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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만행(萬行)(끝)

기자명 현진 스님

무상보리 얻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

삼학·육바라밀 등 해탈 위한
구체적 수행을 포괄하는 것
극락왕생 위한 수행도 만행
단지 떠난다는 의미와 달라

만행(萬行)이란 ‘온갖 행위’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무상보리를 얻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 가운데 계・정・혜의 삼학이나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은 모든 수행을 포괄하는 말이므로 만행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삼학(三學)이란 계・정・혜(戒・定・慧)를 일컫는데, 계행을 지킴으로써 선정에 들 수 있고 선정에 들 수 있음으로 지혜를 얻어 해탈로 나아갈 수 있으므로, 이 세 가지 배움은 불교수행의 요체다. 예불문 앞머리에 등장하는 오분향례인 계향・정향・혜향・해탈향・해탈지견향은 삼학이 언급된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그리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이란 항상 베품을 행하며[布施] 계율을 지켜가는[持戒] 가운데 일어나는 온갖 고난을 참아 견뎌내는[忍辱] 등의 수행을 느슨히 하지 않으면[精進] 정신이 통일되어 안정[禪定]을 취할 수 있는데,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지혜[智慧]를 통해 결국 저 건너편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육바라밀은 삼학을 조금 더 세분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삼학이나 육바라밀은 만행의 정형화된 형태일 뿐, 그 둘이 만행의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정토신앙에서 만행이란 용어는 조금 더 구체적이면서 약간 다른 시각으로 이해된다. 정토종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극락왕생을 위해 행하는 수행법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만행이다. 우선,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하고 예배하며 공양하는 것을 극락왕생을 위한 최선의 수행이라 여기며, 이를 정행(正行)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정행을 제외한, 즉 아미타불 외의 여타 부처님의 명호를 칭념하는 등을 만행(萬行)이라 일컫는다 하였다.

원효 스님께서 ‘나무아미타불’만 칭념하더라도 성불을 할 수 있다고 하신 덕분에 아직 배우기 어려운 교종(敎宗)만이 존재하던 신라에 무지렁이 백성들도 모두 불교에 귀의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저 덕 높은 스님의 한 가지 방편인줄로만 알았던 것이 어엿한 ‘바른 수행[正行]’이었던 셈이다. 그 외에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모든 부처님의 칭념 등이 만행이라 하였으니, 정행이든 만행이든 정토종에서의 수행은 불명호의 칭념과 예배 및 공양에 국한된 조금은 소극적이며 기복적인 방법임을 알 수 있겠다.

요가(yoga)는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선 물론이요 힌두교를 비롯한 인도의 거의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궁극에 가닿기 위한 방법론, 즉 공통된 수행으로 간주되고 있다. ‘요가’는 범어로서 동사인 유즈(√yuj, 소에 멍에를 지우다, 연결하다)에서 온 말인데, ‘절대존재 브라흐만과 하나가 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불교에서 해탈을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가 수행 혹은 만행이라 일컬어지는 것과 유사한데, 차이라면 불교는 정신이나 물질이나 그 무엇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것이 없는 무아론에 기반한 반면, 요가는 정신적인 무언가를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는 유아론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완벽하여 불변하는 영혼 혹은 자아인 ‘뿌루샤’의 완벽성을 회복하기 위해 물질이자 세계의 본질에 해당하는 ‘쁘라끄리띠’를 다양한 방법으로 완전히 굴복시킴으로써 어떤 장애도 되지 않도록 한다는 상키야 철학은 요가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런 까닭에 극단적으론 요가를 육신의 굴복으로만 이해하게 된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이렇듯 유아론과 무아론이란 극단의 차이를 가졌음에도 요가와 만행은 그 커다란 맥락, 즉 수행(修行)이란 측면에선 닮은 점이 많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괴상한 몸동작만이 요가가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듯이 만행 또한 단지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것만이 아님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를 알지 못하면 만행(萬行)은 만행(蠻行)이 되고 만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18 / 2019년 12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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