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연재를 마치며(끝)
124. 연재를 마치며(끝)
  • 이병두
  • 승인 2019.12.23 14:52
  • 호수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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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재가 화합해야 한국불교 희망적

사진으로 살핀 근현대 불교사 
영광보다 부끄러운 사건 많아
과거 비해 위상은 높아졌지만
불교가 발전한 결과인지 의문
1966년 대불련 구도부 김룡사 수련회. 왼쪽부터 서경수, 성철·숭산 스님, 이한상, 박성배.
1966년 대불련 구도부 김룡사 수련회. 왼쪽부터 서경수, 성철·숭산 스님, 이한상, 박성배.

지난 3년 동안 사진을 통해 19세기 말 개화승 이동인부터 2015년 12월의 한상균 사태에 이르기까지 120여년의 한국불교 근현대사의 영욕(榮辱)을 살펴보았다. 솔직히 영광보다는 부끄럽고 힘든 일들이 많았던 어려운 세월이었다는 것을 이런저런 사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일본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사찰 주련 정도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이해해 줄 수 있겠지만 이 땅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제1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절 박문사(博文寺) 개원법회에 숱한 스님과 고관대작들이 모여들고,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하라” 축원하며 ‘조선불교호’라는 이름의 전투기를 헌납(?)하는 행위는 어떤 식으로도 용서‧이해하기 어려웠다. 

1945년 해방 뒤로도 불교계의 부끄러운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일본 종교계 소유 재산(적산) 처분, 군종장교 제도 도입과 방송사 설립 등 특혜를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에만 유리하게 해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게 항의는 고사하고 스님들이 앞장서서 이승만의 삼선개헌을 지지하며 기도회를 열고 가두시위까지 펼쳤다. 심지어 이승만을 ‘미륵불’이라 칭송하는 현수막을 내거는가 하면 절에 찾아온 이승만 앞에 주지스님이 맨땅에 3배를 올리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미국 부통령과 함께 경국사를 찾은 이승만은 모자를 벗지 않고 신발도 신은 채 거만하게 앉아 있고 그 앞에서 주지스님이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는 사진도 있었다. 이런 부끄러운 행동이 습(習)이 되어 그 뒤로 수십년 동안 그것이 문제인줄도 모르고 지내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기독교에만 일찌감치 허용해준 군종장교와 방송사 설립은 20~30여년이나 늦게 불교계에도 기회를 주었지만, 이 나라의 종교 판도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 버린 뒤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불교는 살아남았고, 양적으로 성장‧발전했다. 종단 고위 인사가 정부의 하급관료 앞에서도 쩔쩔매던 장면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이야기’가 되었고, 조계종 총무원은 국무위원이나 각 정당 대표들이 취임하면 맨 먼저 찾아와 인사를 하는 곳이 되기도 하였다.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에 가깝지만, 이 기적은 하늘에서 떨어진 공짜 선물이 아니었다. 3년 동안 이 연재를 이어오면서 숱한 사진을 찾아 들여다보고 선택해 글을 썼지만, 1970년대까지의 사진에서는 요즈음처럼 출가와 재가 사이의 벽을 느낄 수 없었다.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청담‧성철‧숭산‧광덕‧법정 스님 등 출가수행자들, 불자 사업가 이한상과 장경호‧장상문 부자, 그리고 황산덕‧이기영‧서경수‧박성배 등의 불교 지식인들이 각기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도와주었다.

통계 수치로 드러난 불자 숫자의 감소, 일부 스님들의 일탈행위와 사회 전반적인 탈종교화 현상, 극단적인 일부 타종교의 공격 등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현재 한국불교계에 가장 시급한 일은 ‘출가와 재가 사이에 놓여있는 장벽’을 없애고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는 일이다. 이 연재 48회 ‘다면불 서경수 교수’편에서 쓴 이 사진을 가슴에 담고 있는 이유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18 / 2019년 12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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