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중국의 바깥채비 응문불사(應門佛事) 음악
7. 중국의 바깥채비 응문불사(應門佛事) 음악
  • 윤소희 교수
  • 승인 2020.03.31 17:21
  • 호수 153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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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응문불사’는 한국·일본 불교음악과 달리 기악이 중심

응문불사는 돈황 벽화에서도 발견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해 
세련되고 우아한 경음악과 토속적 성격 강한 겁음악으로 대별  
경음악의 중심 지후아스에선 혹독한 훈련과정 통해 예승 양성
지후아스 여래전.

자금성 인근에 ‘황실 불교음악을 연주하는 사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합천에서 해인사 찾듯 “지후아스(智化寺)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으니 그때가 1999년 무렵이다. 관리인이며 안내원 모두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016년 베이징에서 불교음악 세미나가 열려 지후아스를 비롯해 하베이(河北雄县音乐会), 시안(西安古樂), 징두(京都北韻禪樂社) 등의 연주를 보며 지후아스 찾기에 헛걸음하였던 옛 일이 떠올랐다. 그사이 인터넷 지도라는 것이 생겨 검색해 보니 자금성 건너편에 지후아스가 떴다. 즉시 택시를 타고 일대를 몇 바퀴 돌아도 보이지 않아 또 헛걸음하였다. 다음날 이 방면 전문가를 대동하여 지후아스에 당도해보니 대문 앞에 주차해 놓은 차들 때문에 문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왜소한(?) 곳이었다.

지후아스는 명나라 정통8년(正统八年, 1443) 왕젠시(司礼监太监王振舍)가 개인 사원으로 지은 데서 출발한 응수승(應酬僧) 사찰이다. 민가에 둘러싸여 눈에 띄지 않던 외양과 달리 안으로 들어서니 마당 양편에 세워진 고루와 종루가 예사롭지 않았다. 뒤로 지화문, 다시 들어서니 장전(藏殿), 대지전(大智殿), 또 들어가니 수백년 된 고목과 비석 뒤로 2층 전각의 1층은 여래전, 2층은 만불각, 또 다시 들어가니 대비당으로, 4중의 마당이 겹겹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담한 사원이지만 치밀한 도량구조와 역사를 간직한 조각들이 있어 건축전문가들이 이 사찰에 매료되었던 이유를 알만하였다. 

주차된 차들로 가득한 지후아스 입구.

법당 옆 지화서원(智化書院)에는 옛 스님들이 쓰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악기들이었다. 옆 건물에는 이곳 응수승들의 음악을 보존한 아카이브가 있었다. 명나라 황제의 총애를 받던 이 사찰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1909년 청나라 황실의 폐조흥학령(廢朝興學令)부터였고,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다 1930년대 중국영조학사(中國營造學社)가 지후아스의 건축예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1950년대에는 중앙음악학원 고대음악연구실에서 이들의 음악을 연구하면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1953년 지후아스에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예승이 19명 정도 있었고, 그 중에 86세의 노승도 있었다. 1987년에는 지후아스 예승들로 구성된 북경음악단이 창립되어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각지를 순회하였다.

이즈음 한국의 범패에 대해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 불교음악의 차이는 기악음악의 유무에 있다. 한국의 재장에도 취타대와 악사들이 합류하여 연주를 하기는 하나, 이는 범패와 무관한 일반음악들을 활용하는 것이지 불교음악은 아니다. 그에 비해 중국은 사원에서 스님들이 법기(法器)만을 사용하는 ‘선문불사(禪門佛事)’와 시주 집에서 응수승 혹은 민간의 취고수(吹鼓手)가 주제하며 법기와 악기도 사용하는 ‘응문불사(應門佛事)’ 두 가지가 있다.

선문불사는 경전·의례문·기도문의 율조, 즉 ‘범패’의 영역이다. 범패는 어떤 특정 음고를 의도적으로 내는 것이 아니므로 무위적 율조이다. 설사 고산지역의 민속적 율조가 담긴 구산디아오(高山調)라 하더라도 기교적인 장단을 넣거나 화려한 선율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범패로써 진행되는 의례와 신행에는 음고가 있는 어떠한 악기도 쓰지 않는다. 이는 특정 음고를 의식함으로서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왜냐면 범패는 경전을 수지하고, 앉고, 서고, 먹고, 잘 때의 승가 예범에서 나온 자연발생적 율조이지 음악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범패’를 음악이나 문화재로 생각하는 것은 근본부터 재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지후아스 장전(藏殿)의 장경주(藏經橱).

이에 비해 음악의 범주에 드는 응문불사는 여러 가지 악기를 편성하여 연행한다. 이러한 전통은 중국 불교역사에서 일찍부터 시작되어 돈황의 벽화나 기타 중국의 불화에서도 발견된다. 이들 그림을 보면 관(管)·적(笛)·생(笙)에 비파와 운라, 타악기를 더한 불악단이 대유행하였던 면모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리하여 중국의 불교음악 연구자 중에는 불교음악에 쓰인 악기 편성과 음조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응문불사 음악은 당·송·명대에 절정을 이루다 청대부터 쇠락하여 문화혁명기 때 거의 전멸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다 근세기 들어 몇몇 불악단이 복구되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목되는 사찰로 흐어난셩(河南省)의 따상구어스(大相國寺), 베이징의 지후아스(智化寺)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황실과 직결되는 사찰이다. 

