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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일본 조동종의 개조 도겐선사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일체중생 고통 먼저 건네줄 때 보리심 발하니”

가마쿠라 시대 태어나 9세 때 구사론에 감동할 만큼 영특
24세 송 유학, 버섯 말리는 일에도 충실한 스님에 큰 영향
불자 알아듣기 쉬운말로 법문 “나 아닌 너 먼저 배려하라”

일본 조동종 도겐선사는 일체중생의 고통을 먼너 건넬 때 보리심이 발현한다고 설하셨다. 
일본 조동종 도겐선사는 일체중생의 고통을 먼너 건넬 때 보리심이 발현한다고 설하셨다. 

“불도(佛道)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것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자기를 잊는다는 것은 만법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다. 만법에 증명된다는 것은 자신의 신심(身心) 및 타인의 신심을 탈락(脫落)하는 것이다.”(‘정법안장’) 

위 글은 일본 조동선(曹洞禪)의 개조(開祖) 도겐(道元) 선사의 선어다. 불도를 배우는 불자로서의 삶이란 자기를 잊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나와 타자의 몸과 마음이 무아로 비워져 자기를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벗어나고 자신의 마음을 잊는 것이다. 나로부터의 해방이다. 그것은 달리 말해서 모든 만물과 하나가 되어 그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기도 하며 진정한 자기의 회복이다. 그러기에 타자를 향한 자비의 실천은 나의 한계를 벗어버리고 부처로 사는 삶이요 행이기도 하다.  

도겐(道元, 1200~1253)은 가마쿠라 시대에 교토에서 태어났다. 그는 9세 때 ‘구사론(俱舍論)’을 읽고 감동을 받을 정도로 영특했다. 신동(神童)이었다. 하지만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3세 때 아버지를, 8세 때 어머니를 잃는 무상을 맛본다. 13세에 천태종으로 출가한다. 평소 어머니가 그에게 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상한지를 말해 주었고 절대로 권력 가까이 가지 말고 출가할 것을 권했기 때문이다. 

도겐은 모든 중생이 이미 부처라고 하는데 왜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지 의구심을 갖는다. 무려 10여년 동안 이와 씨름했지만 해결할 수 없었다. 의구심을 풀고자 그는 24세에 송나라로 구도의 길에 오른다. 그 구도의 길에서 먹고 자는 일 전반을 담당하는 전좌(典座) 소임의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은 61세의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버섯을 말리는 자신의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고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하는 삶, 바로 그것이 수행이며 거기에 진리가 남김없이 드러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체험은 도겐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가 품었던 수행의 의문은 스승인 천동여정(天童如淨, 1163-1228)을 만나면서 해소된다. 도겐은 그로부터 참선은 신심탈락(身心脫落)이라는 말을 듣고 깨닫는다. 너 자신을 한계 짓는 몸과 마음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본래 면목, 그 툭 터진 유연한 자기가 드러난다. 그 길은 바로 지관타좌(只管打坐)를 통해 이루어진다. 오로지 좌선할 뿐이다. 좌선하며 앉아있는 것이 부처와 조사의 모습이며 깨달음의 실현이다. 좌선은 행불(行佛)의 과정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몸과 마음을 탈락시키는 일이다. 그러한 탈락은 고요히 앉아서 자신을 비추어 보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몸으로 침묵하고 마음으로 어떤 의도하는 바 없이 알아차린다. 그래서 묵조(默照)다. 묵조선이다. 이 묵조선을 널리 펼치기 위해 그는 ‘보권좌선의(普勸坐禪儀)’를 쓴다.

좌선의 길만이 정법이다. 그 정법을 보는 안목, 그 선의 생명인 정법안장(正法眼藏)은 부처님이 가섭을 통해 전한 법이고 달마, 혜능, 여정을 통해서 도겐 자신에게 전해진 것이다. 누구나 이 정법을 받아들여야 무상을 벗어나 부처로서 이 자리에서 현성(現成)한다. 나 자신이 바로 부처의 생명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선에 대한 가르침을 펴낸 책이 그의 주저 ‘정법안장’(전 95권)이다. 

좌선 속에서는 모든 중생을 잊는 법이 없다. 모든 생명을 자신 생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모든 중생이 정법과 함께 하기를 발원한다. 

“원컨대. 저는 일체 중생과 더불어 금생으로부터 세세생생 토록 정법을 들을 수 있길 바라옵니다. 정법을 들을 때, 정법을 믿고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정법을 바로 알 때 세상 법을 버리고 불법을 수지하오리니 마침내 대지의 중생들과 함께 불도 이루리다.<…중략…>
공덕 법문이 다함없는 법계에 충만하사 저희들에게 자비 베풀어 지이다. 제불조사님도 예전에는 우리 같은 범부였기에, 우리들도 수행하며 제불조사되리다. 제불조사님을 우러르면 하나의 불조(佛祖)이고, 발심을 그윽이 살피면 하나의 발심이어라. 남을 향한 연민이 칠통팔달(七通八達)하게 되리니, 득이 되리다. 낙이 되리라.”

‘정법안장’으로부터 재가자들이 쉽게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도록 추려내어 저술한 책이 ‘수증의(修證義)’다. 그 내용은 삶의 무상에 대한 통찰과 발심, 참회, 수계, 타자를 이롭게 하는 발원이생(發願利生),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보은 행(行持報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 내가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이다. 그러나 이 삶은 유한하고 무상하다. 발심하고 참회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그 청정한 마음으로 바르게 살면 우리는 부처님 마음을 회복한다고 도겐은 말한다.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자신보다 먼저 일체중생을 고통에서 건네주겠노라고 발원하며 사는 것이다. 나보다도 남의 행복을 먼저 기원하는 그 기도의 힘은 자신의 마음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나’를 내세우면 걸리기 마련이다. ‘나’를 강조하면 욕심이 앞서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만다. 그래서 나를 내려놓고 너를 먼저 배려하며 불법에 따라 살 때 법은 내 속에서 살아 숨 쉰다.

“네 마음으로 좋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반드시 좋은 게 아니다. 그러므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네 마음을 버리고 오로지 불법을 따라가라(‘정법안장수문기(隨聞記’).” 

정법과 무상보리를 만난 보은의 길은 다른데 있지 않다. 우리가 발보리심 하여 불심으로 살며 보살도를 행할 때, 그 마음 그대로 부처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다. 그것은 달리 말해서 일상을 좌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불조사의 행이요 나의 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불조사와 나는 하나의 부처다. 제불조사의 발심과 나의 발심은 하나의 발심이다. 그리하여 이 하루의 삶은 존중해야 할 목숨이며, 존중해야 하는 몸이다. 단 그 자신의 몸과 마음이 탈락하여 진정한 주체로 회복될 때 그러하다. 그것은 생사 속에서 생사 그대로 영원을 사는 삶이다. 지금 여기, 역사와 시간 속에서 역사와 시간을 벗어나면서 그것에 즉하여 사는 삶이다. 그것은 역사와 시간을 성숙시키는 보살의 삶이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33호 / 2020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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