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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류기운·문정후의 ‘고수’-하

기자명 유응오

진정한 고수는 자리이타 삶을 산다

주인공, 영웅신화 모티브 차용
‘출발-시련-성취-귀환’ 여정
무협물에서 은둔하는 고수는
육조 혜능선사 행장 연상시켜

‘고수’는 혜능선사의 행장을 연상케 한다.
‘고수’는 혜능선사의 행장을 연상케 한다.

‘고수’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인공인 강룡의 캐릭터이다. 강룡은 무예를 대결하는 순간이 아니면 우유부단하다 못해 희극적이다. 만두를 폭식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이러한 식탐 때문인지 비만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이러한 강룡의 모습은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의 주인공 포와 유사하다. 포가 국수집 아들이듯이 강룡은 만두를 파는 객점의 배달원이다. 주먹을 가르는 소리보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더 큰 포처럼 강룡도 평소에는 만두에 군침을 흘리기 바쁜 무예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포도, 강룡도 무예를 겨루는 대결의 순간이 되면 섬광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포와 강룡은 눈에 보이는 모습과 다른 비밀을 갖고 있다. 포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듯, 강룡에는 사파무림의 절대자 독고룡의 마지막 수제자라는 비밀이 있는 것이다.

강룡이라는 캐릭터는 영웅 탄생의 신화 모티브를 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웅 탄생의 신화에서 영웅의 삶의 여정은 ‘출발-시련-성취-귀환’이라는 공식으로 귀결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부처님으로 ‘출발-시련-성취-귀환’이라는 영웅 탄생의 신화의 여정에서 벗어남이 없다. 아니, 어쩌면 영웅 탄생 신화의 여정이 부처님의 행장을 따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영웅의 탄생 신화 모티브에 가장 부합하면서도 가장 동떨어져 있는 수행자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육조단경’에 실린 육조 혜능선사의 행장이다.

오조 홍인 스님의 당번(幢番)이 날린 지 20여년. 홍인 스님은 법맥을 이을 동량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눈이 가는 것은 신수 아사리였다. 세간에서 닦은 지식 때문에 홍인 스님의 문하 중에는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그럼에도 홍인 스님은 신수가 어딘지 모르게 미흡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중 혜능이 홍인 스님을 찾아왔다. 광동성 출신인 그는 빈한한 농가의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시장에 나무땔거리를 내다 파는, 글도 볼 줄 모르는 무지렁이였다.

일자무식 나무꾼 혜능은 8개월 만에 돈오하여 대자유인이 된다. 선의 밀지(密旨)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옮겨가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당시 혜능선사의 세납은 스물넷. 문맹의 젊은이 혜능이 나이 많은 식자인 신수를 제치고 홍인선사에게서 인가를 받는 일화는 몹시 드라마틱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혜능선사의 행장이 영웅의 탄생 신화 모티브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평가한 이유는 혜능선사는 고귀한 태생이 아니라 비천한 태생이기 때문이다.

무협물의 재미 중 하나는 비주류인 사파가 주류인 정파를 물리치는 서사이다. 오조로부터 인가를 받은 뒤 혜능선사는 보임(保任)의 기간을 갖는다. 이 부분도 무협물에 많이 등장하는 은둔하는 진정한 고수를 떠올리게 한다. 보임의 기간 뒤 혜능선사는 남종선의 꽃씨를 뿌리게 된다. 이 역시 고난의 여정 끝에 중원을 통일하는 무협물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된다. 무협물의 구성은 상당 부분 혜능선사의 행장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공부(工夫)와 쿵푸(功夫)는 음이 같다.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부는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고, 쿵푸는 무예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쿵푸는 중국의 무예를 일컫지만, 중국에서는 ‘숙달된 기술’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학문이든 무예든 진정한 고수는 자리이타의 삶을 산다는 점에서 삶의 모든 공부는 결국 수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34호 / 2020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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