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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관세음보살과 능엄주 가피

기자명 광우 스님

극심한 속병 고통도 일제 탄압도 염송으로 극복

일제강점기 당시 신여성, 관세음보살 염송으로 쌀 약탈 면해
속병 앓던 묘엄 스님 지극한 능엄주 염송 3년에 통증 사라져
부처님과 보살님 가피, 수행의 힘은 알음알이로는 이해불가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부산에 계신 어느 노보살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그때 들었던 기억에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라 오늘 소개해볼까 한다.

노보살님에게 고모가 있었다. 

고모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이화여전(이화여대의 전신)을 나온 신여성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집 안 어른들의 주선으로 경주에 시집을 갔다. 당시 시댁은 경주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큰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집이 크고 부유하다보니 일제강점기 때에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공출을 하러 집으로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하루는 관청에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와서 공출을 한답시고 집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벼 나락을 가득 담아서 안방 벽장 안에다 몰래 숨겨놨는데 영락없이 빼앗길 판이었다.
고모는 대청마루에 앉아 그저 간절하게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세요.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세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온 집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있던 관청 사람들이 정작 안방은 문만 빼꼼히 열어보고는 나락을 숨긴 벽장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그냥 떠나버렸다. 당연히 몰래 숨겨둔 벼 나락은 무사했다. 고모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두고두고 신기해하였다.

평소에 불심이 지극했던 고모는 홀연히 삭발 출가하여 스님이 되기를 발원했다. 어렸을 때부터 유복하게 자라나서 학식이 깊은 부잣집 며느리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다행히 부처님의 가피 공덕이 있었는지 결국 집안의 허락을 받고 출가를 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비구니 스님들이 모여 사는 사찰에서 지내는데 그 당시는 굉장히 먹고 살기가 힘들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시기에 절에서 다른 스님들은 모두 나물죽을 먹고 있는데 갓 출가한 고모에게는 하얀 쌀밥을 담아 주었다. 고모가 당황해서 다른 스님들과 똑같이 나물죽을 먹겠다고 하니 ‘평생 부잣집에서 지내며 좋은 음식만 먹던 사람이 갑자기 거친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 하며 억지로 쌀밥을 먹이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여자가 대학까지 나와서 비구니가 된 사람이 없었던 때이니 유독 관심과 배려를 듬뿍 받았다.

어쨌거나 반 강제적으로 쌀밥을 먹여서 먹긴 먹었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했는지 그만 급체를 해버렸다. 속이 너무 아파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를 정도였다. 그런데 심산유곡 사찰 근처에는 병원도 없고 약방도 없던 시대였다.  속이 찢어질 듯 아파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데 그저 믿고 의지할 것은 오직 ‘관세음보살’ 뿐이었다. 

오직 마음으로 간절히 간절하게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렇게 관세음보살을 애타게 부르다가 깜빡 의식을 잃었다. 정신이 몽롱한 그 짧은 사이 비몽사몽에 어디선가 수염이 긴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긴 수염의 할아버지는 ‘어디 보자’ 하면서 등을 세 번 툭툭 쳐주는데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오는 것 같더니 순간 잠에서 깨보니 신기하게도 찢어질 듯 아팠던 속이 편안하고 싹 나아버렸다.

고모는 이와 같은 경험들 때문인지 항상 신도들을 볼 때마다 당신의 경험담을 상세히 이야기해 주면서 늘 ‘염불을 많이 하라’고 권유하였다.
 
비구니로 출가한 고모는 그 후로 수행 정진 잘하시며 무려 100살이 넘게 건강히 지내셨다.

문득 생각나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비구니 불교계의 큰 봉우리였던 세주당 묘엄 스님(1931~2011)의 수행담이다. 청담 스님의 속가 딸이기도 했던 묘엄 스님은 전생의 깊은 불연이 있었는지 혹은 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일찍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비구니가 된 딸의 교육에 걱정이 깊었던 청담 스님은 당신의 절친한 도반이자 당대의 선승이었던 성철 스님에게 묘엄 스님의 교육을 부탁하기도 했다.

하루는 청담 스님과 성철 스님이 어린 묘엄 스님을 불러 능엄 신주를 외우라고 지시했다. 추상같은 두 분 큰스님의 가르침에 길고 긴 삼천 자가 넘는 능엄주를 일주일 만에 통째로 외웠다. 그리고 묘엄 스님은 입으로 마음으로 하루 종일 능엄주를 독송하였다. 

그때 큰스님 두 분에게 받은 능엄주 숙제가 매일 108번씩 외우는 것이다. 결국은 쉬지 말고 하루 종일 독송하라는 의미이다.  

당시에 일 많고 할 일 많은 시기에 도저히 법당에 앉아 편하게 외울 시간이 없었다. 하루 108번 숙제를 채울 방법은, 앉아서도 일하면서도 누워서도 계속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나물 다듬으면서도 하고, 씻으면서도 하고, 오며 가며 외우고, 사람들과 대화할 시간조차 없이 오직 외울 뿐이었다. 그렇게 하니 나중에는 입으로 소리 내지 않아도 능엄주에 집중할 만큼 습관이 붙었다. 

그리고 점점 능엄주를 외우는 힘에 가속력이 생겼다. 처음 능엄주 한 번 외우는데 30분이 걸렸는데 어느덧 오 분 만에 한 번을 외우고, 삼 분 만에 한 번을 외우기도 했다. 나중에는 능엄주 생각 한 번 일으켰는데 딱하고 순식간에 통째로 사진 찍히듯 외워졌다. 그때 비로소 시공을 초월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확연히 느꼈다.

3년 가까이 능엄주를 외우다가 열여덟 살 때였나 보다. 하루는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하얀 옷을 입은 어떤 할아버지가 쓱 가까이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묘엄 스님의 배를 칼로 쑥 갈라서 시꺼먼 덩어리 같은 것을 쭉쭉 빼내는 것이다. 한 방울 피도 없이 그 더러운 것을 싹 빼어내더니 ‘인제 되었다’ 하고는 할아버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꿈에서 깬 묘엄 스님은 눈을 뜨자마자 온 몸이 개운하고 뱃속이 시원한 것을 느꼈다. 그 꿈을 꾼 뒤로 그토록 괴롭혔던 속병이 싹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묘엄 스님은 당신이 주석하신 봉녕사에서 대중들에게 능엄신주 외울 것을 늘 강조하고 장려하였다고 한다.

불보살의 가피와 수행의 힘은 인간의 알음알이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오직 수행하고 스스로 체험할 뿐이다.

광우 스님 마음수행법회 지도법사 kgk515@hanmail.net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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