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엄 법계에 노닐다 – ‘화엄경(華嚴經)’ 개요
1. 화엄 법계에 노닐다 – ‘화엄경(華嚴經)’ 개요
  • 해주 스님
  • 승인 2020.01.06 10:30
  • 호수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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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은 지금 여기, 부처님 도량서 참행복 누리게 하는 거룩한 법문

갖춘 제목은 ‘대방광불화엄경’
경명에 경의 전체 내용 담겨

처음은 부처님의 자내증 경지
이어 청정 보리심 의한 보살도
구경 수행에 의한 깨달음 세계
선재동자 해탈 여정 역참 구성

화엄경은 부처님 반열반 이후
500여년경에 인도에서 문자화

​​​​​​​한국 전래 이후 신행의 중심축
의상 스님 그림으로 그려 보여
해주 스님은 “나에게 있어서 ‘화엄경’은 입산 출가할 때 가졌던 의문,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한 법문”이라고 말했다.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대탑
해주 스님은 “나에게 있어서 ‘화엄경’은 입산 출가할 때 가졌던 의문,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한 법문”이라고 말했다.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대탑

지금부터 ‘대방광불화엄경’(‘화엄경’)의 가르침을 사유하면서 화엄법계를 함께 노닐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39품 80권 ‘화엄경’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내가 본 ‘화엄경’의 세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본 화엄경’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이 없지 않겠습니다. 화엄법계에 노닐자면 먼저 ‘화엄경’이 어떤 경인가? 화엄법계가 어디이며 법계에 노니는 자미가 무엇인가? 등을 묻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화엄경’에서는 어떤 세계가 펼쳐지고 있으며,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도록 가르쳐 주시는가?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오늘날에도 왜 여전히 ‘화엄경’인가? 이외에도 자세한 것은 앞으로 만날 ‘화엄경’ 교설에서 알 수 있겠습니다만, 우선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경의 전체 내용은 무엇보다도 경의 제목에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화엄경’의 갖춘 제목인 ‘대방광불화엄경’은 여러 가지로 이해되고 있는데, 만약 단 한 글자만 든다면 단연 ‘불(佛)’이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부처님이시냐 하면 대방광불입니다. 대방광은 ‘크시고 반듯하시고 너르시다’라는, 부처님의 체성[體大]과 모습[相大]과 묘용[用大]을 표현한 것입니다. ‘화엄’이란 꽃으로 장엄한다는 것이니 불과(佛果)에 도달하는 인행(因行)으로서의 보살행을 뜻하는데, 불세계를 장엄하는 보살도를 비유로 말한 것입니다.

화엄보살의 수행은 원인과 결과가 둘이 아닌 인과동시의 인행입니다. 마치 연꽃이 필 때 연밥이 함께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보살도를 행하는 것이 곧 불과를 증득하는 것으로서, 보살행이 바로 불세계의 장엄이라는 것입니다. 그 보살행은 과거세 부처님이 닦으셨던 본행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화엄경’은 그 전체가 부처님[佛]을 말한 경인데, 그 부처님 세계에 우리들이 다가갈 수 있게 시설된 방편이 바로 보살도입니다. ‘화엄경’은 보살행의 정화라고 칭송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의 제목을 줄여 말할 때 ‘불경’이라고 하지 않고 ‘화엄경’이라 부른 것으로 헤아려 볼 수도 있겠습니다.

또 여기서 ‘불’을 바꾸어 말하면 곧 ‘마음’입니다. 화엄세계 전체가 오직 한마음에 거두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다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一切唯心造] “만약 과거·현재·미래 모든 부처님을 요달해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라는 게송이 ‘화엄경’ 제일게(第一偈)라고 회자되어 왔습니다. ‘화엄경’의 대의도 만법을 통섭해서 일심을 밝힌다는 ‘통만법 명일심(統萬法明一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유심(唯心) 또는 일심(一心)이라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를 깊이 알아야겠습니다. 그 마음은 궁극적으로 부처님의 마음(如來心)입니다. 부처님의 마음은 부처님의 지혜(如來智)입니다. 여래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나 만덕을 갖추고 있다고 하여 여래성기구덕심(如來性起具德心)이라고도 합니다. 한마디로 마음은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여래성기심입니다.

