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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염불의 간절함

지옥 고통과 죽음 떠올리면 간절해진다

잡념이 눈처럼 흩날리는 것은 정념 없어 나타나는 현상
이미 죽어 망념 필요치 않다고 염할 수 있으면 큰 이익
마음으로 항상 진심을 비춰 망념에 따라 구르지 않아야

인광대사는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며 간절히 염불하라고 말한다. 죄인을 눕혀놓고 큼직한 쇠못을 몸에 박는 ‘철상지옥도’.
인광대사는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며 간절히 염불하라고 말한다. 죄인을 눕혀놓고 큼직한 쇠못을 몸에 박는 ‘철상지옥도’.

제97칙 :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며 간절히 염불하라.
염불하여 마음이 귀일하지 못함은 생사심이 간절하지 않아서이다. 만약 늘 자신이 홍수에 떠내려가고 큰 불에 타서 죽는다고 여기고, 또한 장차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지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절로 귀일하니, 달리 묘법을 구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지옥고를 생각하여 보리심을 내라”고 누차 말씀하셨다. 이는 대각세존께서 가장 절실하게 하신 법문이다. 가엾게도 세상 사람은 이를 진지하게 사량하지 않으려 한다. 지옥의 고통은 물불의 비참함보다 무량무변이나 심하다. 물에 떠내려가고 불에 탄다 생각하면 모골이 오싹하지만 지옥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말할 것이 없다. 지옥고에서 일체 괴로운 일을 직접 눈으로 보면 저도 모르게 모골이 오싹할 것이다.

제98칙 : 오직 삼악도에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으로 분발하여 염불하라.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꽉 지닐 때 잡념이 눈처럼 흩날리면 이는 아는 것이 많고 견해가 많아서 마음에 정념(正念)이 없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자면 다만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아픈 마음에 장차 목숨이 다하려 할 때 오직 삼악도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면 스스로 분발하여 염불하고 다른 생각이 완전히 일어나지 않아 오래 지나면 저절로 청정해질 수 있으리라.

제99칙 : 죽을 사(死) 자를 이마 위에 붙이고 염불하라.
오늘 다행히 정토법문을 들었으니, 어찌 많지 않은 세월을 감히 재물이익 유흥여색에 빠져 거의 다 소모하고 자신이 오래도록 헛되이 살다가 헛되이 죽어서 오래도록 육도에 빠져 벗어날 기약이 없길 구하려는가? 모름지기 곧장 죽을 사(死) 자를 자신의 이마 위에 붙여야 할 것이다. 무릇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될 경계가 현전하거든, 내가 죽은 후 가마솥 용광로 지옥에 떨어지는 전주이거나 나방이 불꽃에 날아들어 스스로 몸이 타 죽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반면 자기의 본분에서 해야 할 일은 생사고에서 빠져나갈 자비의 배인 줄로 알아야 한다. 그러면 어진 일을 앞에 두고 굳이 양보하거나, 옳은 일을 보고 하지 않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렇다면 속진 경계가 곧장 도에 들어가는 인연이 될 수 있거늘 설마 속진의 인연을 물리치고 끊어버려야 도를 닦을 수 있단 말인가?

제100칙 : 한마디 부처님 명호를 제외하고서는 일념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이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으로 들어갈 수 없고, 삶을 끝마치고 죽음을 벗어날 수 없는 원인은 모두 망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금 염불할 때 곧 자신은 죽었지만 아직 왕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염념마다 모든 세간 일체 정념을 전부 도외시하라. 한마디 부처님 명호를 제외하고서는 일념을 얻을 수 없다. 왜 이와 같이 할 수 있는가? 내가 이미 죽어서 모든 망념이 다 필요치 않다. 이렇게 염할 수 있으면 반드시 큰 이익이 있다.

제101칙 : 마음속으로 항상 진심을 비추어서 망념을 따라 구르지 말라.
처음 염불을 배우고 아직 삼매를 직접 증득하지 못하였을 때 누가 망념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귀중한 것은 마음속으로 항상 진심을 비추어서 망념을 따라 구르지 않는 것이다. 비유컨대 두 군대가 진을 치고 맞서서 자신의 진영을 굳게 지키고, 적이 조금도 침범하지 못하게 한다. 적이 공격을 개시하면 적을 맞아 공격한다. 반드시 정각(正覺)의 병사를 써서 적을 사면에서 포위하여야 한다. 그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 없고, 지옥에 들어가는 문이 없게 하여 스스로 공포를 느끼게 하고 치명적인 재난을 얻을까 두렵게 하면 연이어 투항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한 수는 군대 장수가 혼침에 빠지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며, 항상 성성적적 지킬 뿐이다. 만약 혼침하고 게으르면 적을 소멸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에게 소멸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염불하는 사람이 염불로써 마음을 거두어들일 줄 모르면 생각할수록 망상이 생긴다. 마음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망념이 점차 경미해지고 무(無)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도를 배움은 마치 금계의 성을 지키는 것처럼 낮에 육근의 적이 방어하여 밤에 성성적적 지켜서 군대 장수를 부축하고 명령하여 방패와 창을 움직이지 않고 평정 태평하다”고 말한다. 

제102칙 : 바깥 경계를 만남에 자기 본심의 묘법을 인식하라.
마음이 바깥을 향해 치달려서 스스로 돌이켜 비추어 볼 줄 모르고 이렇게 학불하면 실제 이익을 얻기 어렵다. 맹자가 말하길 “학문의 도는 다름이 없고 바깥을 향해 치달리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음을 구할 뿐이다”고 했다. 그대가 학불하지만 마음을 멈추고 염불할 줄 모르고 또한 유교도 아직 실천할 수 없거늘, 하물며 불교가 진실로 마음을 멈추는 법인 줄 알겠는가? 관세음보살께서는 “자기의 듣는 자성을 돌이켜 듣는다” 하시고, 대세지보살께서는 “모두 육근을 거두어 들여 정념(淨念)을 이어간다”고 하신다. ‘금강경’에서는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하신다. 색성향미촉법에 머물지 말고 보시를 행하여 세간만행에 이르게 된다. ‘심경’에서는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라” 하신다. 이는 모두 경계를 만남에 자기 본심의 묘법을 인식하라고 법문한다. 일체 학문에 박학하고 싶다면 결코 이익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박학의 이익을 얻을 수 없고 먼저 그 병통을 겪게 된다.  

제103칙 : 실체실성의 나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수행의 요결은 번뇌습기에 대치함에 있다. 힘을 내어 수행할수록 습기가 드러나는데, 이는 사상에 의지해 수지할 줄 알 뿐 스스로 돌이켜 비추어 보아 자기마음에 망정이 생긴 것을 제거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평상시 미리 방비하여 경계인연을 마주하면 범부습기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평상시 나의 몸과 마음 전체 그대로 환망에 속함을 알아 실체 실성의 “나”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이미 “나”는 없는데, 어떻게 그것의 경계에 인하고 사람에 인하여 번뇌를 생하는 일이 있겠는가? 이는 근본상 가장 절실한 해결방법이다. 내가 공한 이치를 명백히 알지 못한다면, 여래께서 법문하신 오정심관(五停心觀)에 의지해 대치하여야 한다. 

오정심이란 다섯 법으로써 그 마음을 조종해 마음이 안주하고 경계를 따라 구르지 않게 함이다. 탐욕이 많은 중생은 부정관을 닦으며, 분노가 많은 중생은 자비관을 닦으며, 산란이 많은 중생은 수식관을 닦으며, 어리석은 중생은 인연관을 닦으며, 장애가 많은 중생은 염불관을 닦는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534호 / 2020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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