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용가 강수내 
3. 무용가 강수내 
  • 정혜진
  • 승인 2020.02.04 11:15
  • 호수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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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조선무용으로 통일 꿈꾸는 민족예술 계승자

재일동포 2세로 10살 때 도쿄 조선학교에서 조선무용 시작
1991년 북한 ‘2·16예술상’ 경연대회서 ‘도라지’로 최초 입상
재일조선인 감성에 기초한 민족적인 작품창작에 ‘탁월’ 평가
2007년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조선무용50년 북녘의 명무’ 공연 중 ‘금강선녀’. 이철주 문화기획자 제공
2007년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조선무용50년 북녘의 명무’ 공연 중 ‘금강선녀’. 이철주 문화기획자 제공

1991년은 북한 예술계에 기념비적인 해이다. 북한의 프로 무대예술가들이 스타로 가는 등용문이자 최고의 전문예술인 경연대회인 ‘2·16예술상’이 제정된 것이다. 여기서 재일조선인 예술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재일조선인무용가 강수내가 독무 부문에서 ‘도라지’로 열연해 최초로 입상한 것이다. 민족 수난의 역사 속에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조선여성상의 모습을 표현한 ‘도라지’로 입상한 성과와 그간의 공헌을 인정받아 강수내는 이듬해인 1992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 받았다.

강수내는 1961년 도쿄에서 태어난 2세 동포다. 그녀는 10살이 되던 해, 아다찌구 모토기에 위치한 도쿄조선제4초중급학교의 무용 소조(동아리)에서 조선무용을 시작하였다. 여기서 최승희의 아동무용기본을 기초로 각종 소도구춤과 무용소품 등을 익힌 후, 쥬조에 소재한 도쿄조선고급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무용소조에서 기량을 키웠다. 그리고 졸업 후 1979년 금강산가극단에 입단해 전문무용수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금강산가극단은 북한의 유일한 국립 해외예술단으로 일본 전역의 조선학교 무용소조 부원들의 최종목표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가극단의 전신은 ‘재일조선중앙예술단’으로 1955년에 18명의 단원으로 창단되었다. 단체 결성 초기에는 공연 장소도, 연습장도 없이 우리의 노래와 춤을 추며 공연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재일동포들의 귀국(북송) 사업으로 북한과 일본을 오가는 만경봉호가 일본에 입항하게 된 1959년 12월 이후부터 북측으로부터 민족악기와 무용의상, 소품을 비롯하여 무대예술 전반에 걸친 지원을 받으며 활동의 폭을 넓히게 되었다. 이후에 성악과 무용, 기악 등 무대예술 전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민족예술단체로 성장해 재일동포사회의 대표적인 예술단체로 지금에 이르렀다. 

금강산가극단의 발전사는 재일조선예술사이며 무용사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고 임추자와 리미남으로 시작되는 재일조선인무용가 제1세대들은 1960년대 초, 만경봉호를 통해 들어온 최승희의 ‘조선민족무용기본’ 영상과 교본을 시작으로 만경봉호 안에서 북한의 무용가들에게 작품을 전수받으며 조선무용을 배워나갔다. 북에서 보내온 책과 영상을 교본으로 조선학교에서 민족 춤을 배우고, 보내온 무용의상과 무용소품 등으로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민족예술을 배워 무대에 올린 그들의 공연은 보다 민족적이고 보다 조선적인 것을 갈구하던 재일조선인들에게 향수를 달래주었고 조선인으로 살아갈 희망을 주었다. 

‘젊은 무용가들도 조부모, 부모, 동포들이 걸어간 여정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한신교육투쟁을 시작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투쟁 속에서 얻은 민족의 마음, 용기 그리고 통일에 대한 희망. 민족예술을 이국에서 계승해 나간다는 강한 자부심이 바탕에 깔려있다.’ 

1, 2세대들이 어렵게 만들어준 민족예술을 후대에 전해주는 것을 의무이자 사명감처럼 느끼는 강수내는 ‘통신교육’ 등을 통해 북측 최고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백환영, 김락영, 홍정화, 한영호, 김영길, 백은수, 박룡학, 한은하 등으로부터 전습과 많은 작품을 사사 받았으며, 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1994년부터 금강산가극단 안무가로 성장했고, 1997년부터는 도쿄 조선대학교의 무용강사로도 활동하였다. 

강수내는 안무가로 활동하며 흔들림 없는 지향을 그녀의 춤과 공연기획에 반영하였다. 바로 ‘하나의 금수강산’가 그것. ‘하나의 금수강산’은 ‘한반도는 하나의 민족이며 언젠가 다시 자유롭게 오고 갔으면’ 하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 함경북도부터 제주도까지 조선의 많은 경승지를 노래와 춤으로 표현한 공연이다. 함경도를 표현한 독창과 무용 ‘조선팔경가’로 시작해 군무 ‘모란봉의 봄’(평안도), 군무 ‘봉산탈춤’(황해도), 금강산에 찾아온 선녀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금강산 선녀’(강원도), 가야금 독주 ‘옹헤야’(경상도), 혼성중무 ‘돌하르방과 해녀들’(제주도) 등이 연희 되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강수내의 국적은 ‘조선적’, 즉 국제법상의 무국적자이다. 한일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일본정부가 재일동포의 국적을 정리할 때 상당수의 동포는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적었다. 재일조선인들의 대부분은 경상도와 제주, 전라 등의 남한 출신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것은 기호에 불과하지만 남과 북이 하나가 되리라는 믿음과 소망을 담은 것이다. 그녀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아 불편함과 불리함을 무릅쓰고도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탄압과 차별이 만연한 일본 땅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주고 지속적인 원조와 지원을 이어오고 있는 북한을 ‘조국’으로, 자신의 원적과 뿌리가 남아있는 남한을 ‘고향’이라 부르고 있는 재일 ‘조선적’ 동포들의 염원을 담은 작품이 바로 그녀의 군무 대표작인 ‘대하’이다. 해외동포들 사이에서 제2의 아리랑으로 애창되고 있는 노래 ‘임진강’을 배경음악으로 하여 강줄기가 모여 임진강으로 흘러 통일의 바다로 이르는 과정이 유장함과 비장감이 넘치는 안무로 형상화되었다. 

“민족의 문화유산이나 역사로부터 소재나 모티브를 골라 조선무용을 발신하고 싶습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조선무용의 기본에 의거하면서 지금을 사는 동포들의 마음, 갈등, 희망, 생활을 형상해 내고자 합니다. 재일조선인들의 무용은 철저히 민족적인 것에 뿌리를 두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에서 조선무용을 지키고 발전시켜 가는 어려움이면서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강 안무가는 그래서 누구보다 재일조선인의 감성에 기초하면서 민족적인 작품의 창작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간의 탁월한 성과와 특히 춘향전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재형상해 큰 호평을 받은 댄스 뮤지컬 ‘춘향’을 계기로 2012년 북한 최고의 영예인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 받은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강수내의 마지막 꿈은 바로 왕래가 자유로운 통일된 조국의 무대에서 재일이 지켜온 조선민족무용 작품을 올리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 무소의 뿔처럼 걸어온 강수내는 이역의 땅에서 민족무용 계승의 한 길에서 우뚝 선 무용가로 민족무용사에 남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혜진 예연재 대표 yeyeonjae@gmail.com

 

[1523호 / 2020년 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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