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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김명국의 ‘박쥐 날리는 신선’

기자명 손태호

생태계 교란 후폭풍은 인간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농담이 강한 필선만으로 그린 김명국의 전형적인 작품
옛 동아시아서 박쥐는 군자·복 등 긍정적 이미지 가져
현재 사태는 인간이 자연 생태계 교란해서 치르는 대가

김명국 作 ‘박쥐를 날리는 신선’, 34×25cm, 지본수묵, 17세기, 북한 평양박물관.
김명국 作 ‘박쥐를 날리는 신선’, 34×25cm, 지본수묵, 17세기, 북한 평양박물관.

여전히 코로나19 전염병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비교적 잘 통제되던 우리나라도 대구의 한 종교단체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산되고 말았습니다. 전염병 발원지라 알려진 중국 후베이 우한시는 도시 자체가 완전 마비상태입니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우한 박쥐연구소 유출설, 야생동물 매매시장 유출설 등 여러 확인되지 않은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확실한 점은 이 세균이 박쥐로부터 전파되었다는 점입니다. 

박쥐가 전염병의 근원으로 밝혀지면서 박쥐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나빠졌지만 옛날 중국을 비롯한 조선에서도 박쥐의 이미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박쥐가 언급된 것은 총 9건으로 조선 초 성종 18년 문시 임사홍(任士洪, 1445~1506)은 편복을 군자에 비유했고, 중종 21년에는 진사 최필성이 아버지 병환 치유를 위해 박쥐를 구하려 했으나 겨울이라 구하지 못하여 대성통곡을 하자 박쥐가 스스로 날아와 약이 되어 병을 치유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가 많았습니다. 

또한 박쥐 복(蝠)과 복 복(福)은 동음이의어로 복을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박쥐의 긍정적 이미지는 그림 소재로도 등장하여 고구려 수산리 고분벽화(평안남도 남포, 5세기 후반) 속 묘실 주인공의 일산(日傘)에 박쥐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뒤로 고려시대 부장품에 박쥐 단추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회화작품으로는 한참 뒤인 조선 중기 화가 김명국이 그린 ‘박쥐를 날리는 신선’에 등장합니다. 

그림은 매우 단순합니다. 왼쪽 아래쪽 바닥에 앉은 한명의 인물과 우측 상단에 박쥐 한 마리가 전부입니다. 등을 보이고 앉은 인물은 머리가 더벅머리이고 옷은 소매가 넓은 헐렁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옷은 마치 비를 맞은 듯 흥건하며 왼쪽에 호리병 하나가 있습니다. 농담을 달리한 붓질 몇 번으로 의복을 잘 표현했고 등을 보이고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함을 전해줍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고 등만 보이는 인물 표현은 감상자에게 단절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이 인물에 대한 궁금함과 뭔가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인물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화가는 그림 왼쪽에 연담(蓮潭)이라 적었으니 조선 중기 도화서 화원인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이 확실합니다. 김명국은 조선통신사로 두 차례나 다녀온 뛰어난 화가입니다. 보통 화원은 조선통신사로 딱 한번만 다녀오는데 일본의 강력한 요청으로 다시 통신사를 다녀올 만큼  인기가 높았습니다. 일본에서 그린 작품들은 대부분 채색 없이 선 만을 이용하여 고승이나 신선을 그린 선화도(禪畫圖)를 많이 그렸는데 유명한 ‘달마도’도 그 때 그린 작품입니다. 위 작품도 그 시기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선적인 느낌과 특유의 농담이 강한 필선만으로 그린 김명국의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이 인물은 누구일까요? 민머리가 아니니 스님은 아닐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인기 있는 도교 신선 여덟 분을 팔신선으로 지칭하며 문학과 그림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팔신선은 각자 특징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여동빈은 칼, 동방삭은 복숭아, 두건을 쓴 종리권, 종이와 붓을 든 문창, 외뿔소를 타고 ‘도덕경’을 들면 노자 등 입니다. 그 중에서 장과로라는 신선은 박쥐의 정령으로 항주(恒州)에 은거한 검은 머리와 흰 이빨의 신선입니다. 그러고 보니 인물과 박쥐사이에 부채꼴 모양의 박쥐의 푸른 비행 흔적이 있어 마치 인물과 박쥐가 하나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인물이 장과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그 옆에 호리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호리병을 자세히 보시면 입구에서 가는 선이 피어오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색도 부채꼴 박쥐 비행흔과 같은 색입니다. 따라서 박쥐는 바로 호리병에서 나온 것입니다. 팔신선 중에서 호리병을 꼭 소지하는 인물은 이철괴(李鐵拐)입니다. 이철괴는 원래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의 젊은이였는데 육신에서 영혼을 이탈시켜 하늘을 돌아다닐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하루는 노자를 만나러 가면서 제자에게 7일간 자신의 혼이 돌아오지 않으면 몸을 불사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는 7일 정오까지 기다리다 자신의 노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후만 기다리면 되는데, 제자는 모친이 걱정되어 이철괴의 육신을 태워버리고 모친에게 가게 됩니다. 이후 돌아온 이철괴는 들어갈 몸이 없어지자 어쩔 수 없이 굶어 죽은 거지의 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이철괴는 그림처럼 남루한 거지의 모습으로 살았는데 그림에서도 역시 남루한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그림에서 박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신선의 화신으로 인간이 갖지 못한 날아다니는 능력을 상징합니다. 이런 관념은 우리나라보다 도교를 숭배한 중국이 휠씬 강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박쥐와 복이 동음 때문만이 아니라 박쥐를 ‘독왕’으로 생각하여 박쥐를 먹으면 만독을 이길 수 있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또 번식이 뛰어나므로 박쥐를 먹으면 자식을 많이 낳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19 전염병도 중국에서 박쥐를 먹고 매매하기 위해 가까이 하면서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밤과 어둠속에서 생활하는 습성과 쥐와 새의 중간적 생김새로 교활하고 이중적인 이미지로도 많이 표현되었습니다.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의 ‘순오지(旬五志)’에 기록된 봉황의 잔치에는 길짐승이라하여 가지 않고 기린의 잔치에는 날짐승이라하여 가지 않은 박쥐가 모든 짐승에게 미움을 받아 결국 밤에만 밖에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도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염병의 원흉이 박쥐라는 주장은 무리가 있습니다. 코로나19 병원균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아니라 아마 아주 오래전 원래부터 대부분의 박쥐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박쥐의 생태계를 침범하고 괴롭히면서 그 균이 다른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옮겨져 큰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실제 박쥐는 해충들을 먹이로 삼기에 인간에게 해로운 동물이 아닙니다. 이처럼 인간에 의한 자연 생태계 교란의 후폭풍은 인간에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아무쪼록 우리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가길 빌어봅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28호 / 2020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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