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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연지대사 운서주굉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개미와 사람 생명엔 똑같이 불성 깃들어 있으니”

생명의 보살핌과 생명의 해방을 발원하면서 정토염불 수행 
불살생계 생명운동·거사운동·영성운동으로 전개한 선지식
선, 정토, 교학, 유교 조화 융합적 불교관 실천, 채식 생활화 

쌍계사와 통영지역의 불자들이 치어를 방생하면서 생명존중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쌍계사와 통영지역의 불자들이 치어를 방생하면서 생명존중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모든 생명은 크거나 작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그 자체로 소중하다. 앞으로는 생명의 시대다. 온 생명의 생명평화는 지구 환경을 살릴 뿐더러 인류가 공멸에 빠지는 것을 막는 중요한 시대의 화두다. 이 생명 살핌 및 생명 해방과 더불어 정토염불 수행을 거사들을 비롯한 많은 지역민들에게 일깨우고 생명운동, 거사운동, 일종의 영성운동으로 전개한 사람이 연지대사(蓮池大師) 운서주굉 스님이다. 그는 방생축원문과 왕생극락발원문을 남겼다.

운서 주굉(雲棲袾宏, 1532~1612)은 명나라 4대 고승 중 한 사람이다. 주굉은 절강성 인화현(人和縣) 출신으로 성은 심씨(沈氏)다. 그는 명문가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뜻대로 뛰어난 유생으로 자라난다. 생사사대(生死事大)가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출가에 뜻을 두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형을 대신해 맏아들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래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는다. 불행하게도 아내도 자식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슬픔이 깊었다. 속절없는 무상감이 가슴을 후볐다. 하지만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모의 권유로 다시 재혼한다. 부모님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부인과 더불어 생사를 해결하기 위해 36세에 출가한다. 소경사(昭慶寺)에서 구족계를 받는다. 이후 그는 수년간 단출하게 표주박 하나와 지팡이만 들고 선지식을 찾아 수행하며 행각하던 중 법고소리를 듣고 홀연히 깨닫는다. 

1571년 37살 되던 해 주굉은 항저우[杭州] 운서산을 찾아든다. 그곳에서 그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재를 지내 호랑이로부터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호환을 없애고 가뭄에는 비를 내리게 해 마을을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를 마을의 복전으로 모시고 그를 위해 자그마한 절을 짓는다. 운서사(雲棲寺)다.  

주굉은 선, 정토, 교학, 유교가 어우러진 융합적인 불교관을 전개했다. 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경전의 가르침으로 인증을 받아야 강조했다. 그가 참선 납자들을 위해 남긴 책이 ‘선관책진(禪關策進)’이다. 이 책은 간화선, 그 선의 관문을 뚫고 나가기 위해 수행자의 비장한 마음가짐을 독려하고 그  수행방법을 밝힌 선 입문서라 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염화두나 자기를 돌이켜보는 회광반조 수행법 또한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는 선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염불수행과 생명 해방 신행결사운동에 더 역점을 기울인다. 특히 유학자들인 거사들을 중심으로 방생결사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를 위해 그는 1580년에 상방회(上放會)를 조직하고 상방사와 방생사(放生社) 등에서 결사 모임을 갖는다. 여기에는 현의 주지사를 포함한 지방 관료 100여 명의 유교 엘리트 불자들뿐만 아니라 수만 명의 백성들이 호응한다. 이 당시는 거사불교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다. 이들 거사들과 지역민들은 각 소모임의 좌장을 중심으로 집에서 수행하다가 사찰에서 한달에 한번 모임을 통해 불전에 공양을 올리고 염불하며, 수행담을 나누었다. 일년에 한번 혹은 계절마다 방생을 시행했다. 이들이 방생에 역점을 둔 이유는 지도자 주굉이 생명의 중요성을 역설했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이든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주굉의 저서 ‘죽창수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생명 있는 것은 모두 불성이 있다는 말씀에 따르면, 개미나 사람이 꼭 같은 존재다. 어찌 낫고 못하고를 말할 수 있겠는가?”(연관 스님, ‘죽창수필’)  

주굉은 또한 채식의 중요성을 말한다. 아픈 사람이나 채식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면, 한달에 한번 또는 하루에 한번 채식을 권한다. 정 고기를 먹는다면 삼정육(三淨肉)을 먹으며 불살생계를 지키라고 했다. 결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수행일지격인 공과표(功過表)를 기록하게 한다. 아픈 사람을 길에서 집으로 돌아가게 도움을 주면 20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주어 기르면 100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방생법회에 쓰인 축원문이 방생축원(放生祝願)이다. 그 일부를 소개해 본다.

“제가 오늘 부처님 따라 어둠을 밝히고자 많지 않은 양이오나 정성다해 방생하였사오니 / 이 공덕으로 죄업은 소멸되고 원결은 풀리오며 착한 뿌리 나날이 자라나서 몸과 마음 평안하고 바른 생각 분명하여 / …<중략>… 제가 방생한 모든 생명과 시방세계 모든 유정 모두 함께 해탈하여 위없는 도 이루기를 바라옵니다.”

참가자들은 이렇게 발원한 이후 천념, 만념으로 염불하였다. 중요한 것은 염불수행이었다. 한결같은 염불삼매를 통해 현생에서는 안락하게 살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으며 죽어서는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와 중생을 구제한다. 이러한 내용이 ‘연지대사 왕생극락 발원문’에 잘 소개되어 있다. 그 일부를 중요한 맥락만 살펴서 소개해 본다.

“서방정토 안락세계 중생 맞아 이끄시는 아미타불 대도사께 머리숙여 예배하며 / 제가이제 극락세계 왕생하기 원하오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섭수하여 주옵소서 / 삼매 속에 깨어 있건 꿈속이건 잠들 때건 아미타불 금빛 상호 뵈옵기를 바라오며  / 아미타불 장엄국토 언제라도 다니오매  저희 이마 만져주사 감로수  뿌려 줄제 / 업장은 소멸되고 선근은 자라나며 번뇌는 없어지고 무명은 깨어져서 / 원각의 묘한 마음 뚜렷하게 깨달아서 상적광토 항상 앞에 나타나게 하지이다

이내 목숨 마칠 적에 떠날 시간 미리 알아 여러 가지 병고 액난 이 몸에서 떠나가고 / 마음속의 온갖 번뇌 씻은 듯이 사라지며 몸과 마음 경쾌하고 바른 생각 분명하여 / 선정 속에 들어가듯 편안하게 몸 버릴 때 아미타 부처님이 관음 세지 두 보살과 / 여러 성현 함께 와서 광명 놓아 맞으시며 손을 내어 끌어 주사 높고 넓은 누각들과 / 아름다운 깃발들과 맑은 향기 천상음악 거룩하온 서방정토 눈 앞 환히 드러나서 / 보고 듣는 모든 중생 기뻐하고 감탄하여 위 없는 보리마음 모두 내게 하사이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27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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