이처럼 ‘화엄경’의 세계인 법계가 불세계이고, 부처님의 마음 즉 지혜의 세계라면, ‘지혜가 모자라 번뇌 망상으로 고통 받는 범부 중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인가?’ 라는 생각이 들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지혜마음은 범부중생의 본래마음이고, 중생이 보살이 되어 보살행을 펼칠 수 있는 보리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법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중생이 예부터 본래불이고 나의 오척되는 몸과 마음이 법성신인 것입니다. 온전히 부처님 마음인 내 마음으로 자재하게 공덕을 짓는 것이 성불의 길이고 중생교화의 길인 보살도인 것입니다. 또 그것이 불세계 장엄이며 더 나아가 여래출현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신라 의상(625~702) 스님은 온 법계가 한 몸인 그러한 화엄법계를 하나의 그림[槃詩]으로 그려보였습니다.[畵作全法界一身之像 ]

‘화엄경’의 구성을 보면, 처음 부처님의 자내증(自內證) 경계가 펼쳐집니다. 이어서 중생이 청정한 신심으로 발심하여 보리심에 의한 보살도가 전개되고, 구경에 수행으로 도달한 깨달음의 세계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 과정이 선지식을 역참하는 선재동자의 해탈여정으로 다시 한 번 펼쳐지고 있습니다.

‘화엄경’의 수행은 차례차례 밟아 올라가는 항포(行布) 차제 수행과 한 자리에서 단박에 다 이루는 원융수행이 있습니다. 이중에 일승화엄의 특징은 원융수행이라 하겠습니다.

화엄보살행은 부연한다면, 깨달음을 향해가는 범부보살의 수행이기도 하고, 깨달은 보살마하살이 인연 따라 중생을 교화하는 방편행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궁극에는 그 모든 보살행이 바로 불세계의 장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모두 선재동자와 같은 구도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화엄경’은 지금 여기, 부처님 도량에서 우리 모두 참 행복을 누리게 해주는 거룩한 법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화엄경’을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부처님의 가피이고 인연 소치라고 하겠습니다.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붇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정각을 이루셨을 때 깨달으신 그 법을 그대로 설하신 경이라 일컫곤 합니다. 그런데 경전성립사적으로 보면 ‘화엄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반열반하신 후 500여 년경에 인도에서 문자화되었습니다.

초기 대승경전으로서 깨달은 보살들에 의해 범어로 편찬된 화엄부 경전은 중국에 전래되어 한문으로 번역이 이루어졌고, 화엄교가들에 의해 화엄교학이 발달되고 체계화되어 갔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화엄경’이 전래된 신라시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해왔습니다. 특히 ‘법성게’ ‘약찬게’ ‘보현행원품’ 등을 지송하고 ‘보현십원가’를 부르며 ‘화엄경’에 의한 수행을 이어왔습니다.

오늘날 ‘화엄성중’의 신중신앙 또한 한국불교 신행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이로써 ‘화엄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고 매우 친숙해지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화엄경’은 입산 출가할 때 가졌던 의문,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한 법문입니다. 출가 사찰인 운문사 전문강원을 거쳐 동학사 전문강원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강원시절 5년 동안에도 늘 마음공부하는 전문도량은 선원이라 간주하고, 강원졸업 후 선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갑자기 대학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화엄경’ 졸업반 때였습니다.

그 후로 줄곧 화엄법계에 몸담게 된 바로 그 결정은 ‘일체유심조’ 법문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약인욕료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구절에 생각이 딱 멎었습니다.

그때까지 붙잡고 고민했던 마음 문제는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이 마음이고 모든 존재가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이 부처님도 만들고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듭니다. 법계의 성품인 법성 역시 마음이고 법성을 관하는 것도 마음입니다. 불국토 장엄이 마음이고 성불의 길인 보살도가 마음 아님이 없습니다.

전국 사찰에서 매일 새벽에 하는 아침종송에서 ‘화엄경’ 제일게에 먼저 지심귀명례[南無] 하는 것은 제일게의 힘이 지옥을 타파하기 때문입니다. 지옥도 마음이 만들고 지옥을 타파하는 것도 일체유심조의 마음도리입니다.

이와 같이 경전에서도 마음도리를 밝혔는데 그동안 그 점을 너무 간과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어서, 마음에 대한 교리를 좀 더 공부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화엄경’을 화엄대해라고 부르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가 없을 만큼, ‘화엄경’은 방대하고 심오하여 그 가르침을 이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요. 1980년대 초에 대학원에서 화엄학을 전공으로 정한 나를 보고 어느 큰스님께서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겠구나”라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혹자는 강의를 들을 때는 알겠는데 돌아서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하기도 합니다. 마치 물속에서는 두 손바닥 가득 물을 담고 있는데 물 밖으로 나오면 손에 담은 물이 다 빠져 나가고 없는 것과 같다고요. 그렇지만 손에 물을 적신 공덕이 없지는 않으니, 오래 오래 즐겨 하다보면 어느 날 문득 편안히 법계에 노닐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이 영상은 수미불전연구원이 제공한 것으로 해주 스님이 수미정사(서울 종로구 백석동길 211)에서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되는 독송법회에서 법문한 내용입니다. 법보신문은 수미불전연구원이 촬영한 동영상을 '해주 스님의 화엄경 법석'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화엄경 독송법회 동참 문의는 02)395-5946

[1519호 / 2020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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