중국 최초의 황실사원으로 알려지고 있는 따상구어스는 555년 위(魏)나라의 도성이자 신링군(信陵君)의 주거지에서 시작되었다. 수년간의 전쟁 동안 신링 황제와 함께 파란을 겪었지만 위정자는 바뀌어도 음악은 살아남아 당나라 초기에는 정저우 시마 정징의(歙州司馬鄭景)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들은 황제의 순행(巡幸)을 따랐고, 의례에는 고승(高僧)·고관·문인·사절들이 중심에 있어 중국의 전설, 소설, 연극에는 빠지지 않고 따상구어스가 등장한다. 북송시기에는 이 사원을 둘러싸고 문화·상업·무역이 성황을 이루었다. 이 무렵 따상구어스의 합주는 규모가 거대하고 음세가 웅장해 천하제일로 꼽혔다. 그러나 문화혁명을 맞아 단절되었다가 2002년 심광(心光) 대화상에 의해 복원되어 몇차례 한국에서도 연주되었다. 

북경에는 ‘단자사가 먼저요, 북경성은 그 뒤에 생겼다(先有澶柘寺 後有北京城)’는 노래가 있다. 이때 언급되는 단자사는 진나라(晉, BC 265~AD 220) 때 생긴 사원이다. 당나라 때에 창건된 민충사(憫忠寺, 현 법원사), 홍업사(洪業寺, 현 천녕사), 서산(西山)의 도솔사(兜率寺, 현 와불사) 등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명헌종실록(明憲宗實錄)’에는 “성화(城化)십칠년에 조정에서 조성한 사원이 639개에 달했다”고 적고 있다. 이후에도 사원은 계속 생겨나 서산에는 한 절에서 마주 보면 다른 절이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사원들 가운데 지후아스는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은 왜소한 사찰이다.

지후아스에서 연주하고 있는 경음악단(京音樂團).

북경의 응문불사는 시내의 경음악(京音樂)과 교외 농촌의 겁음악(怯音樂)의 두 갈래가 있다. 경음악은 세련되고 우아한 악풍이었던데 반해, 겁음악은 농촌 풍속과 사투리 억양이 반영된 토속적 성격이 강했다. 겁음악이라는 말에는 ‘촌스러운 시골음악’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어 이 말에 거부 반응을 보여 스스로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러한 두 부류의 응문불사 음악 중에 경음악은 동성(東城)의 지후아스, 겁음악은 경서(京西)의 장광취엔위에셔(張廣泉樂社)가 중심에 있었다. 

응문불사는 한국의 천도재와 같은 방염구(放焰口)를 중심으로 경문 낭송과 악곡연주를 하였다. 응수승을 초청한 주가(主家)는 보다 많은 악승과 악곡을 연주하여 위세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응문불사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범패 가락을 기악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해 지후아스는 ‘금당월(錦堂月)’ ‘수정당(水晶堂)’ ‘금취병(錦翠屛)’ ‘금자경(金字經)’ ‘오성불(五聲佛)’ ‘감동산(撼動山)’과 같은 악곡을 연달아 연주할 정도로 레퍼토리가 다양했다. 이에 비해 겁음악은 단순한 레퍼토리로 분위기를 띄우는 정도였다. 응문불사의 배경에는 혼례의 홍사(紅事)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백사(白事)도 새 생명이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홍백희사(紅白喜事)의 인생관이 있어 상가집에서 흥을 돋우었던 풍습이 있었다.

흐어난셩(河南省) 따상구어스의 불악단.

지후아스의 예승 양성은 매우 엄격하여 12세 미만의 어린이만 지원할 수 있었고, 입단 후에는 7년 동안의 엄격한 훈련과정을 거쳤다. 그들은 사시사철 어떠한 경우에도 정확한 발음과 음조로 4~5시간 동안 매우 좁은 의자에 앉아서 연주할 수 있도록 가혹한 체벌이 가해졌다. 이에 비해 장광취엔위에셔(張廣泉樂社)에서는 다양한 연령과 신분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었고, 그 문호는 장애인에게도 열려있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장광취엔의 은덕을 입은 장애인 악사들이 그를 추모하며 제사를 지낸다. 문화혁명으로 설 곳을 잃은 지후아스 스님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기예(技藝)를 사원의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아 연명하였고 겁음악 악사들은 사회 하층에서 은밀한 활동을 이어오다 20세기 들어 활동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필자가 외국의 불교음악을 조사하러 다닌 것은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전통 단절로 인해 설명과 실제 음악이 잘 연결되지 않는 우리네 범패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간 7회에 걸쳐 한·중·일 범패 현황을 조명해 보았다. 그 결과 천도재를 주된 절차로 삼는 한국의 재의식과 바깥채비 활동은 중국의 응문불사와 연결되는 점이 많다. 순수한 사원의례를 하는 승단이 범패로써 외부 활동을 하는 곳은 한·중·일 중에서 한국뿐이며, 티베트에도 없는 일이다. 그 실상을 다음 회부터 소개되는 티베트 불교음악을 통해 좀 더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31호 / 2020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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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라 2020-04-29 21:30:59
응문불사라는 낮선 이름을 보고 읽었네요.
우리나라 바깥채비는 의례범패와 응수승이 결합된 것 같습니다.

다라니 2020-04-01 13:46:24
혼자서 나는 흰색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모르다가
빨간색 파란색 갖다대니 저절로 흰색이 보여
우리네 의식과 범패 불교전통의 모습을 다른 거울을 통해 비춰 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