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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라마댄싱 

새해 맞아 행하던 의례 사원경제·문화전파 위해 티베트력 5월 설행

중국 영향 벗어난 참 조사 위해 히말라야 넘어 찾은 라다크 헤미스곰파
10세기 티베트 일부 건너와 ‘레’왕국 세워 900여년간 지배해 문화 보존
헤미스곰파 ‘구루’ 춤 수행전통·법맥 지켜온 까규의 자긍심 볼 수 있어

헤미스곰파의 참 의례가 행해진 첫째 날 걸린 탕카와 관람자들.

라브랑시가 위치한 중국령 내의 입지와 전각 위에 얹힌 지붕이 마음에 걸렸다. 법당을 장엄하느라 기와를 얹었을 테지만, 그 모양이 중국적이라 의례에도 중국적 영향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티베트 임시정부가 있는 다람살라 맥그로간즈의 남걀사원을 방문해 의례와 ‘참’에 대해 조사했다. 산골짝 협소한 공간의 남걀사원은 도량의 규모와 의물이 갖춰지지 않아 참을 할 형편이 못됐고, 근년에는 참을 지도해 주던 노스님마저 입적해 설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에 히말라야를 넘어 라다크로 향하게 됐다. 라다크로 가는 히말라야 산길은 녹아내리는 눈과 함께 돌과 흙이 길을 덮쳐 도로를 복구해 가며 달려야 했다. 마날리에서 바쉿시로 가는 길은 힌두사원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바쉿시에서 키롱으로 가는 길은 마치 알프스를 보는 듯 싱그러운 숲이 있어 무료하지 않았다. 이후로는 마치 화성에 온 듯 풀 한 포기 없는 마른 골짜기뿐이어서 입에선 모래가 버석거렸고, 해발 5000m를 넘어서자 머리가 아파왔다. 산중에 갇혀 고립된 라다크의 지리적 여건이 피부에 와 닿았다.

구루들을 향해 경의를 표하는 악사(樂師)들.

꼬박 사흘 걸려 다다른 라다크는 경기도 면적의 11배에 해당하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10세기경 티베트 제국의 일부가 라다크로 건너와서 ‘레' 왕국을 세우고 900여년에 걸쳐 이 지역을 다스렸다. 때문에 라다크 곳곳에는 유서 깊은 티베트사원이 많다. 헤미스곰파는 레 시내로부터 서남쪽으로 43km 지점 인더스강 왼편에 있는 사원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라다크는 히말라야의 눈이 녹으면서 관광 시즌이 시작되므로 헤미스의 참도 이 시즌에 맞춰 티베트력 5월10일에 행해지는데, 윤달이 있는 2009년은 양력으로 7월2일부터 3일까지 이틀에 걸쳐 행해졌다. 

첫째 날, 10시 무렵 두 명의 악사가 마당에 나와 나팔을 불자 호법조사의 탕카가 걸렸다. 이어 컁링을 부는 스님을 따라 향합이 따르고 나팔과 법기를 타주하는 악대가 등장했다. 악대가 자리해 법당을 향해 신호를 보내자 13명의 샤낙승이 등장해 마당을 돌며 도량 옹호와 정화를 위한 춤을 추고난 뒤 놋쇠 가면을 쓴 16명의 무승이 ‘옴 아 훔 바즈라’ 진언 범패에 맞춰 축복의 춤을 췄다. 이어서 컁링을 부는 악사와 향합을 든 스님들이 여덟 화신 구루를 모셔 나오자 악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경의를 표했다.

헤미스곰파 첫째 날 오후 여러 캐릭터의 춤.

