어나갔다.

화면 속 노승은 하루의 풍진을 쓸어간 밝은 달빛에서 자신의 마음을 찾고 있다. 늘 변함없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과 같은 마음을.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과 학자 이고(李翶)가 지은 시의 구절을 빌린 화면 속 짧은 시가 노승의 마음을 담담히 전해준다.

‘늙은 스님의 도기(道機)가 무르익어 말하고 침묵하는 마음 모두 평온하다네. 도를 물어보는 나에게 아무 말씀 없더니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고 하시네(老僧道機熟, 語黙心皆寂. 我來問道無餘語, 雲在靑天水在甁).’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514호 / 2019년 1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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