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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주호민의 ‘신과 함께’ 이승편

기자명 유응오

화엄신중서 연원한 성주신들 활약

성주신들, 저승차사와 맞서며
고아 될 위기 처한 아이 도와
철거민 문제는 용산사태 연상
친숙한 그림체와 인물도 눈길

성주신, 조왕신, 측신이 등장하는 ‘신과함께’ 이승편은 재개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신과 함께’ 3부작 중 2부에는 이승편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승세계가 아닌 이승세계의 신들이 등장한다. 저승차사들이 폐지를 수거해 살아가는 할아버지(김천규)를 데려가려고 하자 성주신들이 맞선다는 게 주된 서사이다. 할아버지는 초등학생인 어린 손자(김동현)를 돌보고 있는 까닭에 독자들로부터 절로 동정심을 유발한다.

김천규 할아버지를 낡은 집에서 데려가려는 것은 저승차사들만이 아니다. 철거용역들은 집을 비우지 않는 할아버지를 협박하고 집안의 살림살이를 내던지기 일쑤이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 집을 뺏기고 고아가 될 위기에 처한 동현의 곁을 지키는 것은 성주신들뿐이다. 영화와 다른 점은 영화에는 성주신만 등장하지만, 원작에서는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과 뒷간을 지키는 측신도 등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승세계도 산업화 이후의 사회상으로 그려지는 반면, 이승세계는 산업화 이전의 사회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주호민 작가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승편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승편에서 재개발 이야기는 큰 줄기다. 그 사이에 여러 가지 부조리를 넣어보려고 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 고물을 수거하는 센터를 새로 만들었는데 사실은 그게 고물을 줍는 노인의 일을 뺏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저승편은 재개발 문제를 다루다보니 자연스럽게 용산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 주호민 작가가 가택신 캐랙터를 창작할 때에 용산사태가 터졌다고 한다. 이승편에서 철거민과 용역들이 부딪치는 장면에서 6명이 죽는데, 용산사태에 희생된 분들도 6명이었다. 이 역시 작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성주신, 조왕신, 측신은 산업화 이전 가옥의 상징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철거민과 함께 성주신들은 자연스럽게 잊힌 존재가 됐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흔히 성주신은 민간신앙의 대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불교의 화엄성중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법회를 여는 장소를 화엄회상이라고 하고, 이 설법을 듣는 신장들을 가리켜 화엄성중이라고 한다. 화엄성중은 화엄사상에서 파생된 것이다. ‘화엄경’의 ‘약찬게’에는 우주의 모든 존재가 신이라고 쓰여 있다. 해와 달, 바람과 구름, 산과 바다, 마을과 집, 물과 불, 바람과 구름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이 아닌 게 없다는 것이다.

이승편에서 저승차사들과 맞서 고군분투하는 성주신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를 위해서 옹호하시어 나의 몸을 떠나지 않게 해주시고, 모든 어려운 곳에서 어려움이 없게 해주십시오”라는 ‘화엄경’의 ‘약찬게’ 구절이 떠오르게 된다. 그런 까닭에 이승편에 등장하는 성주신들은 천신과 용과 팔부신중의 화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 연작은 불교문화를 소재로 한 웹툰의 본보기이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특수하다는 명제를 입증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신과 함께’는 1부 저승편, 2부 이승편, 3부 신화편이 개별적인 서사를 지닌 가운데 유기적으로 결합한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등장인물의 인과(因果)가 삼세(三世), 즉,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권선징악의 교훈이 억지스럽지 않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작품의 그림체도 평범하다 못해 평면적으로 느껴지는데, 이러한 작가 특유의 평이한 그림체가 대단히 친숙한 등장인물과는 안성맞춤의 효과를 낳고 있다.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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