여덟 구루의 구성을 보면 연화생으로 번역되는 ‘파드마 바즈라’ ‘파드마삼바바’ ‘사자후음’ ‘태양광’ ‘연화왕’ ‘분노금강’ ‘석가사자’ ‘지혜승’인데 이들은 각각 상징하는 의물을 들고 있다. 지혜승의 티베트 발음은 ‘블로에단 맥흐혹 스레드(Blo-edan Mchhog Sred)’로 다문제일 아난과 경전에서 비롯된 화신이다. 이들은 다 함께 마당을 몇 바퀴 돌고나서 각각 독무(獨舞)를 추고 그에 화답하는 권속과 제자들의 답례 춤이 이어졌다. 뒤를 이어 원숭이탈을 쓴 세 사람이 춤을 추는데, 이는 파드마삼바바가 원숭이해에 태어난 것과 원숭이를 조상으로 하는 티베트 건국설화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16명의 카틴찬 다키니들(Dakinis)이 감사의 답례 춤을 추고, 미래에도 위대한 스승이 다시금 오기를 발원했다. 

첫째 날 오후에는 열두 제자들과 악령들의 춤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에는 사자탈을 쓴 ‘얍’과 ‘염’을 비롯해 여러 캐릭터가 있다. 용감한 아버지를 상징하는 ‘얍’은 지혜의 거울과 호법 의물, 자애로운 어머니를 상징하는 ‘염’은 오른손에 심장, 왼손에는 불자(佛子)를 들고 있다. 네 사람의 샤낙, 두 사람의 동자승, 창자로 만든 밧줄을 든 사람, 창과 칼을 들고 화살촉을 메고 있는 무승이 등장해 각자 맡은 역할의 춤을 춘 후 헤미스곰파의 스승들인 ‘저스카임스(Gser Skyems)’ 춤, 갈고리와 밧줄을 들고 방울 달린 막대를 흔들며 춤추는 ‘수문장(sGoma)’의 춤이 이어졌다. 색동장식이 있는 탈과 흰색·노락색 의상의 묘지지기들은 라브랑시에서 동자승들이 췄던 캐릭터다. 헤미스곰파에서 이 캐릭터를 추는 어린 스님들은 관중들에게 흰 횟가루를 뿌리고 악령들을 잡아들이듯이 관중들을 놀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어서 마당에서는 분노존 ‘책촉 헤로카’의 춤과 다섯 다키니의 춤이 이어졌는데 다섯 다키니는 탈의 모양이나 색깔이 라브랑시의 화우탈과 같았다.

밧줄로 사람들을 옭아매며 시주금을 걷고 있는 스승(아차리야)과 제자의 모습.

둘째 날 오전은 전날과 같이 탕카를 올리고, 샤낙승들이 도량 옹호와 정화의 춤을 춘 다음 모든 스님들이 법당으로 들어가 구루 걀포에 대한 불공을 올렸다. 높은 법석에 앉은 린포체는 양손에 드릴부(종)와 금강저를 들고 수인(手印)을 하며 의례를 주재했다. 저음의 송경 율조에 맞춰 법령을 흔들며 금강저를 돌리는 모습은 달라이라마가 유럽과 뉴욕 등지에서도 시범을 보여 서방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이때 악승들은 경전이나 다라니 암송의 단락 마다 걀링을 불고 법고와 자바라를 치며 절주를 맞췄다. 가끔 법랍이 높은 노스님에 의해 범패가 불리기도 하는데 그 성음은 저음에 담담한 선율이어서 극도의 저음을 구사하던 라브랑시와 달랐다. 이날 오전 의례는 외부인의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사전에 허락을 얻어둔 터라 어렵게 촬영할 수 있었다. 

둘째 날 오후에는 예불을 마친 스님들이 다시 마당으로 나와 배석하고, 아차리야(스승)들의 춤과 네 사람의 샤낙 춤이 이어졌다. 이들 중 한 아차리야와 제자가 관중 사이를 다니며 악령을 잡아들이던 밧줄을 사람들의 목에 걸고 놀리면 밧줄에 걸린 사람은 좋아라 웃으며 보시금을 냈다. 이내 제자의 망태는 두둑해져 갔다. 이런 가운데 마당 중앙에서는 악령과 마귀, 사악함의 상징인 붉은 삼각형 표적을 칼로 쳐부순 후 헌공의례를 이어갔다. 헌공을 마친 스님이 네 샤낙에게 악령으로 빚은 법주를 돌렸고, 이를 마신 샤낙은 마당을 돌며 승리의 춤을 췄다. 마지막 순서는 ‘하샹’과 ‘하툭’의 춤인데, ‘하샹’은 스마일 붓다의 탈을 쓴 스승이고, 하툭은 그의 어린 제자들이다. 이들은 악령들이 사라진 청정한 도량에서 불법을 배우는 모습을 연출했다. 하툭으로 분한 동자승들이 스승을 놀리거나 재롱을 떠는 모습이 관객의 미소를 자아내는 가운데 해가 저물고, 탕카를 내리며 모든 의식이 종료됐다. 

