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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대하(大河)

기자명 정혜진

분단 비극서 벗어나 통일 염원 담은 창작 군무

재일동포 강수내 안무가, 6·15선언 감동 살려 2008년 창작
민족의 분단·이산의 아픔을 절절하면서도 격정적으로 표현
2011년 평양 ‘4월의 봄 예술축전’에서 금상·창작상 수상해

‘분단에서 통일로’라는 메시지를 담은 ‘대하’ 한 장면. 이철주 문화기획자 제공
‘분단에서 통일로’라는 메시지를 담은 ‘대하’ 한 장면. 이철주 문화기획자 제공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뭇 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일본영화 ‘박치기’의 주제곡으로 한국에 알려진 후, 양희은, 적우, 임형주 등이 불러 유명해진 북한노래 ‘임진강’의 후렴 가사이다. 1958년에 발표된 이곡은 북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의외로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는 ‘제2의 아리랑’이라고도 불릴 만큼 애창되고 있는 곡이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과 북을 흐르는 임진강과 분단선을 오가며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소재로, 귀향에 대한 염원과 통일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가사와 유려한 선율에 담고 있다. 

이곡은 재일동포들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친숙하다. 1968년 ‘더 포크 크루세더스’라는 일본의 포크그룹이 리메이크하여 히트했는데, 한때 일본 대학생들의 데모곡으로도 널리 쓰였다. 이 노래를 더 포크 크루세이더즈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영화 ‘박치기’의 원작인 ‘소년 M의 임진강’이란 소설을 쓴 마츠야마 타케시(松山猛)였다. 임진강의 일본어 가사 작사자이기도 한 그는 쿄토(京都)에 있는 조선중고급학교를 찾았다가 학생들이 합창하는 ‘임진강’을 우연히 듣고, 당시 색소폰을 불던 같은 또래의 재일 조선인 소년을 통해 악보를 구하게 되었다. 

이 노래가 널리 애창된 이유는 선율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재일동포들의 고향이 대부분 남측이었고, 또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통일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북한을 조국이라, 남한을 고향”이라 부르는 많은 재일동포들에게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는 이곡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다수이다. 2008년에 발표된 군무 ‘대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표현에 있어 투쟁적인 면이 부각되었던 과거와  달리 ‘대하’는 서정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통일에 대한 주제를 형상화하였다. 6·15선언을 보며 ‘우리는 하나다’라는 느낌을 온몸으로 절감한 재일동포 강수내 안무가가, 그 감동과 함께 분단의 비극과 통일을 갈망하는 열망을 전하고자 하였고,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을 담은 6·15선언의 의미를 되살린 새로운 통일상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수없이 다녀간 평양 대동강변과 2007년 ‘북녘의 명무’ 공연으로 사전 내한해 거닐었던 한강. 특히 군사분계선을 흐르는 임진강은 분단으로 인해 고국을 자유롭게 왕래하지 못하는 재일동포 안무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졌음에도 반세기가 지나도록 분단된 영토에서 대립하며 헤어져 살아야 하는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현실을 강물의 마음으로 의인화하여, 이제까지 보지 못한 예술성이 아주 높고 감동적인 통일 춤을 창작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8분여가 되는 이 작품의 무용수들은 자연스럽게 ‘물의 정령’들이 되었다. 마치 북한의 4대 명작 무용의 하나인 ‘눈이 내린다’의 무용수가 ‘눈의 정령’인 것처럼 말이다. 백의민족의 지고지순함과 청렴함, 그리고 곧은 기상을 표현하는 흰색에 푸른 물을 형상한 물빛 색으로 염색한 의상을 입은 물의 정령들은 넓게 만든 치마를 휘날리며, 그 치마로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표현하고 있다.

도입에서는 하나의 물방울이 작은 시내를 이루고 그 시내가 대하를 이루어 마침내 하나가 되어 흐르듯, 사람들도 한 명에서 무리를 이루고 그 무리가 집단을 이루어 통일을 향해 헤쳐 나가는 모습을 형상하고 있다. 맑은 이슬이 모여 샘이 되고, 시내로 흘러 강이 되어 두물머리에서 만나 어우러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흐르는 물소리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배경으로 물의 정령들이 모였다 흩어지며 다양한 물줄기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무용수들의 균형 잡힌 선과 동작, 그리고 조화를 이루는 대형 변화가 지극히 아름답다.

슬프고도 격정적인 음악이 흐르는 전개 부분은 남과 북, 해외의 우리 민족이,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도도히 흐르는 대하로 묘사하고 있다. 고요히 흘러가던 물이 소용돌이를 만나 갈라지고 다시 모이고자 안간힘을 쓰다 결국에 합수하는 장면은, 무용수들이 손과 손을 마주 잡거나 뺨과 뺨을 맞대며 감아 도는 동작으로 묘사되어 민족의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절절하면서도 격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대하’의 클라이맥스는 강물이 서해의 넓은 바다로 흘러가는 배경 전환으로 시작한다. 강물이 대하가 되어 서해로 흘러가듯 통일은 시대와 역사의 거부할 수 없는 흐름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때 임진강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은은하게 서정적으로 흐르다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남성 성악가의 노랫소리와 함께 임진강의 메인 선율이 드러나는 무용음악은, 서정적이면서도 서사적인 선율로 유명한 북한의 작곡가 리철규가 작편곡을 맡았다.

‘대하’는 2010년 특별공연 ‘조선무용의 비단길’(동경문화회관)에서 일본시티필하모닉 관현악단과 금강산가극단의 콜라보로 공연되었다. 2011년 평양 ‘4월의 봄 예술축전’에서는 피바다가극단 관현악단의 연주로 연행되어 금상과 창작상을 수상하였다. 이때 공연을 본 상해발레단 단장은 금강산가극단의 강수내 안무가를 찾아와 명함을 건네며 꼭 함께 공연하자는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

‘분단에서 통일로’라는 메시지를 담은 ‘대하’의 안무가는 “하나였던 우리 민족이 둘로 분단되면서 겪어야 했고, 여전히 많은 시련과 분단의 장벽을 깨트리고 반드시 하나가 되어 당당한 한민족으로 번영해 나아가겠다는 꿈과 희망 그리고 염원을 이 춤에 담았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통일만 되면 제주로 돌아가 고향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눈물 흘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꿈을 어릴 때부터 꾸어온 안무가의 염원과, 그러기 위해 춤을 통해서라도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되어 창작된 작품이 바로 군무 ‘대하’인 것이다.

서울 출신으로 임진강의 작곡가인 고종환은 “앞으로도 이 노래가 우리 민족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남북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해 준다면 나로서는 여한이 없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정혜진 예연재 대표 yeyeonjae@gmail.com

 

[1541호 / 2020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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