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청법대중 – 보살대중과 화엄성중
4. 청법대중 – 보살대중과 화엄성중
  • 해주 스님
  • 승인 2020.02.24 17:15
  • 호수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엄경’ 39류중이 불법승 삼보를 옹호하는 모든 화엄성중 원조

보현보살을 위시한 한량없는 보살과 39류의 화엄성중 운집
청법대중은 각 종파 소의경전의 지위와 깊이 가름하는 기준
세주들은 사섭법의 수행 통해 해탈문을 얻어 신통으로 유희
화엄경권1 변상도. 고려목판.

이제 보리도량에 모인 청법 대중들을 만나보겠습니다. 경에서 중성취에 해당하는 청법대중들에 따라서 부처님의 설법내용이 다릅니다. 누가 듣는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가에 따라서 설법 내용의 깊이도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종파형성에 있어서 각 종파의 소의경전과 그에 따른 모든 경전의 지위를 가름하는데 청법대중들도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습니다.

‘화엄경’의 운집 대중들은 다른 경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습니다. ‘세주묘엄품’에서 지금까지 많은 장엄을 보았는데 청법 대중은 권속장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보현보살을 위시한 한량없는 보살들과 아울러 39류 화엄성중의 대표되는 상수대중들이 보리도량에 운집하는데, 각기 미진수 권속들과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주들은 다 해탈문을 성취하고 해탈경계를 펴고 있으므로 또한 해탈장엄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화엄성중은 지정각세간에 속하면서 또한 교화대상인 중생들과 함께하는 중생세간의 세주이기도 하고, 의보인 기세간을 맡아 보호하는 기세간의 세주이기도 합니다. 이 또한 세주묘엄이 삼세간 장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세간 장엄이란 거듭 말해서 일체가 다 장엄이라는 것입니다. 새벽종송이나 천도재에서 중생들을 악도로부터 건져내고 극락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며 읊는 게송도, 전체적으로 다 장엄염불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겠습니다.

운집대중의 품류를 보면 보살들과 39류 화엄성중을 합해서 40중인데, 보살 대중들을 동명중과 이명중으로 나누어 전체를 41중이라 헤아리기도 합니다. 또는 의보에서 출현한 보살대중을 합하여 41중으로 보기도 하고, 각기 다른 장엄구의 보살대중을 따로 넣어서 42중 혹은 그 이상의 부류로 계산하기도 합니다.

화엄회상의 대중들은 실은 이러한 ‘세주묘엄품’의 중성취에 해당하는 대중들만은 아닙니다. 설법회상의 장소와 회·품이 거듭될수록 시방세계의 새로운 대중들이 거듭거듭 모여와서, 마침내 온 법계의 일체 중생이 다 청법대중이 되기 때문입니다. 회차에 따라 새로 모인 대중들도 새로 모였다기보다 새로이 주목을 받은 대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이 반달처럼 둘이 아닌 은현자재(隱現自在)의 도리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때요? 청법대중일까요? 청법대중에 들 수 있을까요? 언제 대중에 합류하게 될까요? 

전문강원에서 예불시 소종이 끝나기 전에 법당 안에 들지 못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을 시 지각명단에 이름이 올려 졌다가 회수가 많아지면 정학으로 벌소임을 살게 되지요. 대중들을 위한 소임을 추가로 더 맡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화엄회상은 그럴 리 없겠지만 화엄대회에 참여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겁니다. 

이제 운집 대중들을 좀 가까이서 보기로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보현보살을 위시한 한량없는 보살마하살들이 부처님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보살들은 다 여래의 선근바다에서 함께 태어났으므로 동생중(同生衆)이라 부릅니다.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화엄경’의 양대보살로 불릴 만큼 그 비중이 대단합니다. 의상 스님은 화엄법계의 연기세계를 십불과 보현보살의 경계라고도 합니다.(법성게) 보현보살은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명호 풀이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보현의 ‘보(普)’는 두루하여 넓다는 뜻이고, ‘현(賢)’은 중생들의 근기를 알아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보현보살은 총상으로서 넓음을 통틀어 말한 것이고 동명의 9보살은 별상으로서 각기 다른 넓음이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덕이 법계에 충만하다는 덕보(德普)를 포함해서, 차례로 혜(慧), 행(行), 음성[音], 지(智), 마음[心], 깨달음[覺], 복(福), 모습(相) 등이 넓다는 것입니다. 이 9보가 다 보현보살의 모습입니다. 

돌림자 없이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이명(異名)의 10보살은 연을 따라 10바라밀을 구족한 보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간 중생들을 이익케 하는 행이 다름을 따라서 이름도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보살들은 어떤 인연으로 무슨 복이 있어서 함께 태어나서 시성정각하신 부처님 회상에 있을 수 있었을까요?