물리쳐야할 장애를 상징하는 표적.

헤미스곰파의 참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구루의 춤이었다. 이는 라브랑시에서는 없던 것으로, 수행전통과 법맥을 충실히 지켜온 까규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순서였다. 닝마파는 티베트의 민간종교인 뵌교와 습합된 면이 많고, 개혁 종단인 겔룩파는 티베트 본래의 전통을 단순화한 면이 많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 순서였다. 이를 말해주듯 헤미스곰파는 춤의 종류와 등장하는 캐릭터가 라브랑시에 비해 10배가 될 정도로 많았다. 춤사위는 밧줄로 악귀를 나꿔채고, 갈고리로 귀신들을 잡아들이며, 거울로 업장을 비추는 등 다양한 의물과 무구(舞具)로 표현하는 사실적인 묘사가 많았다. 

이러한 모습은 라브랑시와 헤미스곰파가 처한 지리적 영향도 있지만 종파적 성격에서 기인하는 면이 더 많았다. 개혁종파인 겔룩파는 축약된 절차와 순화되고 절제된 춤사위로 의례를 행하고 있음을 두 사원 의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헤미스곰파 참무의 전체 흐름을 보면 구루와 같이 위의가 높은 존재는 춤 동작이 느리고 최대한 절제한다. 최고 지존인 파드마바즈라는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에 비해 악마를 잡아들이고 제압하는 춤동작은 역동적이면서도 기괴스러운 탈에 익살스러운 동작도 많다.

중국이나 대만에서 불교의례를 하고나면 반드시 소대의식과 폭죽을 터뜨리는데 라브랑시에서도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그에 비해 인도에 있는 헤미스곰파는 탕카를 올리고 내릴 뿐 소대의식은 없었다. 원을 돌며 춤을 추는 것은 두 곳이 일치하지만 중국령 라브랑시는 모든 춤이 정적이면서 문묘제례의 일무와 닮아 있었다. 티베트 사원 전각에 장식된 기와지붕을 비롯해 헤미스곰파와 라브랑시 모두 샤낙이 입은 비단 두루마기의 문양과 디자인에서도 중국적 느낌이 다소 있었다. 이는 당나라 때부터 중국과 교류해온 티베트 역사와 관련 있어 보인다. 이렇듯 헤미스곰파를 통해 중국의 영향을 덜 받은 티베트 의례와 악가무를 확인했다. 그러나 새해를 맞아 행하던 의례를 5월(티베트력)로 옮긴 동기가 관광객을 위한 배려였다는 점에서 무언가 의문이 일었다.

하샹의 제자 하툭의 춤.

헤미스곰파의 첫날 관람객 중 일반인이 9000여명, 스님들이 400여명 정도였고, 이들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당시 다람살라(맥그로간즈) 점원의 한 달 임금이 9만원 정도였고, 헤미스곰파의 사찰 입장료가 100루피(한화 2500원)였으며, 전망이 좋은 곳에서 볼 수 있는 특별 티켓은 400루피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여기에다 의례에 바치는 도네이션(보시금)을 비롯해 기념품과 자료 판매, 숙박과 관광 부대수입을 감안해 보면 ‘참’의 경제 창출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참 의식으로 1년을 지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의례로 인한 사원경제와 문화파급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순수 의례의 면면을 보고자 했던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하여 관광화되지 않은 따시종의 ‘참’을 보기 위해 히말라야를 다시 넘어 내려왔으니 그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소개하겠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41호 / 2020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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