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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d몬 작가의 ‘데이빗’ - 상

기자명 유응오

말하는 돼지가 던진 사람의 정의

어미젖도 못 물던 작은 데이빗
농장주 아들과 만나며 새 운명
인간 전유물이라는 언어 습득
“돼지에게도 불성 있나” 연상

‘데이빗’은 ‘내게도 불성이 있는가’를 묻게 한다.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d몬 작가의 ‘데이빗’은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게 태어난 까닭에 어미의 젖도 물지 못했던 데이빗은 농장주의 아들인 조지의 생일선물로 안겨지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데이빗은 놀랍게도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의사 전달만 했지만, 나중에는 조지와 자유롭게 소통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데이빗은 돼지인가? 사람인가?”라는 화두를 갖게 된다. 말(言)은 인간의 전유물인 까닭에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된다. 인간 말고는 어떤 동물도 소리는 낼 수 있으나 말을 할 수 없고, 몸짓을 할 수는 있으나 글을 읽고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과 글이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을 일컫는다.

게다가 작품 속에서 데이빗은 식탁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는 등 인간의 문명생활을 영유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독자들은 데이빗이 단순히 말을 할 줄 아는 돼지로 보이는 게 아니라 비록 외모는 돼지이지만 인간과 똑같이 생각할 줄 아는 존귀한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말을 할 줄 아는 돼지라는 설정은 반인반수(半人半獸) 모티브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반인반수 모티브의 작품들이 이종(異種)간의 로맨스를 다루듯이 이 작품에서도 데이빗과 캐서린의 로맨스가 펼쳐진다. 이종 간의 로맨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반인반수의 저주 받은 생명이 등장하고, 그 저주 받은 생명체는 다른 종의 이성에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친다. 이종 간의 로맨스 서사가 지닌 최고 미덕은 바로 이 ‘순수함’이다. 말을 할 줄 아는 돼지인 데이빗을 보면서 독자들은 데이빗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하는 화두를 지니게 된다. 인권을 불교사상에 입각해 환치하면 불성(佛性)이 된다.

불교사상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의 자연 지배를 당연하게 여기는 일신교의 창조론과 달리 인간과 동물, 나아가서는 자연의 모든 구성원을 동체(同體)라고 보는 것이다. 연기설에 따르면 인간만 존귀한 게 아니라 자연의 구성원 모두 존귀하며, 윤회설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은 연속적으로 상호 이동하는 관계인 것이다.

데이빗에는 불교적인 해석이 가능한 메타포들이 많은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주구자(趙州狗子)’ 혹은 ‘무자공안(無字公案)’이다. 무자공안은 조주 선사가 “개에도 불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있다”고 답했고, 다음에는 “없다”고 답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선지식들이 “선은 유무의 분별심을 떠나는 데 있다”고 설하고 있다.

조주 선사가 개에게 불성이 있다고 한 까닭은 ‘일체중생 실유불성’ 즉, ‘모든 중생은 다 부처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대승불교 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조주 선사가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한 까닭은 세친이 쓴 ‘유식론’의 ‘일천제불성불론(一闡提不成佛論)’ 즉, ‘부처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선근을 단절한 중생은 성불하기 어렵다’는 내용에 기인한다. 

그런가 하면, 오현 스님은 ‘무문관’에서 무자공안에 대해 이렇게 설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를 묻지 말고, 자신에게는 불성이 있는가라고 자문(自問)해보라.” 오현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데이빗’을 보면 아래와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데이빗에게 불성이 있는가를 묻지 말고, 데이빗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자신에게는 불성이 있는가를 자문해보라.”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41호 / 2020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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