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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개화천지미분전 의미

기자명 이제열

“화두는 스승 의도를 간파하는 것”

참선은 본성 깨닫는 수행법
40년 전 정일스님에게 화두
개화천지미분전 화두 건네
답 있거나 없거나 모두 잘못

간화선은 공안을 참구해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 부처를 이루는 수행법이다. 내가 간화선을 처음 접한 것은 40여년 전 수선회(修禪會)를 통해서다. 수선회는 지금도 간화선 정진에 매진하는 재가수행단체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당시 나는 현 수선회 지도법사인 현담 스님을 인연으로 간화선을 접했는데, 현담 스님은 큰스님들과 인연이 깊어 회원들에게 그분들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었다. 

수선회는 현재 조계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선학원을 도량으로 삼아 활동했다. 선학원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당시 선학원을 대표하는 이사장은 스님과 신도들로부터 선사로 추앙받는 정일 큰스님이셨다. 우이동 보광사 조실도 맡고 계셨던 큰스님은 수선회 지도법사인 현담 스님을 매우 아끼셨고, 수선회가 선학원에서 장소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큰스님의 배려 덕이었다. 나는 간혹 큰스님을 선학원에서 뵀지만 가르침을 직접 들을 기회는 없었다. 그런 어느 날 현담 스님이 내게 보광사에 가서 큰스님을 뵙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 며칠 후 보광사를 찾았다. 큰스님은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셨고 방문한 우리들에게 참선법, 화두수행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큰스님은 대화 도중 내게 어떤 화두를 드는지 물으셨고 나는 아직 화두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큰스님은 내게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이전은 어떤 소식인지를 참구하는 ‘개화천지미분전(開化天地未分前)’ 화두를 주셨다. 나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그 화두를 참구하면 정말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는지 여쭸다. 그런데 큰스님은 의외의 답변을 하셨다.
“안다 해도 모른다 해도 모두 분별이니 다만 의심할 뿐이지 다른 걸 의심해서는 안 되네. 이미 의심해야 할 화두를 주었는데 군더더기를 붙이지 말게. 화두는 다만 참구할 뿐이야. 오로지 ‘어째서 무(無)인고?’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인고?’ ‘왜 마른똥막대기라 했는고?’만 의심하고 공부해야하네.”

솔직히 나는 그때 큰스님 말씀이 마음에 확 와닿지는 않았다. 누구라도 한번쯤 궁금하게 여기는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이전의 우주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는 답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20여년이 흘러 큰스님이 입적하기 몇 해 전 우연히 큰스님을 다시 뵐 수 있었다. 나는 인사를 드린 후 지난날 ‘개화천지미분전’ 화두를 받은 일을 말씀드리고 그때 심경을 전해드렸다. 큰스님은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인연이 있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참선 수행의 요체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법사님이 그때 내말 뜻의 못 알아 들으셨군. 화두는 답이 있다 해도 방망이 30방이고 답이 없다 해도 30방입니다. 답이 있다고 생각해 답을 내놓으면 모두가 분별·알음알이·망견이고, 답이 없다고 하면 무명·흑암굴이니 이래도 저래도 모두 아닌 겁니다. 그럼 뭐냐? 화두라는 것은 화두를 던진 사람의 의도에 있는 겁니다. 가령 조주선사가 개에게 불성이 있는지를 묻는 수좌의 질문에 무(無)라고 대답했다면 그 무를 던진 조주선사의 의중과 의도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 이리저리 알음알이를 굴려 답을 얻으려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학인은 어째서 조주선사가 ‘무’라 했는가를 의심하고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이전은 어떤 소식인가, 즉 ‘개화천지미분전’하는 의심만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건 그 질문을 던진 스승의 의중을 간파하는 겁니다.”

나는 그제야 과거 큰스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화두 수행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간화선은 조사선이고 조사선은 결국 스승의 마음을 간파하여 인가를 받고 부처의 반열에 오르는 수행법이었던 것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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