“이 모든 보살들은 지난 옛적에 다 비로자나여래와 함께 선근을 모아서 보살행을 닦았으니, 다 여래의 선근 바다에서 태어났다. 모든 바라밀이 다 이미 원만하였으며(중략) 언제나 얻은바 보현의 원력바다로써 일체 중생들이 지혜의 몸을 구족하게 하였으니, 이러한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다. (세주묘엄품1)”

보현보살을 비롯해서 수많은 보살들은 다 옛적에 비로자나여래와 함께 선근을 모아서 보살행을 닦았고, 바라밀이 다 원만하여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살들의 해탈 공덕세계가 다시 무진장 설해집니다. 

다음은 각기 다른 곳에서 태어나 이생중(異生衆)이라 불리는 39류의 화엄성중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화엄성중은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옹호하는 모든 화엄성중들의 원조라 할 수 있겠습니다. 

화엄성중이 신중 즉 신(神)의 무리라고 불리는 것은 그 존재들이 신령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자재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또는 신 가운데 장군이라 하여 신장(神將)이라고도 합니다. 다 호법신으로서 성스러운 무리라고 하여 성중(聖衆)이라고 부릅니다. 화엄회상에 운집한 대중들은 다 성스러운 분들이지만, 특히 39류중을 우리는 화엄성중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약찬게’에서는 이 화엄성중들을 ‘집금강신신중신’ 내지 ‘대자재왕불가설’이라 읊고 있습니다. 상수(上首)되는 화엄성중들이 39류 각각에 대개 10분씩 소개되고 있지만 부류에 따라 11분의 명호가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기 수많은 권속들과 함께여서 헤아릴 수 없이 많으므로 불가설이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는 화엄성중에게 예경하고 공양 올리는 등, 신중신앙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거의 전국 사찰에서 매월 화엄성중 정근을 하면서 신중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지심귀명례 진법계(盡法界) 허공계(虛空界) 화엄회상(華嚴會上) 상계(上界) 욕색제천중(欲色諸天衆)/ 지심귀명례 진법계 허공계 화엄회상 중계 팔부사왕중(八部四王衆)/ 지심귀명례 진법계 허공계 화엄회상 하계당처(下界當處) 일체 호법선신(護法善神) 영기등중(靈祇等衆)

“온 법계 허공계의 화엄회상중 상계의 욕계와 색계 모든 천중에게 지심귀명례 합니다./ 온 법계 허공계의 화엄회상중 중계의 팔부사왕중에게 지심귀명례합니다./ 온 법계 허공계의 화엄회상중 하계당처의 일체 호법선신 영기등중에게 지심귀명례 합니다.”

신중단에 올리는 예경문은 위와 같이 화엄회상의 39류 화엄성중을 상계와 중계와 하계의 셋으로 분류하여 차례로 예경하는 것입니다. 해당 화엄성중은 다음 <표2>와 같습니다.

<표2>에서 도시한 것처럼 ‘세주묘엄품’(5권)의 운집대중들은 언급되는 순서에 차이가 납니다. ‘화엄경’ 제1권에서는 보살대중이 먼저 보이고 다음에 집금강신, 대자재왕의 순서로 화엄성중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그 대중들이 제2권부터는 역으로 대자재왕, 집금강신의 해탈문과 게찬(偈讚)이 이어진 후, 제5권에서 보살대중들의 해탈경계가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보리도량에 운집한 세주들이 다 해탈문을 증득했고 해탈한 경계만큼 보이는 부처님 세계를 찬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비로자나여래께서 지난 옛적 많은 겁 동안 보살행을 닦으시어 사섭의 일[四攝事]로써 다 섭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대중들은 각기 온 방위를 따라서 세존을 친근하였는데, 이미 일체 번뇌와 마음의 때[心垢]와 남은 습기까지 다 여의어서 부처님을 보는데 아무런 걸림이 없었던 것입니다.[見佛無礙] 
사섭사는 사섭법 또는 사섭이라고도 하는데, 보시섭(布施攝)· 애어섭(愛語攝)· 이행섭(利行攝)· 동사섭(同事攝)입니다. 보시와 부드러운 말과 이롭게 하는 행과 함께함으로써 섭수하는 것입니다. ‘반시’의 사면 사각도 사섭법과 사무량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늘 하는 말, 늘 하는 행이 마음 수행과 이타행의 좋은 방편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주들은 사섭에 의해 한량없는 선근을 심어 온갖 복을 얻었으며 여래 공덕의 큰 바다에 들어가 부처님의 해탈문을 얻어서 신통으로 유희하였습니다. 이러한 세주들의 해탈경계를 대자재천왕 부터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526 / 2020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