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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김홍도의 ‘신언인도’

기자명 손태호

한 치 오차 없이 과보는 돌려받는다

말을 삼가하고 몸을 낮추는 것이 군자의 도리이자 성품
공자가어 관주에 나오는 글을 바탕으로 강세황이 쓴 글
다른 이에게 상처 주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작품

김홍도 作 ‘신언인도’,  종이 수묵, 114.8×57.6cm, 1773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 作 ‘신언인도’, 종이 수묵, 114.8×57.6cm, 1773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지난달 국회의원 선거를 무사히 치렀습니다. 혹시나 선거로 인해 코로나19 확산이 우려되었지만 다행히 무탈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전염병 대유행 속에서 전국 단위의 선거를 치루는 우리나라를 외국에서도 주목하며 선거를 마친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칭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거는 1등을 뽑는 경쟁이라 당선인이 있으면 나머지 출마자들은 전부 낙선인이 됩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가 253명이니 아마 낙선자는 적어도 1500명 이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낙선자 중에서는 유독 말로 다른 분들을 상처 준 경험이 있는 분들, 즉 막말을 일삼은 정치인들이 대거 낙선했다고 합니다. 특히 선거운동 중 증거 없는 의혹제기로 여러 사람을 모욕한 후보와 정당은 큰 고배를 마셨습니다. 오죽하면 자기당 후보를 향해 선거책임자가 ‘입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하니 선거의 결과는 막말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입을 닫는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그림이 한 점 있었습니다. 바로 단원 김홍도가 29세에 그린 ‘신언인도(愼言人圖)’입니다. 

어떤 인물이 긴 도포를 입고 족좌 위에 서서 두 손을 모은 아주 단정한 자세로 서 있습니다. 옷의 필선은 강약의 변화가 많지 않고 먹물도 아주 아껴 갈필로 그렸습니다. 머리는 앞머리를 깍은 변발로 청나라 스타일이고 얼굴은 생기가 없으며 입은 굳게 봉해져 있습니다. 옷도 우리 한복과는 조금 다른 청나라 선비 스타일입니다. 옷의 외곽선, 안쪽 주름, 옷고름, 사각형의 족좌에서 직선 위주의 단순하면서도 엄숙하고 조심스러운 필선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선들은 우리가 많이 보았던 단원 풍속화의 옷 주름선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하늘과 땅입니다.

이런 필선은 주인공인 인물의 성격에 맞춰 그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림 위에 적힌 글을 읽지 않아도 인물의 단정함과 엄숙함, 진지함 등이 필선에서 전해져옵니다. 인물 위로는 제법 많은 글이 예서체로 단정히 적혀 있습니다. 글 앞 오른쪽 위에 두인(頭印)은 ‘필정묘입신(筆精竗入神)’인데 그 아래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필정묘입신 표암도장(筆精竗入神 豹巖圖章)’이라 적어놓아 이 글의 주인공은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3~1791)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글이 아주 명문이라 다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상 약간 생략해 적어봅니다.

“이는 옛적에 말을 삼가한 인물이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 일을 많이 벌이지 말라. 일이 많으면 우환이 많다. 안락하면 반드시 경계하라.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 무슨 다칠 일이 있으라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장차 오래 갈 것이다. 무슨 해가 있으라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장차 크리라. 듣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중략)… 무슨 다칠 일이 있으라고 말하지 말라. 재앙의 문이다. 강함으로 밀어붙이는 자는 죽음을 얻지 못한다.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그 적수를 만난다. …(중략)… 무릇 큰 강이 비록 아래에 있기는 하지만 모든 개울보다 긴 것은 그것이 낮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는 알지 못하나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경계할지어다. 1773년 8월 표암 강세황이 써서 좌청헌께 드린다.”

첫 문구는 그림의 인물이 ‘신언인’ 즉, ‘말을 삼가는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일을 많이 벌이지 말고, 안락을 경계하고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다칠 일이 있으라고 말하지 말라’를 여러 차례 강조하며 재앙의 문이라고까지 지적합니다. 그리고 군자의 도리와 성품 즉, ‘말을 삼가고 몸을 낮추라’는 당부입니다. 이 글은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과 사적을 기록한 ‘공자가어(孔子家語)’의 ‘관주(觀周)’에 나오는 글을 바탕으로 강세황이 쓴 글입니다.

관주의 내용은 어느날 공자가 주(周)나라 태조 후직(后稷)의 사당을 찾았을 때의 일화로 공자가 묘당 계단을 오르다 돌계단에 서 있던 금인(사람모양의 조각상)을 보고 걸음을 멈췄는데 금인을 살펴보니, 입을 세 번 감아두었으며 그 등에는 “옛날의 신언인이다(古之愼言人也)”라는 명문(銘文)과 위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강세황은 그 이야기를 그림에 적어놓은 것입니다. 결국 그림의 인물은 사람이 아닌 조각상이고 이 조각상을 통해 강세황은 좌청헌에게 말과 행동을 조심할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왜 김홍도가 인물의 표현을 무척 딱딱하고 엄정하고 진지하게 그렸는지 이해가 갑니다. 사람이 아닌 인물상이니 이처럼 딱딱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글과 그림을 받은 인물은 조선후기 남인계 문신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 1723~1801)로 좌청헌은 원주에 있는 재실(齋室) 당호(堂號)입니다. 정범조는 문장이 뛰어나 영·정조 시절 총애를 받으며 강세황, 허필, 김홍도와 가까웠고 다산 정약용의 집안어른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1773년은 강세황에게 매우 뜻깊은 해입니다. 60세까지 벼슬길이 막혔던 강세황에게 영조의 배려로 종9품 참봉으로 벼슬길에 오른 해입니다. 그 후 한성판윤까지 승승장구하니 그 출발이 바로 61세인 1773년입니다. 

반면 정범조는 1759년 진사시 합격, 1763년 증광 문과 갑과로 급제 후 순탄한 관직생활을 하던 중 1773년 이조좌랑에 제수되고도 어명을 하루 지체했다는 이유로 갑산으로 정배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실은 어명을 전달하는 사람의 잘못 때문에 발생한 일이어서 4개월 만에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유배를 가는 본인에게는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었겠습니까. 이런 사건이 발생하자 10살 선배인 강세황이 혹시나 임금과 조정을 원망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까 걱정되어 이 그림과 글을 전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옛 어른들의 벗을 걱정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녹아있는 그림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과 글로 상처를 주고 자신이 잘 되길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인과응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어떤 형태로도 그 과보를 돌려받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그 무서움을 알기에 ‘천수경’ 첫머리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참된 말)’으로 시작합니다. 또 법정 스님은 “세 치의 혓바닥이 여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김홍도의 ‘신언인도’는 비록 구겨진 자국과 변색 등 본존상태가 좋지 않지만 스스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맑은 물과 같은 그림인 것입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36호 / 2020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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